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케일업 전문 액셀러레이터 뉴패러다임인베스트먼트(공동대표 배상승·박제현)가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스타트업 브랜치에서 개최한 'NP Family AI Seminar: AI 도입 혁신 사례 발표회'에서 농산물 산지 직거래 풀필먼트 스타트업 디어니언(The Onion)의 사례가 공개됐다.
최종석 디어니언 대표는 식품 유통 업계의 오랜 상식을 흔들었다. 매출이 늘면 사람도 같이 늘어야만 굴러간다는 통념을 깨고, 사무직 3명으로 32억원의 매출을 만들어낸 구조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AI를 통해서 식품 유통 회사도 어떤 성공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매출이 커지면 사람이 계속 같이 늘어나는 산업"이라고 진단했다.
먼저 대기업·중견기업·스타트업 다섯 곳을 비교해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그에 따르면 모 대기업들은 매출의 경우 조 단위지만 1인당 매출이 각각 4억원과 3.6억원 수준이고 영업이익률(OPM) 자체가 낮다. 일부는 자본잠식 상태다.
최 대표는 "직원 수가 많을수록 OPM이 낮고 적자에서도 인력 효율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해야만 커지는 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도 이어졌다. 최 대표는 "발주, 주문 취합이 수작업이고 1인당 거래처 30~50개 정도를 커버할 수 있다"며 "외식업체들은 아직도 카톡, 전화 주문, 문자로 주문을 보내고 이걸 사람이 ERP에 직접 손으로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편화된 SaaS에 의존하다 보니 ERP, WMS, 정산, CRM 각각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다"며 "월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진되는데도 휴먼 에러로 인한 정산 분쟁 때문에 또 사람을 고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기성 SaaS의 한계도 작심하고 꼬집었다. 최 대표는 "현장에 맞춰서 개발한 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만들고 '너희들이 적응해'라는 형식"이라며 "다른 기업 개발자나 기획자들과 대화하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 연차요.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들을 자기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사람으로 메운다"며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AI로의 전환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개발 지식이 없던 그가 코드를 짜기까지의 과정은 다소 의외였다. 최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유튜브로 AI가 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개발이 뭔지도 HTML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며 "월 2만7000원짜리 교육을 들으며 GPT로 OMS를 만들어 보려 했는데 안 되더라. 클로드(Claude)가 좋다는 말을 듣고 클로드로 OMS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OMS는 주문 취합 시스템, WMS는 창고 관리 시스템을 의미한다.
특히 가격 관리 자동화 시스템(PMS)에 대한 설명에서는 농산물 유통의 현장감이 묻어났다. 그는 "저녁 6시에 경매 시장에 나가고 밤 10시에 주문을 한다"며 "농산물 시세가 하루에 약 300번 정도 바뀌는데 이걸 일일이 수작업으로 변경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가격을 바꾸는 패턴을 학습시켜 스스로 가격을 적용시킬 수 있는 PMS까지 만들었다"며 "덕분에 정말 못 자던 삶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됐고 그 잔 시간만큼 기회를 벌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최진홍 기자
현재 디어니언이 갖춘 구조는 자율 개발 체계다. 최 대표는 "PM이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자율 개발 체계를 만들었다"며 "요구사항이 입력되면 분해하고 네 개의 역할을 병렬 실행한 뒤 검증·통합한다. 내가 하는 역할은 의사결정뿐"이라고 설명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디어니언은 2024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해 같은 해 매출 9억원, 2025년 32억원을 기록했다. 거래처 수는 1800개, 누적 주문은 12만건이다. 최 대표는 "사무직은 현재 3명이지만 19명에 해당하는 효과가 나오고 있다"며 "2024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은 3.4배 늘었고 사무직원은 한 명만 더 채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아가 "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발주 취합에만 7명, 주문 입력 검수 3명, 총 인력 150명이 투입됐다"며 "10명이서 거래처 1000곳을 나눠서 주문 취합하고 거래처 20곳에 발주하는 업무를 진행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지금은 저 혼자 또는 물류 담당 책임자와 AI가 발주, 주문 검수, 정산, 자동화까지 진행하고 이상 케이스만 사람이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은 약 64조원 규모로 매년 4.7% 성장하지만, 가격 변동성과 폐기율 등 구조적 비효율을 안고 있는 영역이다. 맥킨지는 AI 기반 공급망 최적화 기술이 2030년까지 글로벌 식품 유통 산업 비용을 약 20% 절감시킬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사무직 3명으로 매출 32억원을 만들어낸 디어니언의 사례는, 거대 자본과 인력 투입이 아닌 현장 맞춤형 AI 직접 구축이라는 또 다른 경로를 시장에 제시했다는 평가다.
한편 디어니언은 식당 사장님을 대상으로 산지 직거래 농산물 식자재의 새벽 배송과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 30곳의 산지와 직거래하며, 콜드 체인 보관과 라스트 마일까지 직접 책임지는 구조다. 회사가 운영하는 B2B 식자재 플랫폼 '파라도(Parado)'는 외식업체의 식자재 비용을 평균 15% 절감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일보가 주최한 '2025 디지털 이노베이션 대상' 정보기술(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난해 8월에는 뉴패러다임인베스트먼트로부터 프리A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공지영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직접 개발한 가격 예측 엔진 '프리즘'과 자동 주문 에이전트 '알파카'도 소개됐다. 최 대표는 "농산물도 주식 시장처럼 매일매일 변화가 일어나 저점 매수, 고점 판매가 가능하다"며 "프리즘 도입 후 매입 가격 변동률을 1.9% 수준까지 잡았고 거의 98% 확률로 11일에서 30일까지의 가격을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알파카는 외식업 현장의 디지털 격차를 겨냥했다. 그는 "연세가 있는 분들은 식당에서 앱으로 주문을 못 하신다. 전화 주문하거나 카톡으로 글씨를 써서 하거나 종이에 적어서 사진으로 찍어 보내신다"며 "알파카는 그 사진을 올리면 자동으로 주문이 취합되고 결제까지 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디어니언은 2026년 매출 100억원과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다른 유통사에도 판매할 계획이라는 청사진도 내놨다. 최 대표는 "이 데이터들을 모두 연결했을 때 진짜 온톨로지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며 "그렇게 됐을 때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 빛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마지막으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믿고 살아왔는데 이 시스템이 사람의 역할을 더 차지할 것 같다"며 "업무에 맞는 시스템을 직접 만들면 의사소통에서 벌어지는 개발 에러와 오류를 현저히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AI 활용의 출발점을 '간절함'으로 꼽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저는 아직 AI를 100분의 1, 1000분의 1, 1만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들이 저보다 더 잘 쓰면 배가 아플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저 시스템을 만든 건 잠을 자려고 만들었다"며 "배송하다가 '이걸 만들면 두 시간은 더 자겠지' 싶어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건 될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물어보면 된다"며 "자기 수준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으면 디테일은 그다음에 만들어진다.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다 해보길 바란다"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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