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폭격으로 시작된 중동의 화염이 한국까지 번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오는 원유와 가스에 의존해 온 한국 같은 나라엔 직격탄이다. 국제기구 수장들은 일제히 같은 결론을 내놓는다. 화석연료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답은 재생에너지다.
"오늘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화석연료는 더 비쌀 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지도 못합니다." — 안토니오 구테흐스 / UN 사무총장
그런데 한국은 멈춰 서 있다. 일본은 2010년대 이후 앞서나갔고, 한참 뒤처져 있던 대만조차 2020년대 들어 한국을 추월해 격차를 벌리고 있다. OECD 최하위권. 무엇이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나.
■ 만성 지연의 첫 번째 이유:송전선이 없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16년째 태양광 사업을 해온 허성일 씨는 최근 첫 발전소의 패널을 교체하는 '리파워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간단한 교체만으로 수익이 세 배로 늘어나는 좋은 사업이다. 그런데 시작도 못 할 뻔했다.
"본래 계획은 겨울에 공사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서류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예정되어 있던 계통을 누가 가져갔다. 할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생산된 전기를 밖으로 보내는 통로가 막혔던 거죠. 거의 석 달 이상을 기다렸어요." — 허성일 / 태양광 발전 사업자
전선, 즉 '계통(Grid)' 부족이 한국 태양광 확대의 최대 걸림돌이다. 패널은 몇 달이면 깔 수 있다. 그러나 생산한 전기를 도시로 보낼 길이 막혀 있다.
"배전망이 부족하다 보니까, 몇 년을 기다려야 될 수도 있어요. 전라도나 충청도 이쪽은 선로가 꽉 찬 데가 많아서. 전라도는 거의 태양광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보시면 돼요. 선로가 없어서." — 권기덕 / 태양광 설치업체 대표
여기에 일관성 없는 규제도 더해진다. 같은 태양광인데 지붕에는 되고 마당에는 안 되는 식이다. 정부가 통일된 기준을 내놓지 못하니 지자체마다 답이 다르다.
"한국의 지난 10년은 만성적인 지연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는 상당 부분 규제 정책과 계획, 그리고 실행 체계의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 그랜트 하우버 / IEEFA 아시아 담당 금융 전략고문
■ 송전선의 답은 '수도권 지붕'에 있다
한국은 전체 전력의 절반 가까이 수도권에서 소비한다. 그런데 발전은 해안 지역에서 한다. 그 결과 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쏘아 보내는 거대한 송전망이 필요하다.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의 반대, 변전소 부지 갈등, 5년·10년씩 늘어지는 사업 기간. 송전망 추가 건설은 사실상 한계에 부딪혔다.
해법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수도권이 직접 만들면 된다.
특히 도심의 발전 패턴은 태양광과 궁합이 좋다. 태양광은 아침에 발전을 시작해 오후 두세 시에 정점에 이른다. 이 곡선이 상업지구 전력 소비 곡선과 거의 일치한다.
"서울 내에서도 상업지역, 그리고 기업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의 소비 패턴이 태양광의 발전 패턴과 굉장히 유사해요. 이 지역에 가장 먼저 태양광이 들어온다면 우리가 전력 수요를 좀 더 평탄화하는 데 기여를 할 수가 있을 거고요." — 송용현 /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
GIS 데이터로 서울·경기 지역의 옥상 면적을 보수적으로 계산해 봤다. 면적의 5분의 1만 사용하고, 음영 구역과 너무 작은 지붕은 제외했다. 그 잠재 발전 용량이 9기가와트. 평균 LNG 발전소(500MW) 8개가 생산하는 전기를 대체할 수 있는 규모다. 피크 시간대 기준으로 수도권이 외부에서 끌어오는 전기의 약 40%를 줄일 수 있다. 그만큼 새로 지어야 할 송전선도 줄어든다.
■ 강남에선 왜 베란다 태양광이 무산됐나
남는 장사처럼 보이는데도 사업 확산은 더디다.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는 옥상과 베란다에 태양광을 시범 설치한 뒤 1년 만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했다. 사용 연한 20년 가운데 19년 치 수익이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도심에선 이런 사례가 드물다.
"지가가 높은 지역일수록 태양광 설치율이 낮아지고, 이해관계가 도시일수록 더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베란다 태양광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왔어요. 결국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입주자 대표 회의가 아파트 경관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 혹시 집값이 떨어지는 건 아니냐..." — 이기관 / 태양광 설치업체 대표
전문가들은 도심이 태양광에 인색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걸림돌 1
: 일부 반대로도 공동주택 사업은 무산된다.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서 옥상이나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면 관리사무소 승인이 필요하다. 반대하는 입주자가 일정 부분만 있어도 사업은 멈춘다.
걸림돌 2
: 아파트 옥상 태양광은 공용 전기요금만 깎는다. 우리 집 누진제가 줄어드는 직접적 혜택이 없으니, 효능감이 떨어진다.
걸림돌 3
: 투자는 집주인, 혜택은 임차인. 설치비는 임대인이 내는데, 깎인 전기요금은 임차인이 가져간다. 이익 분배 구조가 어긋난다.
"건물형 태양광으로 문제를 한정했을 때, 이 태양광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외면했다고 생각합니다." — 송용현 /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
■ 돈과 기술은 이미 답을 가리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한국 금융권은 이미 재생에너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는 ESG나 사회적 책임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순전히 경제적 판단이다.
"(태양광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발전량이 덜 나와서 걱정했던 발전소는 저희가 투자했던 것 가운데서는 없었습니다. 금융권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대출을 해주려고 합니다. 사업비가 100%라고 한다면, 10%만 투입하면 나머지 90%는 금융권에서 다 조달을 해주고 있습니다." — 이창석 / 자산운용사 부사장
전수조사 결과 부실률은 0.2% 이하. 안전한 투자처라는 뜻이다. 기술도 따라왔다. 태양광·풍력의 약점인 간헐성을 보완하는 가상발전소(VPP) 같은 IT 기반 기술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수많은 발전소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발전소처럼 통합 제어한다.
"재생에너지가 주력 자원화가 될수록 VPP는 필수적인 운영 요소라고 봅니다. VPP가 없으면 관리도 안 되고 계통 운영도 불가능합니다." — 노서영 / 에너지 스타트업 VPP 부문 본부장
기술도 돈도 준비됐다. 그런데 시장이, 그리고 정책이 따라오지 못한다.
이창석 부사장의 계산은 더 구체적이다. 한국 1년 예산 약 700조 원 가운데 3분의 1이 에너지 수입에 쓰인다. 재수출분을 빼도 약 175조 원. 이 돈을 AI, 로봇, 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다면 1인당 GDP 4만 달러가 7만~8만 달러로 향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를 이야기하지 않는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과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가 똑같아요." — 이주헌 / 사단법인 넥스트 전문위원
덴마크가 재생에너지 강국이 된 것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부터 시작한 정책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에너지 안보라는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은 어떤가. 정치적 대립 속에서 정책은 지속성을 잃었고, 2030년 재생에너지 100기가와트 목표 달성도 현장에선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온다.
태양은 사라지지 않고,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호르무즈는 언제든 다시 닫힐 수 있다. 답은 이미 우리 머리 위, 도시의 지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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