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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섬나라 한국 [글로벌 칼럼]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거점이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혁명의 주요 실험실이라는 이미지다. 디지털 주권과 세계적 리더십을 갖추기 위한 매우 매력적인 방식이었다. 전 세계도 이를 인정해 왔다. 하지만 현재 중동에서...

반도체 섬나라 한국 [글로벌 칼럼]

편집자주

대한민국 최정상 영문매체 Korea Times는 글로벌 전문가들의 영문 칼럼이 가득합니다. 그 가운데 깊은 생각과 문제 의식의 돋보이는 칼럼들을 번역해 한국일보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옥 외관. 뉴스1·연합뉴스

4월 13일을 전후해 브렌트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거의 125달러에 도달했다.

한국에서 이 숫자는 단순 통계수치에 머물지 않는다. 주유소에서, 식료품 진열대에서,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코스피 지수의 폭락에서 그 여파가 느껴진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불안 너머에는 더 깊고 불편한 현실이 있다. 대한민국은 남의 심장에 의존해 움직이는 기술 강국이라는 사실이다.

세계 언론은 여전히 ‘테헤란 톨게이트’와 호르무즈해협 재개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이를 넘어, 고유한 생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로 여겼다.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거점이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혁명의 주요 실험실이라는 이미지다. 디지털 주권과 세계적 리더십을 갖추기 위한 매우 매력적인 방식이었다. 전 세계도 이를 인정해 왔다. 하지만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는 해상 긴장은 이 이미지 뒤에 숨겨진 마찰을 드러낸다. 한국이 취약한 물류 기반으로 위태롭게 서있는 최첨단 기술의 요새, '반도체의 섬나라 (Silicon Island)'라는 것이다.

숫자들은 단순한 시장 지표가 아니다.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이루어지는 냉정한 전략 점검표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한다. 원유의 약 4분의 3, 천연가스의 5분의 1이 매우 불안정한 요충지, 호르무즈라는 단일 해상 통로를 통과해서 들어온다. 난방, 운송, 소비용 연료만 취약한 것이 아니다. 중동 지역의 불안은 세계 헬륨 공급망까지 압박하고 있는데, 헬륨은 한국 산업의 정체성과도 같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바로 여기에 지나칠 수 없는 분명한 역설이 있다. 한국은 기술적으로는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엔진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불안정한 해협이라는 물리적 생명선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전략적 자율성을 소프트웨어 코드나 특허로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클라우드’를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비물질적인 존재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클라우드는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는 거대한 물리적 서버 네트워크다. 서울의 전력 수요가 늘어날수록, 자립에 가까워지기보다는 한국이 초월하려 했던 지리적 한계에 더욱 속박되는 형국이다. 현재 페르시아만에는 26척의 한국 유조선이 허가를 기다리며 발이 묶여 있다.

한국의 에너지 대비 태세와 실제 운용 현실 사이의 간극은 놀라울 정도다. 서류상으로 한국은 208일 분의 전략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 보고서상 이는 매우 안심할 만한 숫자다. 하지만 행정적 계산 방식을 걷어내고 실제 하루 소비량과 정유 처리량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긴급 방출로 2,246만 배럴을 이미 사용한 상황에서, 현재 비축유는 실제 처리량 기준으로 고작 26일 정도만 버틸 수 있을 수 있는 양이다. 이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산업이 모두 멈출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은 대가 없이 안보 수혜를 누려왔다. 보이지 않는, 생존을 위한 동맥인 해상 통로가 당연히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가정하고 사용해왔다. 글로벌 공해 역시 수돗물처럼 언제든 쓸 수 있는 공공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2026년, 이 서비스는 끊기고 있다. 미국이 에너지자립과 보다 거래 중심적인 외교로 방향을 틀면서, 안전한 항로 보장의 약속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구독형 서비스처럼 변하고 있다. 물론 서울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계약을 맺은 적조차 없다. 과거 질서를 지켜온 보호자는 더 이상 새로운 질서의 비용을 대신 부담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 문제는 단순한 물류 문제가 아니라 비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의 가장 직접적인 위협은 북한의 침공을 넘어, 해상에서의 목 조르기라는 현실적인 문제일 수 있다. 한국의 최전선은 더 이상 판문점만이 아니다. 6,000마일 떨어진 페르시아만도 전선이 됐다.

글로벌 중추국이 되는 것은 소프트파워, K팝, 하드웨어 수출만으로는 이뤄지진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촉발된 분쟁 하나로 쉽게 꺼질 수 있는 영향력이라면, 이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홀로 설 수 없는 국가는 중추국이 될 수 없다. 중동 분쟁이 국제사회에 보여준 한 가지 사실은 우리는 모두 세입자일 뿐이고, 난방을 켜고 끄는 집주인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경치는 훌륭할지 몰라도 기반 시설은 우리 손에 있지 않은 셈이다.

이 글을 통해 즉각적인 정책 개편이나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디지털 세계에서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섰지만, 물리적 현실 세계에서는 여전히 한계에 직면해 있다. '수동적 안보의 시대는 끝났다'고, 현재의 위기는 경고하듯 말한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2026년 변동성 크고 불안정한 시대를 헤쳐 나가는 지금,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GPU를 클러스터링할 수 있는가’나 '특허를 몇 개나 낼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반도체 섬나라’ 한국이, 에너지원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다리를 타인의 손에 맡긴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그 생산성과 찬란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정한 주권은 에너지 자립

에 달려있다. 진정으로 미래를 개척하고 소유하려면, 언젠가는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힘도 가져야 한다.

그 전까지는, 기술로 만들어내는 기적들은 그저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금 그 대가를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있는 글로벌 질서로부터 말이다.

※이 칼럼의 시각은 필자 개인의 시각입니다.

코리아타임스 영문 칼럼

주소: 'Silicon Island': Korea's borrowed future - The Korea Times

수 킴 전 CIA 분석가, 전략리스크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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