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대기 / 변호사, 전 인천시공정경제위원장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석바위시장 앞 '인문학도서관 길위의 꿈' 벽에 걸린,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 말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어떤 시선과 철학으로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AI는 의료·교육·금융·법률·행정·문화예술 등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산업혁명과 인터넷 혁명에 이어 또 하나의 거대한 문명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제 AI는 단순한 산업 기술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산업 구조, 시민의 삶을 재편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세계는 AI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거대 플랫폼 기업과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AI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주도의 투자와 데이터 기반 전략을 통해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유럽은 인간 중심 AI와 윤리·규범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고, 중동 국가들 역시 AI와 데이터센터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AI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양극화와 플랫폼 독점, 개인정보 침해, 허위정보 확산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 이를 어떤 제도와 가치 체계 속에서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AI 기본사회’와 ‘AI 기본도시’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AI 기본사회는 AI 시대에도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자는 구상이다.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디지털 접근권, AI 교육, 데이터 활용 능력과 같은 요소를 새로운 사회적 기반으로 바라보는 접근이다. AI 기본도시 역시 단순한 스마트시티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첨단 기술을 많이 도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 이동, 돌봄, 교육, 행정 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이고 인간 중심적으로 운영하는 도시 모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I 기반 교통 시스템은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높이고 혼잡을 줄일 수 있으며, 공공의료 AI 시스템은 응급 대응과 의료 접근성 개선에 활용될 수 있다. 재난 예측과 돌봄 서비스, 맞춤형 교육과 공공행정 역시 AI 활용 가능성이 큰 분야다.
특히 인천은 AI 기반 미래도시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항만, 경제자유구역, 글로벌 물류망, 바이오·반도체 산업, 디지털 인프라 등이 집적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AI 허브 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반도체 산업, 제조업 경쟁력, 높은 교육 수준과 빠른 기술 수용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바이오·로봇·모빌리티 산업은 AI와 결합할 경우 높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동북아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공항·항만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AI 기업 및 국제 연구기관과의 협력 가능성도 크다. OpenAI, NVIDIA, Microsoft, Google 등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AI 데이터센터와 국제 공동연구, 테스트베드 구축 등을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아가 단순한 산업 중심 AI 강국을 넘어 국제 AI 거버넌스 논의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특히 UN 차원의 글로벌 AI 허브 또는 국제 AI 협력기구 유치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AI 윤리와 디지털 인권, 국제 규범, AI 안전성 검증, 국제 공동연구 등을 선도할 수 있다면 한국은 기술 강국을 넘어 미래 사회 모델 구축에 기여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과정은 국가 위상 강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와 국제연구기관, 스타트업, 첨단 산업이 함께 성장하면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과거 산업화와 정보화 과정이 한국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었듯이, AI 기반 산업 전환 역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기술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AI 시대에는 기술 발전 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와 리더십, 사회적 신뢰가 함께 요구된다. AI는 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알고리즘 편향과 플랫폼 독점, 딥페이크와 허위정보 같은 위험도 안고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윤리와 책임, 민주주의 원칙 역시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있다. AI를 소수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삶과 공공성을 위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 역시 글로벌 AI 허브 국가이자 미래 사회 모델을 선도하는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천이 그 중심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6. 5. 11. 차지호 국회의원 강연 후기)
윤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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