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인 서수연 작가가 10일 서울 마포구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태을) 눈물이 차오른 태을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인다.
(문 열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태을의 시선은 이곤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태을) 코끝이 시큰해진 듯 붉어 있고 얼굴엔 물기가 번져 간다.
(이곤) 이곤의 그리움 가득한 눈빛이 태을에게 멈춰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2020)의 음성해설 대본 중 한 부분이다. 영상을 보지 않아도 드라마의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처럼 음성해설은 시각장애인이 드라마나 영화·공연 등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상황을 묘사하는 대본을 쓰고 이를 음성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인 서수연 작가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음성해설은 시각적인 이미지와 정보를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음성해설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을 펴낸 서 작가는 지금까지 드라마·영화·연극·뮤지컬·무용·전시 등 7800여 작품의 음성해설을 썼다.
우리나라 음성해설의 역사는 서 작가의 발자취와 함께해 왔다. 성우 지망생이자 드라마 작가도
꿈꾸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오디오 낭독 봉사활동을 하던 2003년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음성해설 대본 작업을 제안받은 게 시작이었다. 서 작가는 “2000년대 음성해설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매체에 국한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연예술 분야로 영역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음성해설의 원칙은 콘텐츠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서 작가는 “
드라마와 영화는 인물의 움직임이나 시간·공간의 변화 등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핵심”이라며 “반면 연극·뮤지컬 같은 공연예술은 현장성이 중요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즉흥적인 대응 능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또 “박물관·미술관 전시에서는 음성해설에 촉각 체험물을 함께 활용해 시각장애인의 작품 이해를 돕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음성해설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직관적인 이미지를 정확한 언어로 옮기는 일을
꼽았다. 그는 “언어 간 번역은 ‘사과’와 ‘애플(apple)’처럼 서로 대응되는 단어가 있지만, 이미지를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그렇지 않다”며 “
SF 영화를 보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장면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부터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짧으면서도 정확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가 10일 서울 마포구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그럼에도 음성해설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고, 비장애인까지 음성해설의 매력에 빠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음성해설을 집필했는데 모니터링을 한 시각장애인분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정말 재미있게 감상했다’고 말해준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전했다. 또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경우 비장애인들이 음성해설 파일을 따로 추출해 오디오북처럼 감상하는 커뮤니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음성해설이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임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음성해설 서비스의 확대 필요성도 강조했다.
서 작가는 “현재 10% 수준인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음성해설 의무 편성 비율을 높이고,
한국어
더빙과 음성해설을 함께 제공하는 영화
드라마를 늘려 시각장애인의 외국어 콘텐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음성해설 작가 지망생과 후배들에게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음성해설을 모두 들어보며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잘못된 번역까지 그대로 익힐 수 있다”면서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많이 읽어 자신의 언어를 풍부하게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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