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고, 크고, 먼' 스틸컷. (사진 환경재단)/뉴스펭귄
제23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지난 5일 개막해 이달 30일까지 열린다. <뉴스펭귄>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익숙한 지구를 조금 멀리서, 때로는 인간이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 6편을 소개한다. 숲과 사막, 북극과 히말라야에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는 영화들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90년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 사진을 보며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말했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하나의 작고 희미한 점에 불과하다. 그 거리에서 지구를, 인간을, 생명을 바라보면 갈등과 욕망, 문명과 국경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땅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 <아키>
영화 '아키' 스틸컷. (사진 환경재단)/뉴스펭귄
캐나다 다큐멘터리 <아키(Aki)>에서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아키’는 북미 원주민 아니시나베 언어로 땅 또는 지구를 뜻한다.
영화는 설명도 인터뷰도 최소화한 채 숲과 강, 계절의 변화, 공동체의 일상을 따라간다. 얼어붙은 호수가 녹고, 숲이 푸르게 물들고, 다시 낙엽이 쌓이는 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요리하고 축제를 열고 함께 살아간다.
감독 달린 나폰세(Darlene Naponse)는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원주민 세계관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영화는 “우리가 땅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별을 잃어버린 시대의 천문학자 <작고, 크고, 먼>
영화 '작고, 크고 먼' 스틸컷. (사진 환경재단)/뉴스펭귄
<작고, 크고, 먼(Little, Big, and Far)>은 창백한 푸른 점의 지구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카를은 천문학자이자 빛 공해 저감 활동가다. 그는 별을 연구하지만 정작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 불안정한 직장, 흔들리는 관계, 기후위기와 환경 변화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점점 확신을 잃는다.
영화는 우주의 거대한 시간과 인간의 짧은 삶을 교차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바라보는 별빛은 수천 년 전의 과거이고, 우리가 만드는 환경 변화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도달한다.
젬 코엔(Jem Cohen) 감독은 영화를 통해 과학과 철학, 환경 문제를 엮어 인간 존재의 위치를 사유하게 만든다.
숲의 시간을 듣다 <숲의 속삭임>
영화 '숲의 속삭임' 스틸컷. (사진 환경재단)/뉴스펭귄
<숲의 속삭임(Whispers in the Woods)>은 숲을 배경으로 한 자연 다큐멘터리지만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카메라는 스라소니와 곰, 올빼미와 사슴을 따라가며 숲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리듬을 포착한다.
영화 속 숲은 인간의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명 공동체다. 아버지에서 자신에게, 다시 아들에게 이어지는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생태계와 가족의 기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뱅상 뮈니에(Vincent Munier)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자라며 12세에 첫 야생동물 사진을 찍었고 BBC '올해의 야생 사진작가' 수상을 계기로 전업 사진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번 영화는 프랑스에서 개봉해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라지는 북극곰의 기록 <스노우와 아이스를 잃은 프로스트>
영화 '스노우와 아이스를 잃은 프로스트' 예고편 갈무리. (자료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스노우와 아이스를 잃은 프로스트(Frost Without Snow and Ice)>는 북극곰 한 마리를 통해 기후위기의 현재를 보여준다.
노르웨이 감독 아스게이르 헬게스타드(Asgeir Helgestad)는 10년 넘게 북극곰 ‘프로스트’를 따라가며 삶을 기록했다. 영화의 배경인 스발바르는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아스게이르가 10년 전 촬영한 프로스트와 새끼들 ‘스노우’와 ‘아이스’의 모습은 북극곰을 기록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이름들이 상징하던 세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프로스트가 살아가는 북극에서 눈(Snow)과 얼음(Ice)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인 동시에, 과거 함께 기록됐던 새끼 북극곰 ‘스노우’와 ‘아이스’를 잃은 어미의 상실을 의미한다. 영화는 거대한 기후 통계 대신 한 생명의 삶을 통해 변화의 무게를 체감하게 만든다.
눈표범을 지키는 여성들의 여정 <스노우 레오파드 시스터즈>
영화 '스노우 레오파드 시스터즈' 스틸컷. (사진 환경재단)/뉴스펭귄
히말라야 고원에서 펼쳐지는 <스노우 레오파드 시스터즈>는 자연보전이 곧 사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역 보전 활동가 츠히링 라무 라마와 강제결혼을 피하려는 17세 소녀 텐진은 눈표범을 찾아 험난한 산악지대를 함께 걷는다.
영화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일이 단순한 생태계 보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의 권리, 지역 공동체의 미래, 전통문화의 지속 가능성이 눈표범의 운명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히말라야 풍경 속에서 영화는 인간과 야생동물의 미래가 결국 하나의 이야기임을 말한다.
당나귀의 눈으로 바라본 우주 <완벽한 낯섦>
영화 '완벽한 낯섦' 스틸컷. (사진 환경재단)/뉴스펭귄
사막을 떠도는 세 마리 당나귀가 버려진 천문대와 우주를 마주한다. <완벽한 낯섦(Perfectly A Strangeness)>은 이 마주함의 감각과 이미지에 집중한다.
영화는 인간이 아니라 당나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천문대와 우주를 통해 익숙한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은 멀리서 바라보는 감각을 가장 시적으로 구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가족 이야기와 구전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시인이 되었던 알리슨 맥알파인(Alison Mcalpine) 감독의 시적 감수성과 영화적 탐구가 돋보이는 영화다.
31개국 121편 영화 상영
제23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31개국 121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장편 57편, 단편 64편으로 구성됐다. 관람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온라인 상영관과 지역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전체 상영작과 상영 일정, 관람 가능 채널을 확인할 수 있다. 20인 이상 개인 또는 단체는 공동체 환경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신청해 무료 상영작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반려동물 동반 야외상영회, 세계청소년기후포럼 등 부대행사도 마련돼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