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어색함 이겨내며 사는
우리들의 보통 일상이 영화 속에
웅장한 감동과 주제 없어도 좋아
억압 없이 자유롭게 즐기면 그만
오전엔 흐리고 바람 불었다. 오후에도 흐렸지만 가끔 햇살이 비쳤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결 모양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가을 저녁이 왔다. 나는 왠지 쓸쓸하니 마음 둘 데가 없었다. 다저녁때 모자를 눌러쓰고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나섰다.
상영 시각에 맞춰 영화관에 도착했다. 홍상수 감독의 ‘눈 둘 데가 없네’가 시작되었다. 첫 화면에 “흐리고 바람 부는 날, 오후엔 햇살”이라는 문구가 자막 형태로 복선처럼 떠올랐다. 영화는 어느 늦가을날 2박 3일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상희(김민희)라는 인물이 동생 상원(신석호)과 함께 10년 만에 어머니(최명길)를 찾아가서 함께 보내는 사흘. 어머니는 제주도에 정착하여 부유하게 살고 있다. 상희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권해효)과 그의 딸 미소(박미소)와도 인사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는 사흘째 날씨는 “조용하고 따뜻한 아침, 나중에 바람이 거세짐”이었던 것 같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변덕스러운 제주 날씨와 뒤집힌 파란 의자 같은 것, 엄청나게 무질서한 바람 소리가 좋았다. 김민희 배우의 나직한 내레이션은 일기나 편지를 읽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객석에서 혼몽하니 나른해졌다. 늦은 저녁, 작은 영화관은 만석이었고 모두가 작정이나 한 듯 잡음 하나 내지 않았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눈 둘 데가 없네’의 끝부분에는 ‘작은 꽃’이라는 초단편 영화가 삽입되어 있었다. 뭘 찍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냥 찍은 상희의 영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회백색 바위틈에 핀 노랗고 작은 꽃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영화의 대사 전문은 한 편의 시였다. 여기 옮겨본다.
어려서부터 나는 눈 둘 데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 바람이 많았던 날,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 꽃이 제게 말을 거는 것을 느꼈습니다.
난 순하다.
난 조용하다.
그러나
언제나
뭔가를 좋아하고 있어.
그러나 나도 언제나 뭔가를 좋아하고 있다. 나도 상희처럼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서 어디 눈 둘 데가 없었으나, 바람과 햇살과 오래된 연못을 좋아하고 있다. 소소한 공감과 아쉬움을 남기며 영화는 짧게 끝났다. 그러니 이 영화의 주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불편하고 어색하며 조금은 다정한 사람들과의 관계, 관심인 척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뼈 있는 충고, 진짜와 정말을 연발하는 시뮬라시옹의 세계, 아무런 대안이나 개연성 없이 진행되는 우리들의 생활이 영화 속에 있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약간 웃기고 지리멸렬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주제가 없고 노련해지지 않는 게 홍상수 영화의 매력일까? 우연인지 몰라도 나는 그의 데뷔작부터 오늘 본 영화까지 극장에서 다 봤다. 아니, 한 편은 보지 못했네. 감독 나름의 예술관이나 세계관이 있겠지만 그걸 대놓고 관객에게 주장하지 않아서 좋다. 그의 작품들은 웅장한 감동이나 거대한 메시지, 목적의식, 긴 여운, 그런 데 무심해서 나는 억압 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본 이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게끔 요구하지 않아서, 마치 친구의 쓸데없는 얘기를 재밌게 듣는 기분으로 매번 객석에 앉는다. 배우 김민희는 매번 다르게 좋았지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가 화실의 그물침대를 차지하고 누웠을 뿐인데, 눈 감고 천진하게 미소 지었을 뿐인데, 그 해먹이 시공간을 엎질러 요람으로 변하는 느낌이 좋았다.
영화관에서 나와 휴대폰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려는데 누군가 나를 알은체했다. 연극 연출도 하는 극작가, 교수님이었다. “영화 보러 오셨어요? 혼자서요? 선생님도 홍상수 좋아하세요?” 그가 웃었다. “모르셨어요? 시인님 옆자리가 제자리였습니다. 신기하죠? 영화 보며 어둠 속에서 종이에 뭔가를 적으시길래 영화 전공하는 학생인가 싶었네요.” 우리는 멋쩍게 손 흔들고 헤어졌다. 가로수도 외로워서 잎사귀를 흔들다가 떨어뜨렸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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