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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눈] 겪어봐야 아는 것들

올해 추석은 유난히 조용했다. 부모님이 모두 곁을 떠나신 뒤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찾아갈 집이 없다는 것, 안부 전화 한 통 드릴 곳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큰 빈자리일 줄은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이렇게 허전한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눈] 겪어봐야 아는 것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올해 추석은 유난히 조용했다. 부모님이 모두 곁을 떠나신 뒤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찾아갈 집이 없다는 것, 안부 전화 한 통 드릴 곳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큰 빈자리일 줄은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이렇게 허전한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어린 시절이나 10대에 겪었다면 나는 어떻게 버텼을까.

며칠 전 한 식사 자리에서 그 생각을 꺼냈다. “지금 가족 없이 지내는 아이들은 이번 명절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걱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자리에 함께한 한 분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이 그렇게 자랐고, 그래서 명절이 싫었다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 아이들’을 이야기했는데,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어른이 되어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당사자 앞에서 남의 이야기처럼 말한 셈이 됐다. 사과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분은 내 말의 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듯했고, 어설픈 사과가 오히려 그분의 지난 시간을 다시 들추는 일이 될 것 같아 말을 아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날 이후 “명절이 싫었다”는 그 짧은 한마디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돌아보면 나는 오랫동안 부모와 가족의 부재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안타까워했고, 마음을 다해 공감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로 아는 공감이었다. 명절 아침 갈 곳 없이 맞는 적막, 남들의 북적임이 오히려 더 시리게 느껴지는 마음을 나는 직접 겪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됐다. 그 앎조차 어른이 된 뒤에 얻은 것이니,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그 시간을 홀로 건너온 이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다 닿지 못할 것이다.

그날 이후 그분의 어린 시절 명절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친구들은 할머니 댁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고, 텔레비전에서는 고향을 찾는 귀성 행렬과 웃음 가득한 가족들의 모습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온 세상이 ‘가족’을 이야기하는 며칠 동안, 그 아이는 어디에 마음을 두었을까. 아무도 일부러 상처를 주지는 않았겠지만, 모두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자신에게만 없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아팠을 것이다. 명절이 싫었다는 말은 투정이 아니라, 그 시간을 혼자 견뎌 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담담한 고백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그들을 대하는 마음은 진실했는가. 혹시 나는 ‘돕는 사람’의 자리에 서서 늘 ‘그 사람들’이라고 불러온 것은 아닌가. ‘사회적 약자’라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실례 아닌가.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살아 보지 않은 삶을 너무 쉽게 짐작하지는 않았는가. 진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심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진짜 공감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야 배운다.

돌봄과 지원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끼니와 잠자리, 학비처럼 눈에 보이는 필요부터 챙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명절의 빈자리처럼 숫자로 셀 수 없는 외로움은 쉽게 놓친다. 모두가 가족에게 돌아간 연휴 동안 홀로 남는 아이와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사정을 묻지 않고 “연휴에 우리 같이 밥 먹자”고 먼저 건네는 한마디, 함께 앉을 수 있는 밥상 한자리일지도 모른다.

겪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겪을 수는 없으니, 사람은 결국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이 더 많다. 그렇기에 경험은 우리에게 지식보다 겸손을 먼저 가르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내 앞의 누군가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 겸손이 있을 때 우리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조금 더 오래 듣게 된다.

부모님은 떠나시면서도 내게 가르침을 남기셨다. 슬픔이 나를 조금 더 낮은 자리로 데려다 놓았고, 그 자리에 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얼굴들이 있다. 내년 설에는 쓸쓸함만 안고 있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게 명절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 곁에 조용히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은 끝까지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 추석에 다시 배웠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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