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테크 투자자 주도
美서 ‘약물 올림픽’ 열려
의료·스포츠계 거센 반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24일(현지시간) 열린 ‘인핸스트 게임스’의 육상 단거리에 출전한 라이베리아의 이매뉴얼 마타디. AFP연합뉴스
금지약물 사용을 허용하는 이른바 ‘약물 올림픽’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현실화됐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과 바이오해킹 투자자들은 이를 단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인간 수명 연장과 신체 강화 산업을 대중화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면 의료계와 반도핑 기관은 “돈을 위해 인간 몸을 상품화하는 위험한 프로젝트”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인핸스트 그룹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인핸스트 게임스’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선수들의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적혈구 증가 호르몬(EPO) 등 약물 사용을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사 감독 아래 공개적으로 투여하도록 설계됐다. 수영과 육상, 역도 등 3개 종목이 열리는 이 대회에는 42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참가 선수 중 36명이 도핑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선수들의 약물 사용 비율은 테스토스테론 91%, 성장호르몬 79%, 각성제 62%, EPO 41% 수준이었다. 각 종목 1위에게는 25만달러의 상금이, 세계신기록을 깨면 100만달러의 추가 상금이 주어진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은 독일 출신 억만장자 크리스티안 앙거마이어다. 그는 사이키델릭(환각제) 기반 정신치료 기업에 투자해 이름을 알린 바이오테크 투자자다. 그는 “선수들에게 경기력 향상 약물을 금지하는 것이 오히려 비윤리적”이라며 “광부를 탄광에 보내면서 헬멧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는 체중 감량 주사와 테스토스테론, 성장호르몬, 집중력 향상제 등을 직접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실리콘밸리 거물들도 대거 참여했다.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가 주요 투자자이며,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의 측근 크리스 버스커크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참여한 벤처캐피털 ‘1789 캐피털’도 투자했다. 가상화폐 투자자 발라지 스리니바산, 윙클보스 형제 등도 투자자 명단에 포함됐다.
주최 측은 스포츠보다 더 큰 사업모델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향후 원격의료 플랫폼을 통해 테스토스테론과 각종 ‘강화 약물’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기록 향상을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회에 참가한 호주 수영선수 제임스 매그너슨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엔터테인먼트지만 미래에는 인간 최적화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진행된 대회에서는 남자 자유형 50m에서 비공식 세계신기록도 나왔다.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인 그리스 수영선수 크리스티안 골로메브는 20초81을 기록하며 호주의 캐머런 매커보이가 올해 세운 최고 기록(20초88)을 0.07초 앞질렀다. 골로메브는 우승과 함께 100만달러 상금을 받았지만 이번 기록은 세계수영연맹의 공인을 받지 못해 공식 세계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의료계와 스포츠계 반발은 거세다. 트래비스 타이거트 미국반도핑기구(USADA) 대표는 이를 ‘돈을 우선한 위험한 광대쇼’라고 비판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역시 “책임감 없는 위험한 개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피터 코언 하버드 의대 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을 실험 대상이자 마케팅 도구로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며 “약물 조합의 장기 부작용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테로이드와 성장호르몬, EPO 조합이 심장마비, 혈전, 간 손상, 불임, 정신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