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재계의 ‘바로미터’인 삼성전자의 노사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산업계 전반에 던진 파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선례를 남기면서, 카카오를 비롯한 IT·테크 업계와 자동차·조선 등 전통 제조업계 전반으로 ‘보상 투쟁’이 도미노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기업의 성과 배분 패러다임이 '미래 투자'에서 '당장의 분배'로 이동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깜깜이 성과급은 거부"…실리주의 MZ 노조의 등장
카카오 노조가 지난 20일 파업 찬반투표를 가결하며 배수의 진을 친 배경에는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원인과 닮은꼴인 '보상 체계의 불투명성'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노동운동이 이념이나 고용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면, 최근 IT·테크 기업과 대기업을 주축으로 한 노조는 '내가 기여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겠다'는 실리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회사가 이익을 냈음에도 명확한 기준 없이 성과급을 축소하거나, 경영진의 실책으로 인한 적자 부담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블랙박스형 산정 방식'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특히 카카오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와 계열사 구조조정 속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파업 예고라는 강경책으로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타결의 나비효과…산업계 '하투' 기폭제로
산업계는 이번 삼성전자의 합의 결과가 향후 다른 대기업 노사 협상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마저 노조의 압박에 임금 인상률을 상향하고 성과급 기준을 손질하면서, 다른 기업 노조들의 눈높이도 일제히 치솟았기 때문이다.
당장 올여름 임단협을 앞둔 현대자동차, HD현대중공업 등 대형 제조업 노조들은 '역대급 실적'을 명분으로 영업이익의 20~30%를 성과급 재원으로 내놓으라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삼성도 줬는데 우리라고 못 줄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올해 하반기 산업계 전반의 노사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미래 투자 위축' 대 '공정 분배'…시험대 오른 K-기업들
삼성전자가 쏘아 올린 보상 도미노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직원의 정당한 권리와 사기 진작을 위해 투명한 분배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 반면,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당장의 성과급 재원으로 지출하게 되면, 글로벌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래 기술(R&D) 개발이나 대규모 설비 투자에 투입할 자금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고성과 사업부와 저성과 사업부 간의 보상 격차로 인한 기업 내부의 '노노(勞勞) 갈등' 역시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인재 유치가 곧 경쟁력인 IT와 첨단 산업에서 보상 문제는 가장 민감한 화두"라며 "이제 기업들은 무조건 비용을 아끼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교하고 투명한 보상 기준을 정립해야 하는 시험대에 섰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