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찬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최근 글로벌 유통업계와 한국 유통업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의 월마트와 한국의 홈플러스다. 월마트는 오프라인 유통업은 저물어가는 산업이라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진입하며 전 세계 10위권 기업으로 우뚝 섰다. 반면, 매출 7조 원에 130여 개 매장을 거느리며 대한민국 마트 업계 2위를 호령하던 홈플러스는 2025년 3월, 대형마트 역사상 최초로 법정 관리(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하며 끝없는 추락을 겪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이커머스의 급부상’이라는 동일한 시대적 파도를 맞이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환경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무엇이 이 두 유통 공룡의 운명을 이토록 극명하게 갈라놓았을까?
홈플러스의 비극은 이커머스의 위협이라는 유통 환경의 변화 이전에 ‘잘못된 자본의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 성장도 분명한 위협이었지만, 동일한 환경변화 하에서도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버텨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커머스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2015년 사모펀드인 MBK 파트너스가 7조 2천억 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시작된 기형적인 재무 구조에 있다.
당시 MBK 파트너스는 인수 대금의 상당 부분을 빚으로 충당하고, 그 막대한 부채를 고스란히 홈플러스에 떠넘기는 ‘차입 매수’ 방식을 택했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은 홈플러스는 빚과 이자를 갚기 위해 전국 핵심 상권에 위치한 알짜 매장들을 매각한 뒤, 그 건물에 다시 임대료를 내고 들어가는 ‘세일 앤 리스백’ 전략을 취했다. 이로 인해 130여 개 점포 중 절반 이상이 남의 건물로 바뀌었고, 매달 막대한 임대료와 대출 이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매장에서 벌어들인 돈이 시설 투자나 온라인 물류 인프라 구축에 쓰이지 못하고 건물주와 채권자에게 흘러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자산의 유동화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 속에서 치명타가 되었다. 비대면 쇼핑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경쟁사들은 수조 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 센터와 배송 시스템을 구축해 미래를 준비했지만 홈플러스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과거의 빚을 메우느라 현재를 소진한 결과, 매장은 노후화되었고 혁신은 멈췄다.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알짜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마저 불발되면서, 수만 명의 일자리와 지역 경제의 한 축을 책임지던 유통 기업은 10년 만에 빈 껍데기가 되어 붕괴하고 말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 하나가 문을 닫을 때 반경 3km 내에서 약 8천 명이 일자리를 잃고 연간 5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하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의 몫이 되었다.
반면, 월마트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2015년 무렵 아마존의 급부상으로 ‘오프라인 유통은 끝났다’는 시장의 비관적인 전망이 팽배했을 때, 월마트는 미래를 위한 과감한 온라인 투자로 승부수를 던졌다. 시장은 초기 투자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며 주가를 끌어내렸지만, 월마트는 뚝심 있게 디지털 전환을 밀어붙였다.
월마트의 가장 돋보인 전략은 골칫거리로 여겨지던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미국 전역에 촘촘히 깔린 매장들을 풀필먼트 센터로 활용해 고객이 앱으로 주문하면 직원이 담아두고 퇴근길에 픽업하거나 집으로 배송해 주는 옴니채널 시스템을 완성했다. 무거운 오프라인 유지비용을 역발상을 통해 훌륭한 물류망으로 전환한 것이다. 더 나아가 유료 멤버십 ‘월마트 플러스’를 도입해 무료 배송과 주유 할인, OTT 서비스를 제공하며 충성 고객을 단단히 묶어두었다. 또한 입점 업체들에게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검색어 상위 노출을 판매하는 광고 비즈니스까지 창출하며 단순한 소매업을 넘어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했다.
물론 최근의 고물가 시대라는 외부적 요인도 월마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고소득층마저 저렴한 월마트로 발길을 돌렸고, 미국 내 열 가구 중 아홉 가구가 소비한다는 ‘그레이트 밸류’ 등 1만 종이 넘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를 온전히 수확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압도적인 가격 협상력과 혁신적인 인공지능(AI) 도입이 있었다. 실시간 재고 공유를 통한 공급망 자동화로 비용을 극한으로 줄이고, 까다로운 신선식품 물류센터에 AI를 도입해 처리량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리는 기술적 혁신이 월마트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시총 상위권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과 반도체로 돈을 벌 때, 월마트는 1년에 바나나만 40억 개를 팔면서도 철저한 시스템 고도화로 막대한 부를 창출해 낸 것이다.
두 유통 공룡의 엇갈린 운명은 우리에게 기업 경영의 본질과 자본의 역할에 대해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월마트는 시대의 위협 앞에서 자신의 핵심 자산인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혁신의 전초기지로 탈바꿈시키고,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해 아낌없이 미래에 재투자했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단기적인 수익 회수만을 목적으로 한 금융 자본의 손에 넘어가, 회사의 핵심 자산을 매각해 빚잔치를 벌이는 재무적 기교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국 기업의 생사를 가른 것은 ‘온라인 쇼핑의 부상’이라는 외부의 파도가 아니었다. 그 파도를 넘기 위해 배를 수리할 돈을 미래 혁신에 투자했는가, 아니면 금융 자본의 이자 상환에 탕진했는가 하는 내부 경영의 방향성이었다. 오프라인 자산에 IT 기술을 품고 혁신을 거듭하는 전통 기업의 무한한 가능성과, 재무적 숫자 놀음에 빠져 본업의 펀더멘털을 잃은 기업의 비극을 이 두 마트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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