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공격 인명 희생에도 돈만 앞세워
‘규칙 기반 국제 질서’ 무너뜨린 미국
트럼프 압박 버틸 외교 실력 발휘 필요
편집자주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논설위원과 뉴스룸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워싱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저격용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 뉴시스
북태평양에서 미국을 향해 발사된 미상의 비행 물체가 레이더에 포착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판명되고, 미 중서부 대도시 시카고에 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알래스카 미군 기지에서 ‘총알을 총알로 맞히려는’ 미사일 요격 시도는 실패한다. 백악관 상황실은 패닉에 빠진다.
이제 지구의 운명은 미국 대통령 선택에 달려 있다. 러시아인지, 북한인지 모를 누군가에게 핵 보복 공격을 가하느냐, 아니면 인류 절멸을 막기 위해 수백만 미국민 희생을 감수하고 참느냐. 핵가방을 들고 대통령을 수행하던 핵무기 타격 자문관은 ‘레어, 미디엄, 웰던’식 보복 공격 목표 지점을 제시한다. 대통령은 “내 임무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토로하면서도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지 괴로워한다. 아카데미 감독상도 탔던 캐스린 비글로가 연출한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얘기다.
이란 공격을 강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지난해 공개됐던 이 영화를 떠올렸다. 트럼프가 이 영화의 모델은 아니었을 것이다. 흑인에, 이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영화 속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승인 권한을 두고 고뇌하는 모습은 트럼프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핵협상을 진행하던 상대를 느닷없이 폭격하고, ‘최후, 최최후, 최최최후의’ 엄포가 먹히지 않는데도 ‘타코(TACO)’처럼 꼬리를 내리고, 이런 막무가내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오래된 동맹과 우방을 비난하고, “전리품은 승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이란 석유만 노골적으로 노리는 게 지구 최강 국가 미국의 지도자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는데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 창출” 운운하며 돈만 앞세우는 천박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미국이다.
“이 미친 자식들아, 당장 그 빌어먹을 해협을 열어라…알라에게 영광을.” 초등학생도 안 쓸 법한 이런 문구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대통령을 어떻게 봐야 할까.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니다. 대통령의 광기를 막아야 한다.” 한때 트럼프가 가장 아꼈던 극우 성향 마조리 테일러 그린 전 공화당 하원의원마저 이렇게 호소할 정도다.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패하면 트럼프 조기 하야 여론도 강해지겠지만, 약이 오른 트럼프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세계가 떨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넷플릭스 제공
자유 진영의 리더, 엘리트 시스템의 나라 미국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트럼프 1기 때만 해도 짐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의 충동적 외교안보 오판을 억제하는 군인 출신 ‘어른의 축’이 존재했다. 하지만 2025년 재출범한 트럼프 2기는 이런 안보 베테랑을 배제했다. ‘신고립주의’를 앞세운 새 국방전략(NDS)도 종이 쪼가리일 뿐이었다. 1962년 쿠바 봉쇄 사태, 1994년 북한 영변 원전 폭격 보류 등 숙의와 시스템으로 큰 희생을 막았던 미국은 이제 사라졌다. 전쟁으로 자리를 보존하려는 이스라엘 총리 정도에게 휘둘리는 게 미국 지도부다.
미국의 더 큰 손실은 외교 도덕성 완전 상실이다. 이제 미국은 ‘규칙 기반 국제 질서’라는 가치를 내세우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는 이란의 양보를 받아내고 승리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후 80년간 누렸던 자유 세계 리더 지위는 붕괴 중이다. 다이너마이트로 둘러싸인 집에서 트럼프라는 어리석은 아이가 붙인 불이 심지부터 타들어가고 있다. 우리로선 핵심 동맹이 일으킨 화재 피해를 어떻게든 줄이는 게 급선무다. 법과 규범이라는 국제사회 원칙을 강조하는 동시에, 잘못된 압박에는 굴하지 않을 외교 실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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