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전지훈 기자] LG전자가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안건을 원안대로 의결한 데 이어, 주총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 강수진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류재철 CEO를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류 CEO는 이날 주총에서 로봇,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AIDC) 냉각솔루션, 스마트팩토리, AI홈 등 4대 미래 전략사업 육성 계획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를 LG전자 새판짜기의 출발점으로 보면서도, 향후 평가는 실행력과 자본 배치, 이사회의 실질적 견제력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LG전자는 23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제24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재무제표 승인, 정관 변경, 자기주식 소각,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 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을 모두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보통주 1350원, 우선주 1400원 배당이 확정됐고, 6442주 규모 자기주식 소각도 승인됐다. 정관 변경안에는 집중투표제 배제조항 삭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상향 등이 담겼으며, 류재철 CEO의 사내이사 선임과 이사 보수 한도 70억원 승인도 함께 이뤄졌다.
(좌)류재철 LG전자 CEO, (우)강수진 LG전자 이사회 의장 [사진 = LG전자 제공]
주총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는 강수진 사외이사가 의장으로, 류재철 CEO가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LG전자는 이를 두고 이사회 독립성과 투명성 제고, 책임경영 강화 차원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류 CEO는 주총에서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성장 기반을 증명하겠다”며 “주력사업 초격차 확대, B2B·플랫폼·D2X(Direct to X: LG전자가 2030년까지 추진하는 플랫폼 기반 신사업 모델) 육성사업 집중, 미래 성장동력 전략적 육성, AX 기반 업무 혁신을 4대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로봇, AIDC 냉각솔루션, 스마트팩토리, AI홈을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핵심 영역으로 제시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류재철 체제를 단순한 ‘가전통’ 인사로만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황 교수는 “가전과 전장, 로봇은 완전히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다”라며 “기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들어가야 신사업과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류 CEO 선임이 기존 사업과 신사업을 잇는 융합형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LG전자의 체질 변화 역시 기존 사업을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제조 기반 대기업의 사업 전환은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라기보다, 그 위에 하나의 레이어를 쌓아가는 과정에 가깝다”며 “B2B 확대도 B2C를 포기하는 전환이 아니라, 기존 소비자사업 역량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해서 기존 사업을 전부 갈아엎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LG의 변화도 이런 연속성 위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재철 체제의 핵심 경쟁력으로는 실행력이 꼽혔다. 황 교수는 “전략의 하이라이트는 결국 실행력”이라며 “좋은 전략도 실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짚었다. 이어 “사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접을 것을 과감히 접는 것 역시 실행력의 일부”라며 “과거 스마트폰 사업 정리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앞으로 LG전자가 신사업 진출과 기존 사업 유지, 철수 대상 사업을 어떻게 구분해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느냐가 경쟁력의 관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거버넌스와 주주환원 측면에서는 보다 냉정한 평가도 나왔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강수진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LG전자 이사회 구성이 여전히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과거 비상무이사가 의장을 맡던 구조보다는 진전된 모습”이라면서도 “독립이사 4명이 모두 교수인 구조는 LG 특유의 고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자본시장이나 비즈니스 경험을 가진 인사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집중투표제 배제조항 삭제를 둘러싼 해석도 엇갈렸다. 이 회장은 “상징적 의미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어차피 상법 개정으로 9월부터 강제 적용될 가능성이 큰 만큼, 실질적 의미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회사 차원의 선제 대응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곧바로 실효성 높은 지배구조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주주환원 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보통주 1350원 배당은 현재 주가 기준으로 배당수익률이 1% 안팎에 불과하다”며 “이번 자기주식 소각 규모도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LG전자가 장기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근본적 과제를 안고 있다”며 “단순한 배당 확대보다 비용 구조 개선과 수익성 회복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인도 법인 관련 자금 유입 이후 활용 방향이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짚었다. 그는 “일반주주 다수가 상장 과정에서 우려를 제기했던 배경에는 자금 사용처가 분명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었다”며 “투자든, 인수합병(M&A)이든, 주주환원이든 자본배치 계획을 신속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새 경영 체제의 평가는 인선 자체보다, 확보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하고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LG전자 주총은 체제 정비와 방향 제시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전환점으로 읽힌다. 다만 류재철 체제의 진짜 평가는 이제부터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전이라는 본업 경쟁력 위에 로봇과 AI, B2B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어떻게 얹을지, 이사회가 실제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을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본배치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될지가 LG전자 새판짜기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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