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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다시 품은 이창동…"타인의 고통 어떻게 담을지 고민했다"

아드리아해에 뜬 별들 가운데 베네치아의 은사자는 24년 만에 돌아온 한국 영화 거장의 작품을 향해 포효했다.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막을 내린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에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안겼다.

베니스 다시 품은 이창동…"타인의 고통 어떻게 담을지 고민했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이 감독이 은사자상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드리아해에 뜬 별들 가운데 베네치아의 은사자는 24년 만에 돌아온 한국 영화 거장의 작품을 향해 포효했다.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막을 내린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에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안겼다. 정치적 메시지, 상업적 대중성보다 작가적 비전, 영화사적 가치를 지키는 베니스다운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은 덴마크 감독 메이 엘 투키의 ‘마리가 뭐 어때서’(Kvinde, ukendt)가 챙겼다.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이날 베네치아 리도섬에 위치한 팔라초 델 치네마(Palazzo del Cinema·영화의 궁전)에서 열린 영화제 폐막식에서 주요 수상작을 발표하며 심사위원대상에 ‘가능한 사랑’을 호명했다.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이 감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얼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장 성숙한 작품” 베니스의 극찬

‘가능한 사랑’은 지난 6일 ‘월드프리미어’(전세계 첫 공개)로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돼 6분간 기립박수는 받으며 올해 최고 작품 중 하나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현지 소식지 베네치아뉴스가 집계한 국제평론가 평점에서 평균 4.61점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폐막에 앞서 이날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이 선정하는 국제비평가상도 수상했다.

이런 평단의 호평은 세계 최고(最古) 영화제인 베니스가 중시해온 수상작 선정 경향과 맞닿아있다. 프랑스 칸, 독일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묶이는 베니스는 작가적 색채와 미학적 완성도를 중시해왔다. 소설가로 등단해 중편 <전리(戰利)> 등으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후 뒤늦게 영화계에 뛰어든 이창동 감독이 세 번째 장편 ‘오아시스’로 2002년 베니스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창동 특유의 문학적 색채 짙은 세계관에 베니스가 반응한 결과다.

이날 영화제 폐막 후 열린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홍콩영화 거장 두기봉은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고 ‘가능한 사랑’을 치켜세웠다. 두 감독은 “이 영화의 모든 생각과 디테일을 사랑한다”며 “나라면 결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꿈 사서 받았다고? 성찰이 쌓은 세계관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미옥(전도연) 부부와 이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 그의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의 만남을 그린다.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도 선악의 이분법을 피하고, 서로 다른 계급 간 관계가 우정과 착취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겪어보지 못한 미옥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예지의 노력이 사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삼으려는 데서 비롯됐다는, 의도와 행위 간 모순을 짚는다. 가디언은 “다른 감독이 맡았다면 부유한 부부가 비판받는 풍자극이 되었을 것”이라며 “이 감독은 훨씬 더 미묘하며, 관객에게 전달하는 느리고 절제된 흐름이 있다”고 평했다.

이런 모호함은 이창동 감독이 품어온 창작적 고민의 결과물이다. 앞서 이 감독은 국내 대기업의 정리해고와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을 지켜보며 영화화를 계획했으나 제작을 접었고,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주된 연출 소재로 방향을 틀면서 영화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이날 수상 소감에서 “영화가 종종 타인의 고통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소비하는 경우가 있다”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아야 하는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관객과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계급과 노동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쉽게 선악을 가르거나 답을 내리지 않고, 창작 윤리 자체까지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이런 태도가 심사위원단이 주목한 작가주의적 성취로 이어졌다. 이 감독은 “조여정 배우가 좋은 꿈을 꿨다고 해서 그 꿈을 샀는데, 행운을 가져다줬다”며 겸양을 보여 현장에 웃음을 안겼다.

◇“원망에서 이해로”…전도연도 주목

‘가능한 사랑’은 연출만큼이나 충무로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가 수상의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특히 영화 ‘밀양’(2007) 이후 이 감독과 재회한 전도연의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명연기를 선보였다”고 했다.

전도연은 ‘밀양’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굵직한 기록을 남겼지만, 이후 이 감독과 별다른 인연을 맺지 않았다. 당시 이 감독 특유의 난해한 연출 스타일에 애를 먹어 “감독님을 원망했을 정도”라 털어놓을 만큼 힘든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20년 만의 재회는 달랐다. 베테랑 배우가 된 전도연은 “예전에는 감독님 연출 방식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아니까 현장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이 감독은 “배우들의 영화 속 앙상블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며 “배우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경쟁 부문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은 ‘마리가 뭐 어때서’에 돌아갔다. 감독상(은사자상)은 ‘다우’(DAU)의 일리야 흐르자노프스키 감독이 수상했고, 여우·남우주연상은 각각 ‘마리가 뭐 어때서’의 마틸드 아르셀 포츠크, ‘와일드 호스 나인’의 존 말코비치가 받았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감독님과 모든 배우·제작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 영화의 다양성이 더욱 넓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승목 기자/베네치아=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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