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쟁 추경’은 ‘경기 대응이 아닌 위기 대응’ 예산임을 각별 명심해야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중동 전쟁 발(發) 불확실성(Uncertainty)에 지난 3월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4원 오른 1,530.1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환율 종가가 1,530원을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 경제는 중동 전쟁 속에서 고유가와 고환율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Stagnation + Inflation)’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는 대외 변수 영향이 가장 크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벌어진 중동 전쟁의 장기화 조짐으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3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종가 기준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겼다. 지난 3월 31일 기준 5월 인도분 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2.88달러로 전장보다 3.25% 상승했다.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12.78달러로 전장보다 0.19% 올랐다. 이렇듯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유가 급등은 필연적으로 무역수지 적자 폭을 키우고 이는 다시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미국 달러화의 상대적 강세와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까지 더해지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지난 3월 31일 우리 경제의 최대 단기 리스크로 중동 사태를 꼽고 유연한 통화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용적 매파(통화 긴축론자)’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경제 전체 흐름을 잘 읽고 금융 제도와 실물경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한 다음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특히 “현재 환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도 시장 불안감을 키웠다고 평가한다. 발언 직후 환율은 분 단위로 요동치며 당일 고점을 경신했고, 당국의 방어 의지를 의심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규모로 순매도하며 원화 가치 하락을 가속화(加速化)시켰다. 지금은 정책 결정권자의 말 한마디에도 시장이 출렁일 만큼 민감하고 불안한 시기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발언은 원칙론에 가깝지만,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경기 친화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중동 상황으로 취약 부문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정책적 완화가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 정부와 긴밀한 정책 공조가 예견되는 발언이다. 고환율, 고유가, 고물가의 ‘3고(高)’ 현상은 우리 경제 ‘펀더 멘털(Fundamental │ 기초 체력)’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하는 특성상 비용 증가는 기업 수익은 줄이고 제품 가격을 인상시켜 서민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킨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물가만 오르는 상황이 고착(固着)되면 소비가 더욱 위축되고 다시 기업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문제는 많은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이란 전쟁이 끝나도 상당 기간 유가 불안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이번 중동 전쟁 발(發) 불확실성(Uncertainty) 위기는 정책적 해법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물가 안정과 경기 방어라는 상충(相沖)된 정책 목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침체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재정 확대에 매달리면 자칫 물가와 금리를 동시에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앞당길 우려도 없지 않다. 더불어 인플레이션(Inflation) 우려가 커지면 한국은행으로서는 경기 둔화에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 난처한 처지로 몰리게 된다. 지금은 현금성 재정 투입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부는 중동발 충격에 대응해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내놓았다. 일종의 응급 처방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정유 업계가 경영 위기에 직면한 데 이어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고유가·고환율이 중첩된 이중 충격과 맞물려 현금 지급성 추경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재정·통화정책 간의 정교한 정책 조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긴요하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이 ‘물가 및 금융 안정’이라는 점을 각별 유념하고 명심해야만 한다. 일련의 거시 안정성 조치와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금융 불안정 리스크(Risk)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과제이자 급선무(急先務)다. 정부는 재정 확대 정책을 펴더라도 에너지, 취약 계층 등에 대한 핀셋 지원으로 물가 상승 부담을 완화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위기를 에너지 공급선(供給線) 다변화와 제조업 구조조정 등의 기회로 삼는 지혜도 요구된다. 규제 완화,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을 통해 경제 ‘펀더 멘털(Fundamental │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쟁 추경’ 안은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 등에 5조 원, 고유가 피해지원금에 4조 8,000억 원, 석유화학 업계의 고용유지 지원 등 민생 안정에 2조 8,000억 원, 에너지·신산업 전환에 8,000억 원, 에너지 복지에 2,000억 원을 배정했다. 재정 지출 규모가 예상외로 크다. 당장 소비자 부담은 덜어 주겠지만 유가가 더 오르면 정유사에 보전해야 할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가격 상한제는 석유를 많이 쓸수록 혜택이 큰 역진적(逆進的) 성격이 강한 데다, 낮은 가격은 에너지 소비가 줄지 않는 요인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에너지 대책은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하고 에너지 절약 유인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전쟁 추경’으로 올해 정부 지출 증가율은 지난해 본예산 대비 두 자릿수(11.8%)가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총지출은 기존 2026년도 본예산 727조 9,000억 원에서 이번 ‘전쟁 추경’ 26조 2,000억 원에서 국채 상환에 투입된 1조 원을 제외한 25조 2,000억 원을 합해 753조 1,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중동 전쟁이 끝나도 고유가 충격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고, 자칫 장기화하면 제2차 추경을 검토해야 할지도 모를만한 비상한 상황이다. 의당 신중한 재정 관리가 더 중요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에너지 수요 관리에 국한한 사업과 재원을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격 보조금은 최소화하고 대신에 에너지 지출 비중이 큰 취약층에 대해 더 큰 지원을 하거나 수입처 다변화 등 공급망 안정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전쟁 추경’ 안(案)은 위기에 취약한 계층을 보다 두꺼운 지원을 한다는 기조가 깔렸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취약 계층의 삶에 가해질 충격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보다 더 강화할 필요가 당연하다. 그것이 단기적인 소비 위축을 완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특히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예산 규모라면, 한시적으로 ‘반값 대중교통’ 등 과감한 절약 대책을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쟁 추경’은 ‘경기 대응이 아닌 위기 대응’ 예산임을 각별 명심해야만 한다. 여·야는 고유가 부담 완화,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추가경정 예산이 되도록 국회 심의 과정에서 더 세밀하고 꼼꼼히 심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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