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대사 노래로 부르는 건
그 속의 감정을 펼쳐 보이는 일
목소리 높낮이·침묵과 떨림 등
우리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오페라와 뮤지컬에는 낯선 장면이 하나 있다. 대화를 나누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 노래를 시작한다. 말로 해도 될 대사를 굳이 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말만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는 내용을 음악에 실어 한 번 더 들려준다. 왜 그럴까.
사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말이 훨씬 효율적이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집안의 반대 때문에 헤어져야 해요.’ 말로 하면 몇 초면 끝날 이야기다. 그런데 노래가 되면 ‘사랑하지만’에서 선율이 머뭇거리고, ‘헤어져야 해요’는 높이를 바꿔 가며 몇 번이고 돌아온다. 같은 마음을 곱씹는 사이 몇 분이 훌쩍 지나고, 관객은 그 시간을 함께 견딘다. 효율만 따지면 노래는 확실히 손해 보는 방법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레타를 찾아와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부탁한다. 비올레타는 처음엔 완강히 버티지만, 끝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 결심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노래를 주고받는다.
내용만 보면 몇 마디로 충분한 장면이다. ‘알겠습니다. 알프레도를 떠나겠습니다.’ 이 한마디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베르디는 이 한마디를 그렇게 쉽게 지나가게 두지 않는다. 짧은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머뭇거림을, 음악으로 길게 늘여 놓는다.
비올레타는 떠나겠다고 말하지만, 음악은 그 말이 얼마나 아픈 결심인지를 들려준다. 가사가 선택을 설명하는 동안, 선율과 화성은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마음을 따라간다. 말은 이미 결정을 내렸는데, 음악은 아직 그 결정 앞에서 머뭇거린다. 말이 무엇을 할지 알려 준다면, 음악은 그 마음이 어떤지를 들려준다.
여기서 음악이 전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관객은 비올레타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음악은 고민의 내용을 설명하는 대신, 마음이 흔들리는 시간을 표현한다. 같은 한마디라도 어떤 선율로 부르는지, 어떤 화음 위에 놓이는지, 그 뒤에 어떤 음악이 이어지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이 된다. 대사였다면 그냥 지나갔을 몇 초의 망설임이 음악을 만나면서 몇 분의 장면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일은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도, 어젯밤에도 노래를 했다. 다만 그걸 노래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말은 늘 소리에 실려 전해진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우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낮췄다 한다. 또 기쁠 때는 말이 빨라지고, 화가 나면 짧게 끊기고, 슬플 때는 말 사이에 긴 침묵이 생긴다. 무심코 쓰는 말의 높낮이와 속도, 리듬과 쉼이 이미 음악이다. 말에도 선율이 있고, 박자가 있고, 쉼표가 있는 것이다.
아주 짧은 말에서도 드러난다.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 건네는 ‘괜찮아’와, 사실은 괜찮지 않지만 상대를 안심시키려고 애써 꺼내는 ‘괜찮아’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앞의 말은 짧고 가볍게 지나가지만, 뒤의 말에는 잠깐의 멈춤이나 조금 낮아진 목소리가 섞인다. 단어는 같아도 속도와 높낮이, 강약이 달라지면 전해지는 마음도 달라진다.
‘왜?’도 마찬가지다. 놀라서 묻는 ‘왜?’는 목소리가 확 올라가고, 화가 나서 따지는 ‘왜?’는 짧고 세게 끊긴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묻는 ‘왜?’에는 잠시 머뭇거리는 틈이 생긴다. 우리는 이 차이를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듣는다. 단어의 뜻만 듣는 게 아니라 그 말이 어떤 높이와 속도, 리듬으로 나오는지를 함께 듣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페라와 뮤지컬이 대사를 노래로 부르는 건,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말과 그 속의 감정을 더 크게 펼쳐 보이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갈 목소리의 높낮이와 망설임, 침묵과 떨림을 음악은 몇 분 동안 붙잡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든다. 무대 위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도 사실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가 매일 말 속에 담아 보내는 작은 음악을, 조금 더 큰 음악으로 바꾸어 들려줄 뿐이다.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이야기에 음악을 더해 평범한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날 특별한 장면으로 만드는 것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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