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직접 찾은 구광모…차세대 로봇 기술 현장 점검 나서
전장·배터리·센싱 총결집…계열사 시너지로 휴머노이드 생태계 구축
영재고·글로벌 인재까지 확보…AI 시대 겨냥한 기술 인재 육성 확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로봇 개발 스타트업 ‘피규어 AI’에 방문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피지컬 AI 시대를 겨냥한 전방위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봇 기술 현장을 직접 챙기고, 관련 인재 확보 체계를 대폭 강화하는가 하면 전장(자동차 부품) 사업까지 로봇·AI와 연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취임 8년 만에 LG그룹의 사업 무게중심이 피지컬 AI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를 직접 찾아 로봇 지능 개발 기업 ‘스킬드 AI’ 경영진과 만나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참관했다. 피지컬 AI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오너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자리였다.
당시 구 회장은 AI 관련 계열사 경영진들에게 “AI 패러다임 전환 속 선제적 투자로 그룹 미래 포트폴리오의 한 축을 만들 수 있는 전진기지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2024년에도 미국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피겨 AI’의 기술 현황과 시장 동향을 직접 점검한 바 있다.
구 회장이 이처럼 글로벌 로봇 AI 현장을 잇따라 챙기는 흐름은 단순한 관심 표명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전략 방향을 직접 설정하고 있다는 신호로 업계는 읽고 있다.
기실 구광모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취임 이후 이어온 그룹 체질 개선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 2018년 6월 LG 대표이사 회장에 오른 뒤 수익성이 낮은 스마트폰과 태양광 패널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그 자리를 배터리·전장·AI·로봇 등 미래 사업으로 채워왔다. 8년의 구조조정 끝에 LG그룹은 이제 피지컬 AI를 차세대 핵심 성장축으로 내세우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클로이드와 액추에이터 악시움을 투명 OLED 디스플레이로 소개하는 모습. 사진=LG전자
하드웨어 전략의 핵심은 LG전자다. LG전자는 올해 초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LG 액추에이터 악시움’을 공개하고 HS사업본부 산하에 HS로보틱스연구소를 신설했다.
액추에이터는 모터·감속기·센서를 결합해 로봇 관절을 움직이는 핵심 부품으로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병목으로 꼽히는 부품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로보티즈 등 공동 연구도 병행 중이며 2028년 전후 가정용 로봇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상업용 로봇 분야에서는 베어로보틱스와의 협력을 확대하며 서빙·물류 로봇 시장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 한 곳의 움직임이 아니다. 그룹 차원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
LG이노텍은 카메라 모듈과 라이다 기반 비전센싱 기술을 로봇용 부품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LG에너지솔루션은 휴머노이드·자율주행 로봇·드론에 적용 가능한 차세대 고출력 배터리 기술을 공개했다. LG CNS는 북미 물류 전시회 모덱스 2026에서 영하 26도 환경에서도 구동되는 물류로봇 ‘모바일 셔틀’을 선보이며 스마트팩토리·물류자동화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MWC 2026에서 AI 에이전트 ‘익시오’를 휴머노이드 로봇과 연동한 피지컬 AI 기술을 공개했고 LG디스플레이는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용 곡면 OLED를 개발했다.
LG전자가 완제품과 핵심 구동 부품을, 나머지 계열사들이 센싱·배터리·물류·통신·디스플레이를 나눠 맡는 분업 구조다.
권봉석 LG 부회장이 14일 LG 테크 콘퍼런스 2026을 찾은 영재·과학고 학생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사진=LG
인재 확보 전략도 구 회장이 직접 챙기는 영역이다.
LG는 지난 14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이공계 인재 초청 행사 ‘LG 테크 콘퍼런스’를 열었다. 올해는 기존 국내 석·박사 R&D 인재에 더해 수도권 8개 영재·과학고 학생 100명과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9개국 외국인 유학생까지 처음으로 초청했다. 전체 참가 인원은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늘었다.
권봉석 LG COO(부회장)를 비롯해 9개 계열사 최고경영진과 기술 리더 71명이 총출동했고 ‘One LG’ 테크 세션을 신설해 계열사 간 기술 협업 시너지를 인재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했다.
구광모 회장은 올해 3월에는 국내 최초로 교육부 공식 인가를 받은 사내 대학원 ‘LG AI대학원’도 출범시켰다. 서울대·KAIST·DGIST·UNIST와 협력해 산학 경계를 허문 실전형 AI 인재를 직접 길러내겠다는 구상이다.
로봇과 전장의 교차점도 구광모 체제에서 하나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LG전자는 약 100조원 규모의 전장 수주 잔고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전장 사업 매출 20조원 ▲글로벌 톱10 모빌리티 설루션 기업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순 부품 공급을 넘어 자율주행·로봇 기술과 연계한 무인 로봇 충전 설루션 개발도 추진 중이다. 전장과 로봇 그리고 AI를 하나의 모빌리티 생태계로 묶겠다는 구상이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시장도 이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LG전자 주가는 올해 첫 거래일 종가 9만1400원에서 지난 15일 장중 26만65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연초 대비 상승률이 163%에 달한다. 지주사 LG 역시 연초 대비 55% 이상 오르며 그룹 전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구광모 체제가 8년에 걸쳐 다진 사업 재편의 결과물이 피지컬 AI 시대를 맞아 비로소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액추에이터 양산 수익화 시점과 휴머노이드 상용화 일정 등 아직 검증이 필요한 변수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기대가 실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LG그룹은 ‘피지컬 AI’ 체력 강화를 위한 기나긴 발걸음에서 인재 확보를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권봉석 LG COO는 테크 콘퍼런스 오프닝에서 “인재 여러분이 LG라는 무대에서 꿈과 열정을 마음껏 펼치면 여러분의 기술이 세상과 만나는 데 LG가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기술과 인재, 두 축을 동시에 움켜쥐겠다는 의지가 담긴 발언으로 읽힌다.
과거 가전과 화학 분야 등에서 역량을 드러내며 한국경제를 이끌어왔던 LG그룹이, 여러 사업 재편을 거쳐 이제는 피지컬 AI를 통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혁신을 꿈꾸고 있다. 공대 출신의 구광모 회장의 ‘인재 중심’의 경영 철학이 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리고, 나아가 ‘AI 강자’로 자리매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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