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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요칼럼] 붕괴된 교육의 거울 : 성과주의가 낳은 ‘기능적 맹목’을 넘어

최근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들의 광주일고를 향한 반인륜적 혐오 표현 사태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수요칼럼] 붕괴된 교육의 거울 : 성과주의가 낳은 ‘기능적 맹목’을 넘어

이충원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인간공학박사

최근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들의 광주일고를 향한 반인륜적 혐오 표현 사태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비록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광주일고를 직접 찾아 사과하고 5·18 민주묘역을 참배하며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공론장에 남겨진 상처와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사태를 징계 수위의 적절성이나 일탈 청소년들의 일회성 해프닝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교육 생태계 깊숙이 갉아 들어간 본질적인 결함을 발견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지식과 기술이라는 외형적 성취만 비대하게 키우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공동체적 가치라는 내면의 시민성은 완전히 방치해 온 대한민국 성과 중심 교육 시스템의 붕괴를 알리는 명백한 경고등이다.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가장 두려운 지점이 나타난다. 가해 학생들은 어떤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나 굴절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그런 언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그 반인륜적인 단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자극적인 ‘밈(Meme·놀이 문화)’에 불과했다. 타인의 역사적 상처와 아픔을 조롱하면서도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즉 ‘정서적 문해력의 심각한 결핍’이다.

우리 학교 교육은 경기력과 성취를 높이는 데에는 수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과 존중을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못했다. 오직 눈앞의 승리와 수치화된 등수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매몰된 성과 중심 교육이 낳은 슬픈 단면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사태 이후 정치권과 체육계에서 벌어진 공방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학생의 잘못 때문에 대학 진학과 프로 드래프트를 앞둔 야구부 전체의 인생을 꺾는 6개월 전국대회 출전 정지 징계는 과도한 ‘연좌제’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무고한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형평성 논란도 경청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이 전개되는 프레임 자체가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동체의 질서와 상식적인 약속을 무너뜨린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학교 내부적 자정 시스템의 작동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오직 ‘이 징계가 개인의 입시와 미래 소득에 타격을 주는가’라는 철저한 손익 계산서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반성마저 개인의 스펙 관리라는 가치보다 후순위로 밀려나는 현실은, 우리 교육이 얼마나 지독한 개인주의와 성과 중심의 수렁에 빠져 있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이러한 ‘기능적 맹목’의 교육은 시대적 변화 앞에서도 유효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생성형 AI가 인간의 지식 전수와 기능적 업무를 무서운 속도로 대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처럼 정해진 규칙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 혹은 기술적 스펙을 쌓는 정량적 데이터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존엄과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식을 전달하고 기술을 숙련하는 기능은 이제 기계가 더 잘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고등 교육과 우리 사회가 길러내야 할 진짜 미래 역량은 숫자로 증명되는 한 줄짜리 스펙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야 한다.

복잡한 갈등을 조정하는 포용력,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공감 능력, 그리고 도덕적 무감각을 깨뜨리는 윤리적 판단력이 그것이다. 지식의 양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깊이가 곧 역량이 되는 시대다.

배재고 사태가 주는 궁극적인 교훈은 명확하다. 정량적 성취에만 눈이 멀어 학교 현장의 정서적·윤리적 상태를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환류 시스템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화려한 교육 인프라를 갖추더라도 그 공동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하드웨어를 확장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미래 세대의 내면에 성숙한 공론장의 품격을 심어주는 소프트웨어의 혁신이다.

배재고 사태는 몇몇 학생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교육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성적과 성과만으로는 공동체를 지탱할 수 없다. 이제 학교와 사회는 다시 무거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직 성과만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는 대한민국 교육의 핸들을 이제는 인간 형성이라는 교육 본연의 가치 방향으로 과감하게 꺾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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