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고연봉 스카우트’… 한국은 AI 인재 순유출
AI·반도체 핵심 인재 이탈 가속…연구환경도 문제
SPRi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이른바 ‘AI 인재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한국은 인재 유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 사진=챗GPT 제작
매일일보 = 오시내 기자
|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첨단산업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 이공계 인재들의 해외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AI·반도체·바이오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이동이 늘어나며, 한국이 이미 AI 인력 순유출 국가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장은 충분한 보수와 함께 연구환경과 조직문화, 낮은 보상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이공계 인력의 해외 이직, 특히 미국행 확대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인 중 미국 내 박사학위 취득자의 약 65~70%가 현지 연구나 취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 규모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AI 분야에서는 해외 유출 흐름이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 AI 인력 가운데 해외에서 근무하는 비중은 2024년 기준 약 16% 수준으로 조사됐다. 규모로는 약 1만1000명 수준이다. 특히 미국에서 근무 중인 한국 AI 인력은 2010년 약 2100명에서 2024년 약 6300명 수준까지 증가했다. 업계 전반에서는 우리나라가 ‘AI 인력 순유출 국가’으로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기업 현장에서도 인재 부족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69.0%, 중견기업의 68.7%, 중소기업의 56.2%는 향후 AI 인력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숙련 인재 부족과 높은 급여 기대 수준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AI 도입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할 고급 인재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인재 확보 경쟁이 이미 ‘전쟁’ 수준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AI 프로젝트 경험자를 대상으로 수억원대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시하며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일부 AI 엔지니어에게 이른바 ‘세븐 피겨(100만달러 이상)’ 수준 보상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역시 정부 차원의 인재 확보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치밍 계획’ 등을 통해 AI 혁신인재와 창업인재에게 최대 100만위안(약 2억원) 규모 정착금과 지방정부 매칭 펀드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해외 고급 인재에게는 장기 체류 비자와 교육·의료 혜택도 제공한다.
국내 출연연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중국 측이 영입을 시도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 2024년 초 중국이 일부 출연연 연구자들에게 영입 이메일을 최소 655건 발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일에는 연간 200만위안(약 4억원) 급여와 주택·자녀 학자금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AI 인재 쏠림 현상도 심화되는 분위기다. SPRi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이른바 ‘AI 인재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인재 유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 원인으로는 연봉 차이와 더불어 경쟁국 대비 뒤쳐진 연구환경이 지적된다.
ADVERTISEMENT
업계는 단기 실적 중심 평가체계와 수직적 조직문화, 낮은 보상체계 등을 두뇌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연구자들이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보다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연구 인프라 격차 역시 문제로 꼽힌다. 한국 연구원 1인당 연구개발비는 미국과 독일, 일본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연구지원 인력도 부족하다. 연구자가 논문과 특허보다 행정업무와 과제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보상 수준 차이도 뚜렷하다. 국내 AI 기술 보유 인력의 임금 프리미엄은 2024년 기준 약 6% 수준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약 25%, 캐나다의 18%, 영국·프랑스·호주의 15% 수준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특히 AI 기술 보유자의 해외 취업 확률은 일반 인력보다 약 27%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노동시장이 고급 기술 인력에게 충분한 보상과 연구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해외 유출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국내에서도 우수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연구환경과 경력 경로, 성과에 맞는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에크데크분야 로봇개발자 A씨는 “미국 기업에서는 현재 회사 보다 2배 이상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우수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지인 다수가 미국으로 이직했거나, 이직을 준비 중”이라면서 “연봉과 더불어 빠른 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만 연구비가 유지되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