중동·러시아산 경유 수급 차질 속
유럽서 한국산 수입 등 판매 호조
“국내 수급 안정적…탄력 운용을”
정부는 “전쟁 중” 수출 제한 고수
올해 수출 실적이 3분기를 지나기 전 일찌감치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선 주요 요인으로 석유제품 판매 호조가 꼽힌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 파이를 키웠다면 석유제품은 ‘두 개의 전쟁’ 국면에서 단단하게 뒤를 받치는 역할을 했다. 다만 정부는 국내 수급 안정을 위해 석유제품 수출을 통제하고 있고, 정유사들은 “이제는 수출 제한 조치를 풀어야 할 때”라고 맞서며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산업통상부와 관세청은 지난 5일 오후 1시 기준으로 올해 누적 수출액이 7094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이자 역대 최대이던 7093억달러를 117일 앞당겨 달성한 결과다. 핵심 동력은 반도체였다. 올해 1~8월 누적 반도체 수출액은 2812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69.6% 상승했다.
일각에선 반도체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는 컴퓨터 주변기기와 석유제품, 무선통신기기, 선박 등 주요 수출 품목에서 고루 성장세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올해 1~8월 누적 석유제품 수출액은 426억달러를 기록해 반도체, 승용차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7% 증가한 수치다. 8월엔 68억4000만달러를 수출해 월간 기준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한국산 석유제품이 인기를 끄는 배경엔 두 개의 전쟁이 있다. 먼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 정유시설 처리량이 대폭 줄어들자, 그 반사이익을 한국이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하루 990만배럴 수준이던 중동 정유시설 처리량은 8월 하루 730만배럴로 26.2% 줄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도 크다. 세계 2위 경유 공급국인 러시아는 최근 정유시설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을 멈췄다. 이에 경유 수출 제한 조치까지 내려졌다. 반면 국내 정유 4사의 하루 원유 정제 능력은 약 330만배럴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엔 유럽에서 한국산 경유를 수입하는 사례가 나왔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려면 수에즈운하를 거쳐 1만9000만㎞ 이상 항해해야 하는 탓에 평소엔 수요가 많지 않았지만 중동과 러시아산 경유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한국산으로 눈을 돌린 결과다.
치솟는 석유제품 가격도 수출 호조를 이끌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수출통계를 보면 한국의 경유 수출단가는 지난 2월 배럴당 90.9달러였지만 7월엔 138.6달러로 급등했다. 이른바 정제마진 효과다. 원유를 얼마나 보유했느냐보다 이를 정제해 석유제품으로 만들 능력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정부가 중동 사태 이후 휘발유·경유·등유 등 석유제품을 수출 통제 품목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석유제품 수급 안정을 명목으로 수출 물량을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유사는 수출 황금기에도 수출량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정유사는 원유 수입처 다변화로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점, 평소 국내 공급 물량보다 많은 석유제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탄력적인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석유제품을 보급하고도 물량이 남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목표로 삼는 사상 최초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을 이루기 위해선 석유제품 수출이 힘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두 개의 전쟁 전황이 아직 유동적이라 수출 제한 조치를 섣불리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석유 최고가격제와 석유제품 수출 제한 등 비상조치는 모든 상황이 안정됐을 때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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