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후가 달라졌다면 모내기 달력도 달라져야 한다.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모를 심어 왔다고 해서 그때의 생육환경까지 예전과 같은 것은 아니다. 벼가 출수하고 여무는 시기에 어떤 기온과 강우를 만나느냐에 따라 수량과 품질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제 이앙 시기는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달라진 기후에 맞춰 다시 판단해야 할 재배기술이다.
하지만 모내기 시기를 바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공동육묘장의 모 공급 시기와 이앙 작업 순서, 수확·건조 일정이 맞물려 지역마다 익숙한 농사 달력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후 변화를 반영해 권장 이앙 시기를 늦추고 있지만, 현장의 일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는 개별 농가의 선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기존 일정을 그대로 유지하면 벼가 가장 민감한 시기가 한여름 고온과 겹칠 수 있다. 출수·개화기의 고온은 수정과 임실을 방해하고, 등숙기의 고온은 쌀알이 충분히 여무는 것을 막아 완전미율과 외관 품질을 떨어뜨린다. 등숙 후반에 비까지 잦아지면 수확을 앞둔 이삭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위험도 커진다. 중요한 것은 예년과 같은 날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벼가 가장 취약한 시기를 고온과 잦은 비에서 비껴가게 하는 일이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지역과 품종의 특성을 고려해 이앙 시기를 늦춰 출수와 등숙 시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모내기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기후에 맞춰 재배 달력을 다시 짜는 일이다. 이앙을 지나치게 늦추면 생육기간이 짧아져 수량이 줄거나 등숙 후반 저온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늦게 심기’가 아니라 기후와 품종에 맞게 ‘제때 심기’다.
이앙 시기의 조정은 논에서 발생하는 메탄과도 연결된다. 논에 물을 대면 산소가 부족한 토양에서 메탄이 발생하고, 기온과 지온이 높고 담수 기간이 길수록 배출량이 늘어난다. 이앙 시기를 적정하게 늦추면 재배와 담수 기간이 짧아져 메탄 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내 포장 연구에서도 품종과 재배 조건에 따라 늦이앙에서 메탄 배출량이 유의하게 감소한 결과가 확인됐다.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농업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지만, 농업 분야 배출량 가운데 벼 재배는 약 28%를 차지한다. 논에서 발생하는 메탄은 단기간의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큰 온실가스다. 적정 이앙 시기를 찾는 일은 쌀의 안정적인 생산과 품질을 지키면서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농가의 판단에만 맡기기는 어렵다. 안전출수한계기와 품종의 숙기, 지역별 기상과 논 여건을 고려한 기준이 필요하고, 육묘장의 모 공급과 이앙 작업, 수확·건조 일정도 함께 조정돼야 한다. 농업기술기관과 공동육묘장, 생산자가 지역에 맞는 작업 달력을 함께 만들어야 현장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 적응은 첨단기술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이어 온 농사 달력을 달라진 환경에 맞게 고치는 일도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벼가 가장 잘 자랄 시간을 다시 선택하는 작은 변화가 쌀의 안정적인 생산과 품질을 지키고, 논 메탄을 줄이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심던 때’가 아니라 ‘지금의 기후에 맞는 때’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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