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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상대를 인정 하는 것으로부터 관계는 시작된다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호칭하는 제안이 사회적 논의로 확산되고 있다. 통일부가 이를 ‘국민적 논의의 흐름으로 보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판단하겠다는 맥락에서 제기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대를 인정 하는 것으로부터 관계는 시작된다

▲ 충무공김시민장군 기념사업회 김법혜 회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호칭하는 제안이 사회적 논의로 확산되고 있다. 통일부가 이를 ‘국민적 논의의 흐름으로 보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판단하겠다는 맥락에서 제기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호칭이 남북의 ‘인식’과 ‘관계 설정’에 영향을 주고 있어 헌법·남북 합의·국제법적 지위와의 충돌 가능성까지 함께 논의되고 있다. 종교계 원로들도 남북이 서로의 공식 국호를 존중해 부르자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통일부는 이를 사회적 공감대 형성 과정으로 보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공식 석상에서 ‘조선’ 호칭을 사용한 뒤, 통일부가 ‘공론화’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호칭은 ‘이름이 아니라 관계 설정의 출발점으로 상호 존중·신뢰 구축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학술·정책 논의가 함께 제시됐다.

최근 한국종교지도자원로회의에서도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해 상대의 공식 국호를 존중해 부르자'는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는 결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화를 향한 성숙한 자신감의 표현이며 대결과 증오를 넘어 대화와 신뢰의 길을 여는 작은 시작이다. "

이 선언은 김희중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원행 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김영주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오도철 전 원불교 교정원장,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김영근 전 성균관장, 이범창 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조선(북한)이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과 '한국'으로 부르기 시작한 지 3년이 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지 2년여가 흘렀다. 이 사이에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공식 국호를 사용하거나 '조선'이라는 약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와중에 나온 종교원로회의의 선언은 호칭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차분하면서도 생산적인 논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사안이 남남갈등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조하고 싶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을 주로 '북괴'라고 불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북한'으로 부르는 사람이 늘어났고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감도 컸다. 이를 수습하고 '북한'이라는 호칭을 정착시킨 당사자는 보수 정권인 노태우 정부였다.

1988년 '7·7선언'을 발표하면서 적대와 증오의 언어가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호칭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 사이에 남북 관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럼 공식 국호 사용이 조선의 '적대 적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것일까? 공식 국호 사용이 조선 측 요청을 수용하는 의미도 있지만 적대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공식 국호 사용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취지를 품고 있기에 적대적 두 국가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이라는 호칭이 헌법에 위배 된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 3조의 영토조항과 4조의 평화적 통일 추구 조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 국호 사용이 조선을 국가로 승인하면서 외국으로 간주하자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차분히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현행 헌법하에서도 공식 국호 사용은 가능하다. 냉정하게 보면, '북한'이라는 '통일 지향적인 표현'은 오히려 통일을 멀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식 국호를 사용하면 남북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예단할 수 없다. 또 이름을 달리 부른다고 조선의 노선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시작’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관계의 변화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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