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 금융협력포럼에서 장민영(왼쪽부터) 기업은행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응우옌 응옥 칸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뉴스웍스=차진형 기자] 국내 은행의 베트남 공략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금융 외교로 인허가 장벽을 낮추고, 은행들은 현지 결제·인프라·기업금융 등 영토 확대에 나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대통령 순방 일정에 동행하며 베트남 중앙은행과 금융협력 확대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금융사의 현지 인가 확대와 국경 간 결제 인프라 구축 등 성과를 얻었다.
실제 이번 방문에서 가장 득을 본 곳은 IBK기업은행으로 베트남 현지법인 본인가를 획득했다.
기업은행은 2017년 인가 신청 이후 약 8년여 만에 베트남 중앙은행으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았다. 2017년 이후 사실상 막혀 있던 외국계 은행 신규 법인 인가가 재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 초 한국산업은행 하노이 지점 인가에 이어 기업은행 법인 허가까지 나오면서 한국 금융권은 베트남 내 가장 많은 현지법인(3개)과 두 번째로 많은 외국계 은행 지점(8개)을 보유한 국가로 올라섰다.
기업은행은 오는 10월 법인 출범 이후 현지 진출 중소기업과 로컬 기업 금융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내 지배력 강화에 집중했다. 1993년 국내 금융권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은행은 현재 총자산·대출·예수금 기준 외국계 은행 1위를 유지 중이다.
이번 순방 기간 신한은행은 베트남 중앙은행과 면담을 진행했고 비엣콤은행, FPT그룹, 아그리뱅크와 잇따라 협약을 체결했다.
기업금융을 넘어 디지털 금융,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스타트업 금융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은 가장 공격적으로 결제 시장을 공략했다. 자회사 GLN과 함께 나파스(NAPAS),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과 QR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금융결제원 역시 이번 순방 기간 나파스와 국가 간 QR 결제 연동 본계약을 체결했다. 양국 방문객은 연간 약 480만명에 달한다.
금융위는 QR 결제가 본격화될 경우 신용카드 대비 약 2% 포인트 낮은 수수료 구조를 통해 연간 최대 7500만달러 비용 절감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은행은 인프라 금융도 병행한다. BIDV,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와 손잡고 에너지·도시개발·친환경 프로젝트 금융 확대에 나섰다.
농협은행은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베트남 아그리뱅크와 디지털 농업금융 협약을 맺었다.
농업 플랫폼 '엔에이치(NH)오늘농사' 모델을 현지에 이식하고 카드 기반 해외송금 서비스도 추진한다. 단순 은행업이 아니라 한국형 농업금융 모델 수출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은행은 비엣텔 그룹과 손잡았다. 비엣텔은 베트남 국방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핵심 국영기업이다. 우리은행은 기존 금융 거래를 확대하고 비엣텔의 해외 투자 금융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순방에서 은행만 움직인 것은 아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VAMC와 부실채권(NPL·고정이하여신) 정리 플랫폼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베트남은 부실채권 처리 인프라가 부족한 대표 시장으로 꼽힌다. 한국형 부실채권 정리 시스템이 안착할 경우 현지 진출 금융사의 자산 건전성 관리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다만 변수도 남아 있다. 베트남 금융당국의 외국계 금융사 규제 기조가 완전히 완화된 것은 아니고, 현지 부동산 경기 둔화와 부실채권 증가 역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베트남은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 부실과 기업어음 시장 위축 여파로 금융권 건전성 관리 압박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금융권은 베트남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본다. 한국은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국 중 하나이며 양국 교역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서다. 제조업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의 금융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 베트남 금융시장이 '진출 여부'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국면이 바뀌었다. 인가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를 넘어 결제 인프라·기업금융·자산관리·부실채권 시장까지 얼마나 깊게 현지화하느냐가 승부처가 됐다.
정부의 금융 외교가 문을 열었고 이제 성패는 현지에서 수익 모델을 얼마나 빠르게 안착시키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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