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 S&P500 지수가 하루 만에 22% 폭락했다. 역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한 ‘블랙 먼데이’였다. 지수가 3년여 동안 120% 넘게 오른 터라 충격은 그만큼 컸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 집권 2기의 미국 경제는 탄탄한 성장세를 구가했다. 경제성장률은 3%대 중반에 달했고, IT와 금융 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눈부셨다. 인텔의 386 CPU,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IBM의 조립형 PC가 맞물려 컴퓨터 시장을 급팽창시켰다. IBM 주가가 급등하며 주식시장의 대표 종목이 됐다. 당시 IBM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내외에 달했다. 금융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투자은행가 마이클 밀켄은 고위험 회사채인 정크본드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정크본드로 자금을 조달해 기업을 인수하는 차입매수(LBO)가 성행했다. 컴퓨터 기반 프로그램 트레이딩도 빠르게 퍼졌다.
그해 8월 앨런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으로 취임했다. 경제학 박사 출신이지만 학계나 중앙은행 경력 없이 컨설팅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를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시장의 불신을 의식한 그린스펀은 기준금리인 재할인율을 0.5%포인트 올렸다. 거의 3년 만에 단행된 첫 긴축의 여파로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충격을 받은 그린스펀은 블랙 먼데이 다음 날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연준이 유동성 공급원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표했고, 이후 증시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상승 랠리를 재개했다.
그린스펀은 곧 신임 연준 의장으로 취임할 케빈 워시(사진)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인공지능(AI) 기술 혁명과 디지털 금융 혁신은 그린스펀 취임 당시를 연상케 한다.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낙점한 월가 출신 재벌가 사위인 워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운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워시 역시 취임하면 그린스펀과 유사한 도전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오랜 주가 상승과 견조한 경제성장으로 물가 압박은 여전히 강하고, 긴축을 선호하는 연준 내 매파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힘이 실려 있다. 워시가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고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긴축 카드를 꺼내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통적 재정 보수주의자인 그가 연준의 자산 규모를 줄이려 양적긴축(QT)에 나서면 장기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1987년 블랙 먼데이도 장기금리 급등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린스펀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음 날 바로 수습했다. 워시도 같은 기민함이 요구된다. 의장 리스크를 불식할 신뢰는 취임사가 아니라 첫 번째 위기에서 증명된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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