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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무대 안에서나 밖에서나 ‘우리 시대의 아버지’였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등 뒤의 창문을 열어봐라. 행복이란 놈이 거기 있을 거다.”

브라운관 시절부터 약 60년 동안 시청자의 곁을 지킨 최불암씨. 그는 2007년 출간한 에세이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에서 “닮고 싶은 인물, 따라가고 싶은 인간상을 TV가 그려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단법인 제로캠프 제공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등 뒤의 창문을 열어봐라. 행복이란 놈이 거기 있을 거다.”

자신을 기억할 이들에게 ‘국민 아버지’로서 남긴 메시지였을까. 30일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 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인으로부터 생전 들었던 대사’라며 이런 말을 전했다. 유 전 장관은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년)에서 22년간 고인의 아들 역을 맡은 바 있다.

구부정한 뒷모습만으로 마음을 흔들었고, “파하∼” 하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시청자의 시름을 날려버렸던 최 씨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

스무 살에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고인은 드라마 130여 편과 영화 90여 편, 연극 50여 편에 출연하며 평생 촬영장과 무대를 누볐다. 하지만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악화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14년간 진행해 온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하차했다. 재활에 힘써 왔으나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 ‘한국인의 얼’ 표현한 연기자

배우 최불암 씨는 드라마 ‘수사반장’(1971∼1989년)에서 박 반장 역을 맡으며 당대 아버지와 서민의 얼굴을 연기해 왔다. MBC

인천 출신인 고인은 “한국인의 얼을 나타내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1967년 KBS 특채 탤런트로 뽑히면서 드라마에 데뷔한 그는 2년 뒤 MBC로 소속을 옮기면서 드라마 ‘수사반장’(1971∼1989년)을 만났다. 18년간 880회에 걸쳐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박영한 형사반장을 연기했다. “사회를 계도하는 큰어른 역할의 연기자가 매번 술에 취해 비틀거릴 수는 없다”며 한동안 술을 끊기도 했다. 극 중 형사들의 활약으로 경찰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자 1972년 명예 경감으로 위촉됐다.

배우 최불암 씨는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년)에서 양촌리 김 회장 역을 맡으며 당대 아버지와 서민의 얼굴을 연기해 왔다. MBC

‘한국 아버지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건 ‘전원일기’ 때부터다. 고인은 극 중 양촌리 김 회장 역을 맡아 마을 공동체의 중심을 지키는 어른이자 대가족을 지탱하는 가장을 연기했다. 가문의 질서를 중시하는 엄한 아버지이면서도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깊이 아끼는 김 회장의 모습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찾았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고개를 젖히며 파안대소하는 웃음도 이때 탄생했다.

배우 최불암 씨는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2011∼2012년)에서 외딴집을 지키며 사는 정부식 역을 맡으며 당대 아버지와 서민의 얼굴을 연기해 왔다. 채널A 제공

1990년대엔 그의 이름을 내세운 유머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하는 등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각박한 세상에서 곧 멸종될 것 같은 김 회장의 순박한 캐릭터가 어리숙한 ‘최불암 시리즈’를 낳은 것 같더군요. 광대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1998년 동아일보 인터뷰)

연기자로서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엔 절망감에 괴로워하던 20대 시절도 자양분이 됐다. 고인은 주인공을 맡았던 한 연극에서 혹평을 받으며 연기를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고, 제대 뒤 지독한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져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 자신을 건진 건 “세상의 떡이 다 네 떡인 줄 아느냐?”는 한 목사의 호통과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멀리 내다보며 헤아리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휘호였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쓴소리 아끼지 않았던 어른

방송계의 변화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2005년 11월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로 기자들을 만난 그는 “드라마로 쓴맛도 봐야지, 단맛만 봐서야 되겠느냐”며 “말초적인 것만 건드리면 감동이 없다”고 지적했다. 2024년 ‘수사반장’의 프리퀄인 드라마 ‘수사반장 1958’ 방송을 앞두고는 후배 배우들에게 “국민이 가야 할 길에 가시덤불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치워주는 것이 바로 광대 정신”이라며 “배우이지만, 광대이지만,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좋은 일은 따르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무대 밖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1981년 드라마 ‘전원일기’ 촬영장에서 아역 배우들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을 시작했으며, 1985년부턴 이 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했다. 재단 측은 “45년 동안 가장 낮은 곳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셨다”며 연예계에 결연 후원 문화를 정착시킨 대표적 인물이 바로 고인이라고 밝혔다. 생전 주변인들에게 남긴 고인의 뜻에 따라 운구 행렬은 장지로 떠나기 전 서울 중구 초록우산 본부에 들를 예정이다.

이날 고인의 빈소에는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부부로 손발을 맞췄던 김혜자 씨는 “저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죽으면 또 만날 거고. 마지막이라고 하지 말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배우 나문희 씨는 조문을 마친 뒤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서 마음 한구석이 많이 섭섭하다”고 했다. ‘그대 그리고 나’(1997∼1998년)에서 아들로 출연했던 차인표 씨는 “우리나라가 어렵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국민들에게 용기, 위로를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오랜 세월 국민 곁을 지켜주신 선생님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부인 김민자 씨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있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다음 달 2일 오전 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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