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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중의 경제적 압박에 경제 나토로 대응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AI, 양자기술 등 전략 분야에서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일본은 소재와 장비, 미국은 설계와 팹리스에 각각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이 비교우위를 조합하면 상호...

미·중의 경제적 압박에 경제 나토로 대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photo 뉴시스

2026년 3월 19일, 유럽의회 교섭단체 리뉴유럽(Renew Europe)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토식 무역협정'을 제안했다. EU와 한국, 일본, 캐나다가 반도체와 희토류 같은 핵심 품목에서 미국이나 중국의 강압적 관세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국가들이 보복관세 등으로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다. 군사동맹 나토(NATO)의 제5조, 즉 하나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원칙을 경제에 투영한 구상이다. 필자가 이 구상을 처음 제안한 것은 2021년 8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정책공모전에서 중국의 일벌백계식 전략을 약화시키기 위한 '공동 역관세'와 '반(反)강압 공동 기금' 창설을 주장했다. 이후 매년 언론 기고를 통해 같은 논지를 이어왔다. 2025년 대선에서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출마선언문에서 "경제 나토의 창설을 제안하겠습니다"라고 밝히며 공약으로 채택했다.

국제 무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2022년 4월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G7이 '경제 나토'로 기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같은 해 7월과 10월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기술 나토(Tech NATO)' 구상을 내놓았다. 2023년 3월에는 람 엠마누엘 주일 미국대사가 '반강압 연합(Anti-Coercion Coalition)'을 제안했고, 두 달 뒤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는 G7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 안보'가 독립 의제로 다뤄지며 '경제적 강압에 대한 조정 플랫폼'이 신설됐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2023년부터 '집단적 회복력(collective resilience)'과 경제 나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경제적 강압에 대한 집단안보 체제는 이제 주요국 정책결정자들이 공유하는 의제가 됐다. 리뉴유럽의 제안은 이 흐름의 가장 최근 결실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photo 뉴시스

설계 4대 원칙과 핵심기능

경제 나토는 한·미·일을 축으로 EU, 캐나다, 호주 등 경제적 강압의 경험을 공유하는 국가들로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 출발점이다. 필자는 이 체제를 네 가지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공동 대응 메커니즘이다. 특정 회원국이 경제적 보복을 받으면 나머지가 공동 제재 또는 피해국 지원에 나선다. 2020년 중국이 호주의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문제삼아 와인·보리·석탄 수입을 제한했을 때, 일부 서방 국가들이 호주산 제품 수입을 늘리며 비공식적 연대를 보인 바 있다. 경제 나토는 이를 제도화한다. 공동 금융 지원, 긴급 무역 파이프라인 확보, 시장 다변화 지원 등 구체적 메커니즘을 사전에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기술 공유와 합동 연구개발이다. 반도체, 배터리, AI, 양자기술 등 전략 분야에서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일본은 소재와 장비, 미국은 설계와 팹리스에 각각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이 비교우위를 조합하면 상호 보완적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미국과 EU가 2022년 출범시킨 '무역과 기술 위원회(TTC)'는 이 방향의 초기 사례다.

셋째, 외교 정책의 사전 조율이다. 민감한 외교 결정이 경제적 보복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2021년 대만 대표부를 유치하면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맞았다. 유럽연합의 사전 조율 부재 속에 큰 피해를 봤다. 반도체 수출 통제, 대만 관련 외교 등 고위험 이슈에 대한 시나리오별 공동 대응 계획이 필요하다.

넷째, 내부 무역 갈등 조정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회원국 간 통상 마찰을 해소할 내부 조정위원회가 필요하다. EU조차 농업보조금, 탄소국경세 문제에서 빈번한 내부 갈등을 겪지만, 집행위원회와 이사회의 조정 절차를 통해 결속을 유지해왔다. 경제 나토에도 같은 기능이 필요하다. 세계가 블록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면, 그 블록 안에서 지분을 차지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룰을 세팅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네 가지 기능 중 일부는 G7이나 미·EU TTC 등 기존 협의체에서도 시도되고 있지만, 한국은 이들 체제의 정식 회원이 아니다. 경제 나토의 의의는 한국이 설계에 참여하는 틀 안에서 공동 대응의 의지와 메커니즘을 갖추고, 이를 통해 억제력을 창출하는 데 있다. 물론 외교 정책 조율과 내부 갈등 조정은 주권의 일부를 협의 메커니즘에 맡기는 것이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 나토에 EU 수준의 구속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전에 시나리오를 공유하고 대응 원칙을 합의해두는 것만으로 위기 시 조율 비용은 크게 낮아진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photo 뉴시스·AP

경제적 강압에 대한 문제의식의 뿌리는 깊다. 1945년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무역이 특정 상대국에 집중될수록 정치적 레버리지가 발생한다고 경고하며, 나치 독일이 동남유럽 소국들을 상대로 무역 의존을 정치적 지배로 전환한 구조를 분석했다. 2019년 에이브러햄 뉴먼과 헨리 파렐은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를 장악한 국가가 공급을 차단하고 주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양태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제 강압의 최근 사례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중국의 사례만 봐도 다음과 같다. 2010년 중국은 반체제인사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발해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차단했고, 같은 해 센카쿠열도 분쟁을 빌미로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막았다. 2012년에는 남중국해 스카버러 숄 영유권 분쟁 과정에서 필리핀산 바나나를 검역을 명목으로 항구에 묶어두었다. 2016년에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한 몽골에 국경 통관료를 인상하고, 같은 해 사드(THAAD) 배치를 결정한 한국에는 한한령과 롯데마트 강제 폐쇄로 보복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한 호주의 와인·보리·석탄 수입을 제한했고, 2021년에는 대만 대표부를 유치한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사실상의 무역 봉쇄를 가했다. 중국이 반대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국가를 각개격파하는 패턴이다.

경제 나토의 핵심은 치유가 아니라 억제다. 공급망 다변화나 원자재 확보 같은 기존의 방어적 조치는 피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강압 자체를 예방하지는 못한다. 경제 나토는 다르다. 경제적 강압을 시도하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가가 따른다는 구조를 사전에 만든다. 강압의 비용을 강압국의 계산 단계에서부터 올리는 것이다.

빅터 차 석좌에 따르면, 지금까지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받은 18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 중 중국의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것만 합산해도 466억달러에 달한다. OLED 패널의 경우 수입 의존도가 94%이며 한국산이 주류다. 비대칭적 상호의존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강압을 행사하는 중국도 피강압국의 특정 품목에 깊이 의존하고 있으며, 피강압국들이 연합하면 이 의존성 자체가 역레버리지가 된다. 각국이 모든 품목을 방어할 필요는 없다. 각자가 핵심 취약 품목 하나씩을 맡아 공동 억지력을 구성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이 집단적 레버리지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브룩스와 벤 베이글에 따르면, 미국 기업은 전 세계 기업 이윤의 38%를 차지하고, 미국의 동맹국 기업까지 합산하면 73%에 달한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 미국 기업이 첨단기술 이윤의 55%를, 동맹국까지 합치면 84%를 차지하는 반면, 중국은 6%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전통적 지표는 세계화 시대의 경제력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글로벌 상업을 실제로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의 이윤이야말로 경제력의 진정한 척도로 볼 수 있다. 경제 나토가 이 이윤 구조를 활용해 집단적 억지력을 구축할 경우, 중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개별 국가를 상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photo 뉴시스·AP

중국과의 무역 전쟁 아닌 유연한 대응

경제 나토에 대한 가장 흔한 반론은 트럼프의 미국 자체가 경제적 강압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당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아시아에서의 패권 확장이라는 더 큰 전략적 맥락 위에 놓여 있고, 이는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다. 미국의 관세가 동맹 간의 통상 마찰이라면, 중국의 강압은 한국이 속한 지역 질서 자체를 재편하려는 시도의 일부다. 100% 일관된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빅터 차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상대국의 주권적 정치 선택을 바꾸기 위해 무역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위'다.

유럽의 군사 나토 자체가 내부 갈등 속에서도 작동하는 모델을 보여준다.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1952년 동시에 나토에 가입했는데, 당시 가입 목적 중 하나가 두 나라의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양국은 최소 세 차례 전쟁 직전까지 갔고, 그때마다 나토나 미국의 중재로 위기가 봉합됐다. 에게해 영공 분쟁, 대륙붕 경계, 동지중해 가스전 탐사를 둘러싼 마찰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나토 멤버십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큰 공동의 위협이 존재하고, 동맹의 틀 안에서 갈등을 관리하는 비용이 동맹 밖에서 각자 대응하는 비용보다 낮기 때문이다.

리뉴유럽의 제안이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강압의 대상으로 상정한 것은 EU의 지정학적 위치를 반영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안보의 근간으로 삼는 한국이 같은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설계하는 경제 나토는 중국의 정치적 강압을 핵심 대상으로 삼되, 미국과의 통상 갈등은 동맹 내부의 협의 채널에서 조율하는 이중 구조가 적합하다. 정의의 잣대보다 생존의 전략으로 접근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오히려 경제제재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인물이 체제의 일원이 되면 위협의 신빙성이 높아진다. 빅터 차 교수가 지적했듯, 미국이 관세로 동맹을 압박하는 방식은 전략적으로 옳지 않지만, 동맹을 하나로 묶어 중국의 강압에 공동 대응하는 구조에는 미국의 이해관계도 충분히 부합한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대체로 한국의 한·미·일 공조 강화 등 미국이 원하는 외교 노선에 대한 보복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질적 리스크는 따로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강압적 행동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대중국 관세를 확대하는 경향이다. 국제정치학자 토머스 셸링은 억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한 발짝만 더 오면 쏜다'는 위협은 '멈추면 쏘지 않겠다'는 암묵적 보장이 수반될 때만 억제로 작동한다. 반면 무조건적으로 쏘겠다는 의사를 통보하면, 상대에게는 선택지가 사라진다. 경제 나토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강압을 멈추면 보복도 멈춘다는 조건성이 체제의 신뢰성을 담보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강압 여부와 관계없이 관세를 남발하면 경제 나토의 억제 논리 자체가 훼손된다. 이것이야말로 경제 나토 속 동맹 간 사전 조율이 필요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 정치적 목표 달성에는 대체로 실패한다는 분석도 있다. CSIS의 2023년 보고서는 8개국 사례를 분석한 끝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왜 경제 나토가 필요한가. 강압이 직접적인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는 데 실패하더라도, 피강압국에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히며, 무엇보다 제3국에 '위축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국이 칩(Chip)4 동맹 참여를 주저한 배경에도, 대만 문제에서 목소리를 낮추는 국가들이 많은 이유에도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경제 나토의 목적은 바로 이 위축효과를 차단하는 데 있다.

경제 나토가 중국과의 전면적 무역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연한 대응 원칙이 핵심이다. 유럽의 군사 나토도 비슷하다. 2020년 러시아가 시리아 주둔 튀르키예군을 폭격했을 때 나토는 개입하지 않았다. 헌장상 방어 의무 범위 밖이었기 때문이다. 경제 나토도 상황과 사안에 따라 섬세하게 대응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정해진 매뉴얼이 아니라 사안별 유연한 대응 원칙에 달려 있는 체제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 나토는 불필요하게 도발적인 행동을 한 회원국에 백지수표를 써주는 체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회원국이 무모한 외교적 모험을 감행한 뒤 경제적 보복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집단 대응이 발동되는 구조는 경제적 연루(entrapment)의 위험을 만든다.

그러나 이 우려는 과장될 필요가 없다. 국제정치학자 통피 킴(Tongfi Kim)에 따르면, 실제로 군사 동맹에 의한 연루는 생각보다 드물다. 국가지도자들은 연루의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동맹 조약을 설계할 때 이를 방지하는 조건과 예외 조항을 신중하게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미국·스페인 동맹 모두 이런 설계를 거쳤다.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강철 조약'은 회원국이 타국을 먼저 침공해도 서로 돕는 '공격적 동맹'이었다. 그러나 그 이래로 공격적 군사동맹은 극히 드물었다. 경제 나토 역시 방어적 억제에 초점을 맞추되 도발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은 배제하는 설계가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한다.

집단 억제력의 실효성과 과제

경제 나토의 요체는 억제다. 군사적 공격이든 경제적 강압이든 시도하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따른다는 구조를 사전에 설계함으로써, 그 시도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다. 공급망 다변화가 방패라면, 경제 나토는 창이다. 방패만으로는 강압을 막을 수 없다. 보복의 의지와 능력을 갖춘 집단체제만이 강압의 계산법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경제 나토의 형성 자체가 중국의 선제적 보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군사동맹에서 익숙한 안보 딜레마의 경제적 변환이다. 1949년 나토 창설 당시에도 소련의 반발은 불가피했지만, 그 반발의 비용보다 억제 체제 부재의 비용이 더 컸기에 동맹이 성립했다. 경제 나토도 같은 계산에서 출발한다. 중국은 앞으로도 타 국가들을 상대로 경제적 강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반발 가능성은 체제 설계의 변수이지, 체제 자체를 포기할 이유는 아니다. 집단 경제 안보에 대한 요구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한국은 이 논의에서 수동적 관전자가 아니라, 첨단산업의 전략적 레버리지를 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유사입장국들과 이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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