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일 경북보건대학교 교수
◆낙관에서 비관으로,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
2026년 2월 말, 중동에서 쏘아 올린 포화는 전 세계 경제의 낙관론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시장은 금리 안정과 인플레이션 하락을 기대하며 연착륙을 점쳤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성장은 멈춘 채 물가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거대한 암벽 앞에 서 있다.
우리 대통령은 “(중동) 전쟁 이전과 이후는 분명하게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라며 긴급재정명령 카드까지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날아든 ‘전쟁 청구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하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물류망이 차단된 대한민국을 이번 위기의 최대 피해국으로 지목했다. 우리 경제는 지금 생사(生死)를 가르는 사선(死線, Line of fire)에 서 있다.
◆에너지 종속의 덫과 노출된 내부 취약성
전쟁 이전의 경제적 전제는 명확했다. 인플레이션이 통제 범위 안에 들고,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민간 투자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이 모든 시나리오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한국에 ‘파괴된 에너지 시설 복구에 수년’이라는 전망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지난달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고유가와 원자재 수급 차질의 여파가 생산과 소비 심리로 전이되는 ‘나비효과’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는 단순한 경기 하강이 아니다. 경제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우리 경제를 옥죄는 내부 고리는 ‘에너지 종속’과 ‘투자 지연’이다. 가격 신호가 정책에 억제되면서 시장의 자생적 적응 능력은 퇴화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초격차 산업이 도약하려 해도 데이터센터와 지능형 전력망 같은 필수 인프라는 낡은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외부 암초와 실효적 거버넌스의 부재
설상가상으로 외교적 암초까지 부상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을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는 핵 추진 잠수함 도입 제동이나 무역법 301조 압박 등 ‘몽니’를 부릴 기세다. 무책임한 정쟁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이, 대외 압박과 내부 구조 결함이 결합하여 대한민국의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위기 때마다 정부는 재정 확대와 금리 조정이라는 익숙한 처방을 반복했다. 하지만 ‘현상’만 보고 ‘구조’를 외면한 정책은 임시방편에 그쳤다. 최근 출범한 ‘규제합리화위원회’ 역시 단순한 조정 기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규제 합리화는 입법과 행정 전반을 혁파하는 국가 운영 시스템의 대전환이어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와 정치권 갈등을 뚫고 실행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의 파고를 넘기 위한 노력은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세 가지 전환과 청년 스타트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 전환이다. 첫째, 가격 통제 위주에서 탈피한 에너지 시장 구조 개편이다. 둘째, 위험을 사후에 책임지게 하는 ‘조건부 승인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셋째, 국민 참여 기반의 상생형 규제 설계다. 이 모든 혁신의 중심에는 청년 스타트업이 있다.
그들은 기존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로 무장한 채 위기의 본질을 꿰뚫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파도는 평범한 이들에게는 공포지만,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서퍼들에게는 부실한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양으로 나갈 강력한 추진력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이 마음껏 파도를 탈 수 있도록 낡은 규제의 족쇄와 정쟁의 그물을 걷어내야 한다.
◆파도의 생리를 읽는 자가 대양을 장악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숙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파멸의 위기로 맞이할 것인지,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는 오직 우리의 실행에 달려 있다. 중동의 불길과 CSIS의 경고, 트럼프의 압박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충격을 변명거리로 치부하며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한국 경제의 엔진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밀려오는 파도는 머뭇거리는 자에게 파멸의 휩쓸림이 되지만, 그 생리를 읽고 흐름에 올라탄 서퍼에게는 더 넓은 대양을 향한 도약의 발판이 된다. 이제는 낡은 지도를 버리고 혁신이라는 돛을 올려라. 저 거친 파도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자. 기억하라. 역대 모든 위기는 ‘준비된 혁신가’의 무대였다. 당신이 주저하는 사이 파도는 이미 다음 창(漲)을 만들고 있다. 두려워 말고 올라타라. 당신의 서프보드가 바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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