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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람&스토리]이정섭 바이폴 대표 "AI 시대에도 답은 결국 사람이다"

"융복합예술을 통해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

이정섭 바이폴 대표

"융복합예술을 통해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에서 AI 융복합예술 기획자까지. 이정섭 바이폴 대표 및 한양대 겸임교수는 기술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 대표는 현재 융복합예술 창작·교육팀 바이폴을 운영하며 한양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과 전시에서 인터랙티브 아트를 제작하는 한편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출발점은 의외였다. 학창 시절 자신을 "이과 성향의 공부벌레"라고 표현할 정도로 학업에만 몰두했던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첫 학기를 마친 뒤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쌓인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래서 ‘내가 절대 안 할 것 같은 미친 짓을 해보자’고 생각했고, 우연히 본 춤동아리 포스터와 선배의 권유로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 지금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춤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전공 공부와 춤을 병행하면서도 공학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대를 향했다. 영상 편집과 무대기술을 익혀 공연에 적용했고, 춤 동작을 생체역학과 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했다. 학부 졸업논문도 무용 동작의 생체역학적 분석으로 마무리했다.

지난 2024년 대전예술의전당과 한국과학기술원이 공동 제작한 공연실험실 ‘X-Space’에서 연출과 기술총괄, 시각화 디자인을 맡아 공연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선보인 이정섭 대표.

졸업을 앞두고 만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은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그는 "공연을 연구하는 공학대학원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며 "공학과 예술이라는 두 경험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그곳에서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는 다양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미디어아트와 AI 융복합예술이라는 현재의 전문 분야로 이어졌다. 그는 작품을 통해 기술보다 사람을 이야기하려 한다. 자신이 설계한 시스템이 무대나 전시장에 구현되고 관객들이 작품을 즐기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반면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그는 "수많은 사람과 장비, 소프트웨어, 일정,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은 늘 어렵다"며 "애착이 큰 작품일수록 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선보인 AI 융복합 전시 ‘데이터 사피엔스(Data Sapiens)’는 이러한 고민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그는 이번 전시가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이 진행되는 전남의 시대적 변화를 예술적 시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에도 그의 철학이 담겼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혜로운 인간이라면, ‘데이터 사피엔스’는 데이터를 단순히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읽고 해석하며 지혜를 발견하는 인간을 의미한다"며 "측정 가능한 데이터와 측정할 수 없는 지혜는 어쩌면 서로 충돌하는 개념일 수도 있다. 그 긴장과 모순을 이번 전시의 중요한 질문으로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관람객들이 AI와 데이터를 어렵고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체험하길 바란다"며 "수많은 데이터의 파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읽어내고 있는가’, ‘기술 시대의 인간다운 지혜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섭 대표가 플랫폼엘에서 열린 청년예술단 최종발표공연 ‘Turing Test’에서 공동창작과 출연, 뉴미디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앞으로의 목표는 기술과 인간의 감각 사이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그는 데이터와 AI가 대부분 화면과 소리로 전달되는 반면 인간은 오감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공연과 현장 경험을 다시 찾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물리적 감각에 대한 욕구를 더욱 실감했다"며 "기술과 예술이 만나 오감을 자극하는 더욱 강렬한 경험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풀어가고 싶은 과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공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감성을 확장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계속 증명하고 싶다"며 "작가이자 기획자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교육자로서 다음 세대가 기술을 예술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 역할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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