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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십년지기 짝꿍 지켜준 남편, '물개박수'칠 수밖에요

듬성듬성해지고 단단하던 가죽은 해졌지만, 그 낡은 신발은 지금도 묵묵히 내 발을 지켜준다. 오랜 친구처럼 정든 그 녀석과 앞으로도 여러 겨울을 함께 지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십년지기 짝꿍 지켜준 남편, '물개박수'칠 수밖에요

10년 내내 함께한 공정무역 실내화... 낡은 신발 꼼꼼히 고쳐주는 솜씨,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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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4월이다. 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난다. 지난주엔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더니 이번 주엔 벚꽃이 가세했다. 아파트 곳곳에서 하나둘 벌어지던 봉오리들이 한꺼번에 활짝 피어 며칠 새 온 동네가 벚꽃 천지다.

낮에 햇살이 퍼지면 동네 곳곳에서 벌어지는 꽃 잔치 덕에 봄이 무르익었구나 싶다. 하지만 해가 지면 풍광이 달라진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우리 동네는 사계절 내내 바람이 많이 불어 초여름까지도 밤기운이 차다. 밤마실이라도 나갈라치면 패딩 점퍼를 꼭꼭 여미고 스카프까지 목에 둘러야 마음이 놓인다.

간밤엔 번개가 우르르 쾅쾅 울려대고 빗소리도 들렸다. 봄비치곤 요란스러웠다. 베란다 창문을 다 닫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새벽녘엔 서늘한 기운 때문에, 이불을 끌어당겼다가 남편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내 몸은 자꾸 이불 속을 파고든다.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그런데 간밤에 침대 옆에 놓아둔 털신이 보이지 않았다.

새벽녘에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고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침대로 올라갔나 보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없다. 맨발로 찬 바닥에 내려오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침대 밑에 손을 넣고 더듬거리니 투박한 신이 손끝에 닿았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침부터 내 속을 태웠던 실내화는 10여 년 전 종로에 있던 공정무역 가게에서 들여왔다. 네팔의 한 여성이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껏 바느질했다는 주인장의 얘기에 눈 딱 감고 3만 원이라는 거금을 냈다. 바닥은 물소 가죽이라 튼튼하고 발목과 발등은 쪼가리 양털을 촘촘히 다져 넣은 펠트라 단단하면서도 포근했다.

꿰매고 자르고 덧대고

겨울이면 내 발을 감싸주던 실내화가 몇 년 전부터 속을 썩였다. 신발의 바닥 털이 조금씩 엉겨 붙더니 울퉁불퉁해졌다. 발에 닿는 부분이라 걸을 때마다 거슬렸다. 뭉치 털을 빼냈더니 실내화는 점점 얇아져 뻣뻣한 가죽 바닥이 드러날 정도였다. 새 신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남편이 신발장 서랍에서 찾았다며 깔창을 가져왔다. 가위로 내 발에 맞게 잘라 신발에 깔아주었다. 남편 덕분에 나는 그 녀석과 또 한 해를 함께 보냈다.

그런데 이듬해에는 신발 옆구리 털이 잔뜩 빠져 발목 주변까지 너덜너덜해졌다.

"여보, 신발 발목이 다 해졌는데 그만 버릴까?"

남편은 신발을 들고 뚫어지게 보고는 싱긋 웃더니, 되려 내게 물었다.

"방법이 있긴 있는데, 내 마음대로 해도 되나?"

남편은 기계나 물건이 망가지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처음 가졌을 때처럼 눈이 반짝인다. 그리곤 늘 "이거 버리는 거지?"라고 묻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남편은 헤벌쭉 웃으며 잡동사니가 그득한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신발을 들고 잡동사니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신발의 발목 부분을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 발등 쪽을 둥그렇게 굴려 슬리퍼로 바꿔 놓았다. 발을 쓱 넣어 보니 발목을 감싸던 푸근한 맛은 좀 줄어들었지만 신고 벗기엔 훨씬 더 편했다.

그렇게 슬리퍼로 다시 태어난 녀석이 일주일 지나자, 다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착 붙어 있어야 할 왼쪽 깔창이 걸을 때마다 뒤로 밀려 나왔다. 빠져나온 깔창이 다른 쪽 발에 걸려서 도통 걸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씨름하다 지친 나는 신발을 벗어 부엌 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던 남편이 씩씩거리는 나를 보더니 퇴근하고 신발을 다시 봐주겠다고 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속으론 '당신도 이젠 별수 없겠지'라며 기대 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이 두 손 들고 포기하면 새 실내화를 사야겠다 싶어서 종일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온라인 장바구니를 채웠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저녁을 먹자마자 슬리퍼를 살폈다. 발목 부분을 너무 많이 잘라버려 깔창이 뒤로 빠지는 거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은 반짇고리에서 실을 꺼내 슬리퍼와 깔창의 뒷부분을 함께 잡고 꿰매기 시작했다. 깔창은 더 이상 신발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새 신발 살 꿈에 부풀어 있던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멀쩡해진 신발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남편이 다시 손질해 준 슬리퍼는 늦가을부터 겨울이 완전히 떠나갈 때까지 시린 내 발을 또 감싸주었다. 하지만 해가 지나자 또 문제가 생겼다. 이젠 발등과 양쪽 새끼발가락 쪽이 해져 속이 비쳤다. 남편은 전에 잘라둔 펠트 조각을 가져다 발등 부분에 둥글게 덧대었다. 그리고 새끼발가락 쪽에는 물방울 모양으로 잘라 붙였다. 신발에 귀마개를 달아준 모양새라 귀여웠다.

나는 남편에게 양손으로 힘껏 물개 박수를 보내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젠 털 쪼가리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까 조심해서 신어야 돼."

묵묵히 내 발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

버린 줄 알았던 펠트 조각 덕분에 털신이 다시 살아났다. 신기했다. 전에는 방 안에 그득한 잡동사니를 보면 골치가 아프다며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덕을 입으니, 화수분처럼 필요한 물건이 샘솟는 그 방이 달라 보였다.

꼼꼼하고 재주 많은 남편 덕분에 새 신을 마련할 기회는 사라졌지만 더 이상 아쉽지 않다. 오히려 십년지기 겨울 짝꿍을 지켜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처음엔 내가 신발을 버리려 할 때마다 기어코 고쳐 놓는 남편이 얄미워 지청구를 늘어놓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실밥이라도 터질라치면 남편을 불러댄다. 남편 손에서 그 녀석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서 말이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찬 기운이 맨발이 닿을세라 그 녀석부터 찾는다. 촘촘하던 털은 듬성듬성해지고 단단하던 가죽은 해졌지만, 그 낡은 신발은 지금도 묵묵히 내 발을 지켜준다. 오랜 친구처럼 정든 그 녀석과 앞으로도 여러 겨울을 함께 지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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