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에 발목잡힌 K반도체①]
[편집자주]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3년째 첫삽도 못 뜨고 있다. 발표 이후 약 2년 만에 완공된 일본 구마모토의 TSMC 공장과 대조된다. 속도가 생명인 반도체 산업이 중앙·지방정부에 발목 잡혔다. K반도체의 족쇄를 풀어낼 방법을 찾아본다.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는 2021년 10월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 건설 계획을 공개했다. 공사는 2022년 4월 시작돼 2024년 2월 마무리됐다. 발표 이후 2년 4개월 만에 공장이 준공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약 4760억엔(4조2000억원)의 보조금과 토지 뿐 아니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규제까지 풀어줬다.
반면 삼성전자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2023년 발표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착공도 하지 못했다. 전력·용수 관련 인허가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다. 빨라야 올해 착공해 2030년 준공할 수 있다. 계획 수립부터 완성까지 7년이 걸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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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국, 중앙정부가 '원스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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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남사읍 일대에 777만㎡(약 235만평) 규모로 건설을 추진 중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현재 토지보상 절차가 진행 중이다.
반면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415만㎡(약 126만평) 규모로 구축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는 약 80%의 공정률을 기록 중이다. 당초 SK하이닉스는 2019년 계획을 발표했으나 전력·용수 공급, 토지 보상 문제 등으로 착공이 늦어지면서 2022년에야 공사가 시작됐다. 최첨단 팹(fab·반도체 생산공장) 4기는 지난해 2월 착공했고, 1기의 클린룸은 내년 2월 오픈할 예정이다. 계획 발표 이후 7년 만이 걸리는 셈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공업용수 공급과 관련해 여주시가 보상책 등이 마련될 때까지 인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며 "SK하이닉스가 여주 산업단지 조성과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약속해 용수 인허가를 얻었지만, 그 여파로 착공이 미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도 송전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지자체 도장을 받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장 건설이 늦어지는 사이 반도체 기술은 빠르게 진화했다.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시점만 해도 주력 반도체 공정은 10나노미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2나노, 1.4나노 등 초미세 공정을 놓고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 중이다. 특히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인텔 등은 자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2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의 양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TSMC의 일본 구마모토 1공장은 현재 12~28㎚ 공정으로 이미지 센서, 자동차 칩 등을 매달 약 5만5000장(300mm 웨이퍼 기준) 찍어내고 있다. 구마모토 2공장은 2027~2029년 6~12㎚ 반도체의 웨이퍼 생산을 목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속도 경쟁엔 미국도 뛰어들었다. 미국은 주정부와 의회가 나서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 덕분에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 공장이나 TSMC 공장의 경우 계획 발표 후 착공까지 단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 모두 중앙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공장의 부지 선정부터 용수, 전력 확보까지 '원스톱(One-Stop)'으로 해결해 주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가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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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책임 떠넘기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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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지연의 핵심 원인은 전력 및 용수 문제다. 반도체 생산 라인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미세공정 설비를 돌려야 하는 만큼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두 기업 공장이 쓸 전력을 모두 끌어오려면 전국에 송전탑 약 1만개를 지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발전설비가 몰려있는 영남·호남 지역에서 수백㎞에 달하는 거리에 송전탑을 지으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마다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가동하기 위해선 전력 뿐 아니라 공업용수도 필수적이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선 웨이퍼 표면의 미세한 오염 물질을 씻어내는 세정 공정이 필수적인데, 이때 고도로 정제된 '초순수' 형태의 물이 끊임없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에서 수자원 확보는 생산 수율과 직결된다.
삼성전자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생산 팹 6기를 가동할 경우 일일 전력소비량과 용수소비량은 각각 7GW(기가와트)와 76만4000t(톤)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루 수도권 전체 전력소비량의 4분의 1에 달하고, 대구시 전체 시민의 용수소비량보다 많은 양이다. SK하이닉스의 팹 4기를 돌리려면 전력은 약 3GW, 용수는 57만3000t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용인 내에서 자급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전력망 구축과 용수 확보를 위해선 여러 지자체의 인허가가 필요한 상황인데, 이 문제를 놓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용인시청 관계자는 "전력과 용수 공급에 대한 인허가 권한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니고 있다"며 "전력 문제 등에 대한 인허가는 어느정도 해결돼서 진행이 되고 있는데, 각 지자체의 송전탑 건설 등 인허가가 아직 필요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편 기후부는 송전망과 관련한 인허가 권한은 지자체에 있다는 입장이다. 기후부는 한국전력이 송전 노선을 정할 때 실시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인허가 권한을 지니고 있는데, 현재 용인 반도체 관련 인허가 요청은 없다는 것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송전망의 출발점과 종점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미 허가를 내린 상황"이라며 "송전망과 송전탑 건설 지연 배경은 노선을 정하는 과정에서 지역민 반발과 이에 따른 지자체의 인허가 지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가칭 '국가반도체위원회' 등 컨트롤타워을 만들어 '국가 첨단산단 원스톱 패스트트랙'을 가동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력,용수, 민원 해결, 인허가 문제 등을 기업과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대신 중앙정부가 전권을 갖고 일괄 타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반발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까지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법인세 납부와 수출을 통해 국가적 부가가치를 창출해 왔다"며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경제 자산을 넘어 국가안보를 떠받치는 '실리콘 방패' 기능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 여부는 산업정책 차원을 넘어 국가 존망과 직결된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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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망 '지중화' 또는 '해저화'도 장기적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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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주민 반대 등으로 송전탑 건설이 어렵다면 장기적으로 송전망을 땅 속에 구축하는 '지중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한다. 호남에서 서해를 통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끌어가는 '해저화', 즉 해저 송전 터널 구축 방안도 제시된다.
반도체 산업단지를 여러 곳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태양광 발전설비가 많은 호남, 원자력발전소가 많은 영남, 인재와 연구기반이 많은 용인 등 수도권으로 '반도체 트라이앵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연상 충남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용인 등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은 2050년 일일 최대 약 15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도권 전력망만으로는 공급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지방에서 만든 전략을 끌어 오는 추가 송전망 구축을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고려할 때 원전이나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산업을 분산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진욱 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동구남구갑)은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망법을 만들었으나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조금도 줄지 않고 있다"며 "결국 보상과 설득의 문제인데 한전의 기존 방식으로는 기간 단축이 쉽지 않고 지자체 등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 문제는 한전에 맡겨두기보다는 민관이 송전탑 건설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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