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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노후’ 준비인가, ‘상속’ 준비인가 [도와줘요 자산관리]

# 지난해 은퇴한 60세 김씨는 시세 12억 원 아파트와 금융자산 3억 원을 가지고 있다. 은퇴 후 생활비로 쓰기 위해 준비해 둔 자금이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고 나니 국민연금 개시까지는 아직 5년이나 남았고 또 언제까지 살지 모르니 금융자산 3억 원을 쓰기에도 마음이 불안하다.

# 지난해 은퇴한 60세 김씨는 시세 12억 원 아파트와 금융자산 3억 원을 가지고 있다. 은퇴 후 생활비로 쓰기 위해 준비해 둔 자금이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고 나니 국민연금 개시까지는 아직 5년이나 남았고 또 언제까지 살지 모르니 금융자산 3억 원을 쓰기에도 마음이 불안하다. 자유로운 노후를 꿈꿨는데 하루 하루 불안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노후 준비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은퇴 이후 자산의 규모보단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서울에 12억 원짜리 집과 3억 원의 금융자산을 가진 은퇴자 김씨의 총자산은 15억 원이다. 숫자만 보면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은퇴 이후 중요한 것은 15억 원이라는 자산 총액이 아니다. 그 중 얼마가 매년 생활비로 바뀔 수 있느냐다. 집은 얼마가 됐든 ‘거주’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부동산으로서 자산의 가치는 올라갈 수 있으나 현재 은퇴 후 현금흐름 구조를 살펴볼 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금융자산 3억 원을 연 5%의 이자수익으로 운용한다고 가정하면 세전 이자는 연 1500만 원, 월 125만 원이다. 일반 금융계좌에서 이자소득에 통상 15.4%의 세금이 원천징수 된다고 단순 계산하면 세후 이자는 연 1269만 원, 월 약106만 원이다. 여기에 은퇴 후 지역가입자가 되면 이자·배당소득이 건강보험료 산정에 반영될 수 있다. 연 5%라는 수익률이 곧 내가 쓸 수 있는 5%는 아닌 셈이다.

그래서 은퇴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상품의 수익률을 비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감안한 뒤 실제 매달 얼마를 쓸 수 있는지를 계산하고 그 현금흐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인출 시기를 달리하고 세금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만기를 나누어 기간별로 자금을 배분하는 식이다.

연금은 ‘많이 받는 것’보다 ‘언제 필요한가’가 중요하다

은퇴 이후의 삶에서 필요한 시기별로 현금흐름이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 10년 단위로 끊어 받을 연금들을 정리해보면 좋다.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야 계획적으로 소비도 할 수 있다. 보통 은퇴 후 10년간 가장 많은 버킷리스트를 실행한다. 이때 필요 금액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자산을 사용할지, 국민연금을 조기 개시한다면 어떨지 판단해야 한다. 조기노령연금은 1년 앞당길 때마다 6%씩 감액되는 반면 연기연금은 1년 연기할 때마다 7.2%가 가산된다. 금융자산이 충분하다면 연금을 늦춰 평생 받을 금액을 높이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다른 판단이 필요하다.

집도 마찬가지다. “팔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계속 거주할 수도 있고, 규모를 줄여 금융자산을 늘릴 수도 있으며, 주택연금처럼 주택자산을 현금흐름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핵심은 집을 언제까지 보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집의 가치를 내 노후에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다. 노후준비의 핵심은 ‘얼마를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얼마를 쓸 수 있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자산을 지키는 데 성공하고, 노후에는 실패하는 역설 이것이 노후의 역설이다.

평생 아끼고 또 아껴 집을 지켰다. 금융자산도 가급적 쓰지 않았다.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도 충분히 남겼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여행 한 번, 취미 하나, 필요한 의료비 앞에서도 “아직은 아껴야 한다”며 지갑을 닫는다.

실제 자산관리 현장에서 은퇴자들을 만나면 은퇴한 지 한참 지난 뒤에도 여전히 ‘노후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더 모으고, 더 불리고, 가능하면 자산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정말 노후일까. 혹시 상속을 위한 준비를 노후 준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그려내는 오디세우스는 긴 여정을 끝내고 이타카로 돌아온 순간 비로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가 한 일은 또 다른 정복도, 더 많은 것을 쌓는 일도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내려놓고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함께 떠난다.

우리의 은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평생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모으느라 달려왔다면, 이제는 지금까지 모은 자산을 바탕으로 남은 삶에 무엇을 더 채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노후 준비인가, 상속 준비인가.

결국 이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 진짜 은퇴준비가 시작된다.

김서희 NH농협은행 WM사업부 WM컨설팅팀 WM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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