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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암살자(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

영화 에 대한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만큼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연루됐다.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을 모독하는 음모론이라는 비난은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제에서까지 상영을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됐다.

[신경아의 조각보 세상]‘암살자(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

각자의 다름이 다양한 영화 토양

현재 이어지는 공격은 ‘이중 폭력’

국가폭력 역사에 대한 질문 막아

오늘의 공론장 활동 자유도 억압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만큼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연루됐다.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을 모독하는 음모론이라는 비난은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제에서까지 상영을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됐다. 급기야는 몇몇 유튜버를 비롯해 수십명이 배우 유해진의 집 앞으로 몰려가 경찰의 경고를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소동 가운데 “유해진의 얼굴이 북한상”이라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까지 나왔다. 명백한 차별이자 혐오다.

어떤 이미지나 텍스트를 보고 읽는 사람들이 느끼는 소감은 당연히 같을 수 없다. 대중에게 알기 쉽게 해석해주는 평론가들이 있지만, 내로라하는 평론가들이 주는 별점도 다를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인생 영화’에 평론가들이 5점 만점에 2~3점을 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져 왔을 것이다.

나에게 <암살자(들)>은 먼저 포스터로 다가왔다. 세 명의 멋진 배우들-박해일, 유해진, 이민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봉 첫날 찾은 영화관,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또 다른 최애 스타가 등장했다. 박정민이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영화에는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스타’들이 단 한 장면의 연기를 위해 등장했고 그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었다.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한 장면 한 장면에 몰입하며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했다.

그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박정희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 여사가 총탄에 쓰러져 이송되는 장면이 실제 뉴스 화면으로 재연된 탓일까? 그동안 들어온 이야기 정도일 뿐,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 마음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은 언론사에 상주하던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짧은 스포츠머리, 근육질의 몸과 넓은 어깨,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 셔츠와 풀어 헤친 검은색 또는 감청색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다. 10대와 20대를 보냈던 나의 집은 청와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마다 통학하던 버스의 창문 너머 삼삼오오 떼로 몰려다니는 그들을 나는 자주 볼 수 있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강의실과 캠퍼스에서 부딪혔다. 내가 보았던 ‘그들’은 중정 소속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찰과 군인,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의 ‘요원들’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휘둘렀는지는 수없이 재현되어 왔다. 이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짓밟는 범죄자, 기자들의 펜을 꺾는 폭력의 행사자로 등장한다. 거침이 없고 잔인하고 무지성이다. 그들이 자기 일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이 영화를 인간의 자유를 짓밟는 국가폭력의 텍스트로 읽었다. ‘공론장의 파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다. 인간은 취약하고 인간의 삶은 불안정하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다르다. 다른 감정과 다른 생각, 다른 능력을 지니고 살아간다. 취약성과 복수성(다원성)은 인간이 지닌 실존적 조건이다. 이 피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삶을 지속하려면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행위의 공간이 공론장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해나 아렌트는 인간은 말과 행위를 통해 공론장에 참여함으로써만 인간성을 실현해 갈 수 있다고 썼다.

지금 우리 앞에서 전개되는 <암살자(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이중의 의미에서 공론장에 대한 폭력이다. 첫째,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공론장의 말살에 대한 질문을 가로막는다. 이 영화(텍스트)를 시대적 맥락(콘텍스트)에서 읽는다면,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이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다. 둘째, 상영을 막고 배우를 공격하는 행동은 영화라는 공론장의 미디어에 대한 공격이다. 영화 속의 메시지는 사회로 나가 울림을 낳고 또 다른 메시지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감독과 배우에 대한 공격은 공론장의 활동과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이다. 공론장을 파괴하는 <암살자(들)>에 대한 공격은 중단돼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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