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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택근의 묵언]만해를 잊은 당신들에게

만해마을에 만해가 돌아왔다. 지난 8월14일, 불멸의 시집 10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설악산 백담사 아래 만해문학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날 처음 선보인 창작판소리 공연 ‘침묵의 함성’(배연형 사설)은 시인이고 선승이며 독립지사였던 만해를 불러오는 의식이었다.

[김택근의 묵언]만해를 잊은 당신들에게

만해마을에 만해가 돌아왔다. 지난 8월14일,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 10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설악산 백담사 아래 만해문학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날 처음 선보인 창작판소리 공연 ‘침묵의 함성’(배연형 사설)은 시인이고 선승이며 독립지사였던 만해를 불러오는 의식이었다. 특별전은 ‘한용운의 꿈과 빛이 서린 처(處)·인(人)·서(書)’라는 주제로 삶과 사상을 펼쳐놓았다. 스승과 도반들 간의 이야기, 저작물과 친필 등을 통해 처염상정의 연꽃 같은 생애를 돌아볼 수 있었다. 100년 동안의 세파를 견뎌낸 <님의 침묵> 초판본을 보고 있자니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이 느껴졌다.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조선독립이유서)도 필사본과 함께 현대문으로 번역되어 전시되었다. 3·1혁명 민족대표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어떤 자료도 없이 단편소설 분량의 대논설을 작성했다. 1919년 7월에 쓴 조선독립이유서는 지금 읽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만해는 이미 일본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다.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예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악귀일 뿐이니, 어찌 이와 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아아,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이 어찌 승리하리오, 정의가 있고 인도(人道)가 있도다.”

‘님의침묵100주년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특별전은 지난 20일 막을 내렸다.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 만해를 기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님의 침묵> 100년을 기념하는 가장 크고 깊은 행사에 나라에서는 한술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조차도 철저하게 외면했다. 지난해 소월 시집 <진달래꽃> 100주년을 맞아서도 어떤 행사도 없이 그냥 흘려보내더니 <님의 침묵>에도 그저 침묵할 뿐이다.

문학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두 시집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민족의 자산이다. 소월과 만해가 없었더라면 근대문학이 얼마나 초라했을까. 여윈 모국어의 언덕에 핀 <진달래꽃>으로 ‘향기로운 한글의 봄날’이 열렸고(서해성), <님의 침묵>은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빛을 부르는 어둠’이 무엇인가를 일깨운 노래(이선이)였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좀체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대중문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각별하기 그지없다. K팝과 K콘텐츠 진흥을 위해서는 정책금융을 확대하고 해외 진출과 연구·개발비 등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BTS가 공연하면 광화문 거리를 통째로 내주고 수많은 공무원이 수발을 들었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대중문화교류위원회를 신설하여 대중가요 가수를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과한 것 같지만 돈과 대중을 잡아당기는 대중문화와 영합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100년 된 <님의 침묵> 시집 앞에 나라님 이름으로 꽃 한 송이 바치지 않음은 이해할 수 없다.

요즘 출판계가 어렵다. 모두 빈사 직전이라고 아우성이다. 파산하는 출판사가 속출하고 평생 책 속에 묻혀 살던 출판인들이 일터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비약이 될지 몰라도 소월과 만해를 홀대하는 실상의 연장선에 문학과 출판을 경시하는 관리들의 천박한 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돈벌이 사업으로 현실을 살피는 현미경이 필요하지만 문명의 시각으로 멀리 보는 망원경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문체부를 움직여야 한다. 지금의 K컬처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다. BTS가 부른 ‘아리랑’은 아리랑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는 혼을 살라서 세상을 밝히고 떠나간 예술가의 제단에도 향을 사르기 바란다.

가을이다. 만해는 단풍 드는 가을밤 오세암에서 시집을 탈고했다. 시집의 마지막 말이 가을처럼 맑고 쓸쓸하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만해는 세월이 흐르면 자신의 시를 읽는 것이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처럼 건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는 독자의 것, 그의 시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오늘도 “누구의 밤을 지키는 등불”이 되고 있다. 부디 그 등불을 지켜주기 바란다.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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