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변화, 20년 만에 찾아왔다…2026년의 은행, ‘변화를 주문하다’
일선 RM, 건설 현장에서 유망 기업 찾아…‘상업ㆍ투자은행 경계 붕괴’
대한민국 금융이 대전환을 시도 중이다. 생산적 금융이다. IMF 외환위기 때 금융권은 공적자금으로 살아났다. 위기는 넘겼다. 그 뒤로는 이자 장사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6년의 금융권은 자본의 흐름을 미래 전략 산업과 자본시장으로 돌리려 한다. 금융이 국가 성장 엔진의 전략 산업으로 다시 서는 과정이다. 부동산에 묶여 있던 돈이 풀린다. 주택담보대출에 고여 있던 자금이 방향을 튼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같은 혁신 기업으로 흘러간다.
은행은 혁신 기업의 파트너가 되려 한다. 증권사는 부동산 PF에 쏠렸던 운용을 바꾼다. 모험자본 투자와 산업 중개로 빈자리를 메운다. 보험사는 기후변화와 고령화에 대비한 미래 인프라를 바라본다. 전문가들은 자본의 대이동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금융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전략 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본지는 업권별로 각 3회의 기획 기사를 내놓다.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본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바뀌는 현장을 점검했다. [편집자 주]
4대 시중은행. 사진=연합뉴스
국내 은행권이 전통적인 수익 추구 모델에서 벗어나 사회ㆍ생산적 가치 창출로 경영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단기 수익성보다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단순한 기업 이미지 개선 차원을 넘어선다고 분석한다. 은행들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확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내재화 등을 통해 '생산금융'의 실질적 구현에 나서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수익성 지표와 함께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하는 새로운 평가 체계를 도입하는 중이다. 금융기관이 지역사회와 경제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정량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과거에는 대출 규모와 수익률이 핵심 지표였다면, 이제는 금융 서비스가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가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은행의 변화, 20년 만에 찾아왔다
물론 시중은행의 변화가 단기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IMF 이후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시중은행은 생존을 위해 ‘가계대출(부동산 대출)’ 중심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실제로 IMF 이전 시중은행의 주된 고객은 기업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들이 줄도산하며 은행들은 천문학적인 부실 채권을 떠안게 됐다.
시중은행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은행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각성하게 됐다. 기업 대출은 경기에 민감하고 부도 시 타격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특히, 시중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규제가 강화되면서, 위험 가중치가 높은 기업 대출보다 위험도가 낮은 주택 담보 대출을 선호하게 됐다.
이른바 은행의 ‘부동산 담보 대출의 황금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 ‘부동산 열풍’이 불면서 은행들은 남는 돈을 가계로 돌렸다. 뿐만 아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가 낮아지면서 일반인들의 대출 수요가 폭발했다.
2000년대 초반 부동산 붐과 맞물려 아파트는 은행 입장에서 ‘절대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담보’가 됐다. 이는 현재 시중은행의 이익의 절반 이상이 가계 대출 이자 수익에서 발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20년 넘게 이어진 부동산 중심의 대출 관행은 최근 정부의 규제와 시장 환경 변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의 ‘LTV(담보인정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강력한 규제로 인해 변화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2026년의 은행, ‘변화를 주문하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은 ‘2026년 병오년’의 시작과 함께 ‘혁신과 변화’를 주문했다. 특히, 2026년의 은행은 더 이상 ‘대출해주고 이자 받는 곳’에 머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2026년 신년사’를 통해, ‘AI 대전환(AX)’, ‘머니무브(자산 이동) 대응’, 그리고 ‘생산적 금융’을 명확히 했다.
특히, 과거의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 중심의 전통적 은행 영업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반영되기도 했다.
우선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은 “사업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주문했다. 양 회장은 ‘전환과 확장(Transition & Expansion)’을 키워드로 제시하며, “은행이 기존의 관습과 기득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단순한 상품 판매 중심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자문·상담 중심의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생산적 금융’을 실현하기 위해 은행의 사업성 평가 역량을 전문화하고,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출 것”을 강조했다.
‘Great Challenge 2030’과 함께 ‘레거시 금융의 탈피’를 선언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은행과 증권의 벽을 허무는 ‘One WM’ 체계를 통해 고도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자본시장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고객 중심의 가치 재정립: 보이스피싱 예방 등 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를 은행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마찬가지다. 함 외장은 “판을 바꾸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함 회장은 가계대출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정하면서 “부동산 등 안전자산 위주의 운용에서 벗어나 실물경제와 혁신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함 회장은 “단순한 코인 발행을 넘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사용이 이뤄지는 생태계를 은행이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은행 본영의 강점인 ‘기업금융’과 ‘AI’의 결합을 내세웠다.
그는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투자(IB)와 융자(대출)를 결합한 입체적 솔루션을 제공하여 ‘기업금융 명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할 것”을 강조했다.
◆일선의 RM, 건설 현장에서 유망 기업을 찾는다
이미지=구글 제미나이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선언’과 함께 일선에서의 방향성도 바뀌고 있다.
2026년 현재,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역(RM, Relationship Manager)들의 동선은 눈에 띄게 변했다. 과거에는 분양 수익이나 기성고(공사진행률)를 확인하기 위해 건설 현장이나 모델하우스를 찾았다면, 지금은 용인·평택의 반도체 클러스터와 오창·울산의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출근하고 있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은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에너지 공급 시설 구축을 위해 약 3.3조원 규모의 금융 주선을 완료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RM들은 건설사가 아닌, 반도체 팹(Fab)에 필수적인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는 인프라 기업들과 매일 머리를 맞대고 있다”면서 “단순 건물을 올리는 ‘부동산 금융’에서, 국가 전략 산업의 혈관을 만드는 ‘인프라·산업 금융’으로 담당역의 전문 분야가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테크 전담 RM을 등장시키고 “재무제표 대신 기술 스택을 본다”는 말을 한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용인과 평택 인근에 ‘반도체 전담 테크 금융센터’를 강화했다. 이곳 RM들은 건설 현장의 공정률 대신, 스타트업의 ‘수율(Yield)’이나 ‘IP(지식재산권)’ 가치를 분석한다.
하나은행 역시 판교와 마곡, 그리고 각 지역의 스타트업 캠퍼스가 RM들의 새로운 ‘현장’이 됐다.
실제로 하나은행의 RM들은 창업가들의 커뮤니티 공간에 직접 상주마며 ‘CFO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건설사 임원을 만나 접대하던 문화 대신, 개발자 출신 대표들과 커피를 마시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시스템’이나 ‘해외 진출 금융 솔루션’을 논의하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BIZ프라임센터’를 반도체·이차전지 기업 밀집 지역으로 확장했다. 이곳 RM들은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우리투자증권(IB)과 연계해 ‘상장(IPO) 전 지분 투자’까지 제안하는 등 대출 상담사보다는 ‘투자 파트너’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다.
◆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의 경계 붕괴’
이미지=CHAT GPT
2026년 시중은행의 변화는 단순한 투자처의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의 경계 붕괴’라는 것이 대체적인 설명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게자는 “과거에는 은행이 기업 주식을 보유하는 것에 보수적이었으나, 2026년 현재는 ‘투융자 복합 금융’이 대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은행과 우리투자증권은 반도체 소재 스타트업에 100억 원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70억원은 저리 대출(융자)로 제공하고 3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직접 지분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울러 2026년은 ‘토큰증권(Security Token)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한 해다. 은행은 이를 통해 대규모 자산을 유동화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중소기업의 친환경 에너지 설비 도입’과 관련, 미래 수익권을 토큰화해 기관 및 개인 투자자에게 조각 투자 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K-콘텐츠 제작비’나 ‘항공기 엔진’ 등도 토큰화하여 유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박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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