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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경쟁력은 이제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넓고 깊게 연결돼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에는 캠퍼스 규모, 전임교원 수, 학생 수 같은 우수 자원의 축적이 대학의 위상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기후위기, 초고령화처럼 복합 난제가 일상이 된 시대에는 고립된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오늘날 대학의 진정한 경쟁력은 '초연결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특히 정밀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처럼 방대한 데이터와 다학제적 협력이 필수인 분야에서는 세계의 인재와 지식, 데이터를 얼마나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는지가 연구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제 연구자에게 중요한 것은 소속 기관의 이름만이 아니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와 손잡고 어떤 협력 구조를 만들고 있는지가 더 본질적인 경쟁력이 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이미 물리적·심리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하버드가 함께 만든 브로드 연구소는 대학 간 벽을 넘어 유전체 연구의 상징적 허브가 됐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공동연구소, 스위스 ETH 취리히의 글로벌 거점 전략 역시 대학이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내 대학들도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세대의 YFL(Yonsei Frontier Lab)은 해외 연구자 영입을 통해 국제 협력의 문을 넓혔고, 연세대와 포항공대의 공유캠퍼스 모델은 상호 겸임교수 임용을 통해 대학 간 장벽을 낮추는 실천적 사례를 보여줬다. 서울대학교의 SNU Open World와 성균관대학교의 국제협력융합바이오연구소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K-CLUB(Korea University Collaboration Hub)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외 석학을 일회성 방문자가 아니라 네트워크 기반의 공동 연구 파트너로 긴밀히 연결하고, 공동 시드펀딩을 통해 협력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플랫폼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연구는 이미 국경과 시간대를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 제도는 아직도 상주 의무와 단일 소속 같은 전제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런 경직성으로는 한국 대학이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의 핵심 파트너로 도약하기 어렵다. 이제 정부와 대학은 인사와 평가 체계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개별 대학의 폐쇄적 성과보다 협력의 깊이와 확장성을 평가하고, 국제 공동임용을 활성화하며, 원격 기반 연구 참여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연구 현장의 변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대학 경쟁력은 더 빠르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 대학으로의 전환이 대학 자체 역량의 경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력적인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고유한 전문성이라는 '강력한 코어(Core)'가 전제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가치 있는 파트너임을 증명할 때 세계의 인재들이 대학의 담장을 기꺼이 넘나들게 될 것이다. 담장을 낮추고 지식과 인재가 흐르는 '플랫폼' 기능을 강화하는 대학만이 미래 고등교육의 주도권을 쥘 것이다.
이헌정 고려대 의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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