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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의 뿌리를 찾아서- 달성군] 명심보감, 누가 쓴 책인가?…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

명심보감(明心寶鑑, Ming Sin Pau Kiem 혹은 Mirror of the Mind)이 국제적으로 저자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은 i) 그만큼 동양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동양윤리교과서(東洋倫理敎科書, oriental ethics textbook)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구촌 인류를 대상으로 한 저서 마케팅 현장의 모습. 생성형 AI 생성 이미지

명심보감(明心寶鑑, Ming Sin Pau Kiem 혹은 Mirror of the Mind)이 국제적으로 저자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은 i) 그만큼 동양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동양윤리교과서(東洋倫理敎科書, oriental ethics textbook)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ii) 중국문헌(中國文獻)이나 중국 웹사이트(Website)에서는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정보로 일색(一色)이다. iii) 조선시대 500년간 중화 사대주의 사상으로 이렇게까지 명심보감이 황무지가 되었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일반적인 전염병, 오염 및 화염확산 즉 팽창지수(膨脹指數)인 오일러 상수(e, Euler constant Number) 2.718 배(倍) 내외로 추산된다.

그러나 조선 500년 간의 중국 사대주의가 끼친 역사적 뒤틀림 현상(歷史的 歪曲效果, historical distortion effect)은 수학적으로 배수(倍數, multiple)가 아닌 거듭제곱 효과(指數效果, exponential effect)를 보였다. iv) 비근한 사례로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에 가면 억불숭유정책에 의한 수십 개의 “목 없는 석불(無項石佛)”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1960년대 시골 서당에서 배웠던 명심보감(明心寶鑑)은 1866(고종 3)년 9월 20일에 화원 인흥재사(仁興齋舍, 오늘날 仁興書院)에서 목판본으로 서문(序文)에서는 “명심보감은 뭘 위해 지었을까? 옛 사람들이 후학들에게 실리적이고 정의를 갖도록 하고자 고민해서 지은 것이다.(明心寶鑑者, 何爲而作也? 古之人憂後學之徇利忘義, 而作也.)”라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글이 적혀있다. 효행편 신라시대의 손순(孫順), 상덕(尙德)과 마지막 성주도씨(星州都氏) 도시복(都始福,1817~1891)이 예천군 상리면(上里面) 용두리(龍頭里) 야목마을에 철종(哲宗) 때 살았던 효자까지 적어놓았다. 이런 내용은 범입본(范立本)에는 없고 967번 구절부터 973번 구절에는 공자의 효행에 대한 글로 끝을 맺고 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安重根, 1879~ 1910)) 독립지사(獨立志士)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 いとう ひろぶみ, 1841 ~1909)를 저격하여 뤼순 감옥에 갇혀 일본인 경수계장(警守係長) 나카무라(中村)에게 유품묵서(遺品墨書)를 적어주었는데 “황금 만냥이라도 자식을 한자 깨우치는 것만 못하다(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이 가득한 바구니는 아들에게 경전 한 줄만 못하고, 아들에게 천금을 준들 한가지 기술을 가르침만 못하다.” 그리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아난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구절을 명심보감에서 배웠다.

중국 명나라 범립본의 명심보감.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저술 시기를 중국인 범입본(范立本)은 1393년이라고 기록한 문헌은 본인이 1406년에 저술한 ‘치가절요(治家節要)’를 기준 한 것이다. 범입본은 서문에 “1393년 2월 16일에 무림후학 범입번이 서문을 쓴다(洪武二十六年歲次癸酉二月旣望武林 後學範立本序).”고 적어놓았다. 추계추씨(秋溪秋氏) 추적(秋適)이 1305(충렬왕 31)년에 국학교수(國學敎授)로 있으면서 모아 기록(輯錄)했다는 사실은 ‘추씨구백사(秋氏九百史)’라는 족보에서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문중족보(門中族譜)’라는 오늘날 채증법칙상(採證法則上)에 “서증진정성(書證 眞正性, documentary evidence authenticity)”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저자 논란은 1974년 동해안 고가(古家)에서 1454년에 출간된 범입본의 서문이 있는 ‘신간대자명심보감(新刊大字明心寶鑑)’을 발견하고,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본이 있다.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소장본(東日本) ▷ 임진왜란 때 일본(日本)으로 유출 네덜란드로 소개됨을 봐서 범입본(范立本)이 명심보감의 저자로 종결했다.

고려 말 추적이 저술한 명심보감

조선 500년 사대주의 속에서

살아남은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국제학회 열어 저자 논란 뒤집고

국제적 명성 살릴 방안 마련 필요

저서 마케팅에 온 힘 쏟아야

고려 말에 추적이 저술한 명심보감이 조선 500년간 사대사상이라는 대홍수에 쓸려가지 않고 살아남은, 낮은 확률을 무시한 판단이다.(김동환,『 명심보감 』의 저자 문제, 서지학회, 서지학연구 제21권, 2001.6. p.59~77(10Pages) : “일제시대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明心寶鑑』의 주요 版本을 조사해본 결과, 중국인 范立本을 저자로 표시한 版本이 1種, 우리나라 고려시대 사람인 秋適을 저자라고 주장한 版本이 2種, 저자의 표시가 어느 곳에도 표시되지 않은 版本이 8種이며 增補者 또는 懸吐者를 저자로 표시한 版本이 9種으로 나타났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60種의 국역본 『明心寶鑑』에서는 范立本을 원저자로 밝힌 번역본은 6種이고 추적을 원저자로 기재하여 출판한 번역본은 11種에 이른다. 이들 외에는 모두 원저자의 표시 없이 번역자 만을 기재한 번역본이다.”)

당연히 중국 바이두백과사전(百度百科事典)에서 “원말 명초에 집록자 혹은 정리는 범입본으로 20편, 1592년 스페인어로 번역 서양에 전파, 필사한 책을 1595년에 스페인 펠리페 3세에게 선물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어 위키백과사전(維基百科)에선 “저자논란을 i) 추씨 족보 ‘추씨구백년사(秋氏九百年史)’에서 1305년에 추적(秋適)이 저술해 명나라 개천(開天)에 참여한 손자 추유(秋濡)가 전파했다는 주장, ii) ‘노당문집(露堂文集)’과 고려사(高麗史) 등에 기록이 없다는 점, iii) 1868년 발간한 청주 본발문에 “이 책은 단지 중국에 있는 책이다(此書但有唐本)”라는 기록, iii)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된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서문에 “태창주(江蘇省 蘇州)에 살았던 구산 왕형(王衡, 1561~1609)이 편집하고, 임필정(林弼廷)이 쓰고, 진씨(陳氏)가 유인하다.”고 적혀 있다.

◇명심보감의 국제적 명성을 살릴 ‘저서 마케팅’ 필요하다

글재주라도 있다면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소재로 ‘반지의 제왕(King of the Ring)’ 혹은 ‘해리포터(Harry Potter)와 같은 지구촌의 모든사람들을 환상의 도가니에 빠뜨릴 판타지를 쓸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뿐이다.

국내외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저서 마케팅(book marketing)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장수군의 홍길동전(洪吉童傳), 남원의 춘향전(春香傳), 옹진군(甕津郡) 백령도(白翎島)의 인당수(印堂水)에 심청전(沈淸傳), 군위군의 삼국유사(三國遺事)라는 예술제(art festival)와 테마공원(thema park)까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심지어 예천군 정탁(鄭琢, 1526~ 1605)의 메모쪽지인 “신구차(伸救箚)” 초안을 실마리로 하여 뮤지컬 드라마(Musical drama)를 제작하여 공연까지 하고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동아시아에 보급된 세계적인 윤리교과서(倫理敎科書)다. 적어도 청주시가 하는 세계 최초의 활자본 ‘직지심경(直指心經)’을 소재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 학술대회 등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해야 한다. 저자 논란을 남의 일처럼 넘겨버릴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사대주의사상(事大主義思想)으로 중국서책을 중시했기에 생긴 일이다.

명심보감의 관찬 출판은 물론 사대부의 개인적 기록물에까지도 기피했음을 밝혀야 한다. 동시에 인흥재사(仁興齋舍)처럼 출판물, 과거 서지학 연구는 물론 내용상 분석, 통시적 분석(通時的 分析) 등을 시도한 국제학회를 통해 저자 논란을 뒤집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1999년 독일 괴테재단(Goethe Foundation)에서는 “새로운 천년맞이 프로젝트(New Millemium Project)”로 국제 에세이 현상공모전(현상금 100만 달러)을 개최했다. 당선작으로 영화 등의 예술작품까지 제작했다. 당시 공모전 심사위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었다. 우리도 국제 최고 수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한강(韓江)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연계한 저서 마케팅(book marketing)에 힘을 쏟아야 한다.

글=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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