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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득권의 벽 앞에서 멈춘 규제 개혁, 이번에는 돌파할 수 있을까

AI 확산 등 신산업이 전 경제로 파급되면서 전통적 포지티브 방식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분야가 점점 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시작한 지 7~8년이 되면서 ‘미리 걱정했던 문제들이 별로 안 생기더라’는 인식 변화도...

기득권의 벽 앞에서 멈춘 규제 개혁, 이번에는 돌파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 대통령의 칼날은 ‘암반 규제’를 깰 수 있을까③]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 사무실.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규제 개혁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법 개정으로 이어지려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고, 그 앞에는 소상공인, 택시업계, 금융 기득권, 노동계가 버티고 있다. 역대 규제 개혁 기구들이 번번이 좌초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가 비효율적이어도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 행위자들의 저항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역대 정권이 규제 개혁을 외칠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멈춘 이유가 이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규제합리화위원회도 이 경로의존성의 벽 앞에 서 있다. 위원장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그 벽을 허무는 충분조건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닥터나우 앱 화면. 사진=닥터나우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방향은 세 가지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의 규제 패러다임 전환, 2000년 도입 이후 한 번도 손보지 않은 자산 2조원 기준을 포함한 규모 기준 규제의 전면 재검토, 신산업에 대한 선허용 후규제 원칙의 법제화다. 그러나 규제합리화위원회의 권한은 행정 규제 심사에 국한된다.

정작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R&D 세액공제율 차등 적용과 시설투자 공제 문제는 조세특례제한법 소관으로 기재부 세제실과의 별도 입법 트랙이 필요하다. 규제는 풀어도 세제 족쇄가 그대로라면 반쪽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 합리화는 위원회 설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며 “지방자치단체 권한까지 포함한 규제 구조를 정비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베노믹스는 반면교사이자 참고서다. 아베노믹스의 구조 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개별 규제를 풀었어도 그 효과가 임금 상승과 내수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협 개혁과 국가전략특구 지정 같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실질 임금은 12년간 하락했고, 명목 GDP는 오히려 줄었다. 규제를 풀었다고 성장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이다.

문제는 결국 실행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GTC 2026’ 현장에서 꺼낸 말이 지금의 무게를 압축한다. “2030년까지 반도체 공급 부족이 20% 이상 지속된다.” 기업들은 뛸 준비가 돼 있다. 규제가 출발선을 막고 있었을 뿐이다.

[인터뷰] 규제 개혁, 두 전문가에게 묻다

김종문 한경대 석좌교수·전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 사진=한국경제신문

① “네거티브 규제 전환, 좌초가 아니라 험로다”

김종문 한경대 석좌교수·전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

국무조정실에서 30년을 일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국무1차장(차관급)으로 퇴직한 뒤 현재 한경대 석좌교수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맡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규제혁신전략회의와 규제심판부 신설을 주도했다.

Q1. 역대 정부의 네거티브 전환이 기대에 못 미친 원인은.

“네거티브 전환이 좌초됐다기보다 원래 험로라고 봐야 한다. 법령 체계, 이해관계 갈등, 공무원의 책임 문제, 이 세 가지가 전환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 요인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작동한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네거티브로 바꿨다가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이 고스란히 자신들 몫이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Q2. 지금이 과거와 다른 조건이 있다면.

“필요성이 더 커졌다. AI 확산 등 신산업이 전 경제로 파급되면서 전통적 포지티브 방식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분야가 점점 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시작한 지 7~8년이 되면서 ‘미리 걱정했던 문제들이 별로 안 생기더라’는 인식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샌드박스는 사실 네거티브 규제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이런 경험 축적이 전환의 발판이 된다.”

Q3. 의원입법 규제는 규제합리화위원회 권한 밖이다. 현실적 해법은.

“발의 법안의 95%, 통과 법안의 90% 이상이 의원입법이고 그중 30~40%가 규제를 담고 있다. 막기 어려운 구조다. 현실적인 방법은 의원입법에도 규제영향분석을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이다. 이미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일부 의원들이 입법권 침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제도 외에도 시민단체나 학계에서 의원 발의 법안의 질적 평가를 공표하는 방식도 영향을 줄 수 있다.”

Q4. 규제합리화위원회가 네거티브 전환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대통령의 주기적 점검이 핵심이다. 대통령이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 네거티브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3~4개월 주기로 전환 사례를 보고받으며 임기 내내 점검해 나가면 공무원들이 움직인다. 공무원을 움직이는 건 결국 대통령의 관심이다. 닥터나우 같은 원격진료처럼 이해관계 충돌이 큰 분야는 위원회가 소위원회를 만들어 집중 토론하고 부작용 최소화 방안을 마련한 뒤 전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사례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다른 분야로도 확산된다. 행정규제기본법 제5조의2 신기술·서비스로 한정된 우선 허용·사후 규제 원칙의 적용 범위를 모든 규제로 확대하는 개정도 병행된다면 정부가 진심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 사진=한국경제신문

② “시스템은 세계 최고, 문제는 작동이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규제 정책 및 행정학 분야의 전문가로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며 정부의 규제완화 및 정책 평가에 깊이 관여해 온 인물이다. 저서 ‘규제를 규제한다’에서 한국 규제 거버넌스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했다.

Q1. 이번 규제합리화위원회가 달라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역대 규제 개혁에서 성과가 있었던 공통점은 대통령이 실질적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조건이 나쁘지 않다. 정치적 지지도가 높고 과거 민주당이 발의했지만 처리하지 못했던 진입 규제, 농지법, 규제 샌드박스 같은 과제들을 한꺼번에 털어낼 수 있는 환경이다. 관건은 검찰개혁·사법개혁에 쏟은 에너지를 규제 개혁에도 투입할 의지가 있느냐다.”

Q2.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초기에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할 분야는.

“진입 규제다. 로톡, 타다, 닥터나우처럼 기술 기반 서비스가 기존 업계 저항으로 막혀 있는 분야들이다. 규제 샌드박스로 한시 허용했다가 희망 고문이 되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 샌드박스 실험에서 문제가 없다고 확인됐으면 본 규제로 전환하는 후속 작업이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기간제 근로자 2년 제한, 외국에는 없는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같은 갈라파고스 규제도 손봐야 한다. 이런 것들이 실제로 바뀌는 장면이 나와야 기업들이 체감한다.”

Q3. 기업부담지수 규제 항목 수가 10년 만에 오히려 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루에도 최소 50건 이상 의원입법이 발의되는데 그중 30~40%가 규제를 담고 있다. 매일 청소해도 쌓이는 먼지가 더 많은 것과 같다. 사고가 한번 나면 규제가 만들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주차장 불이 났다고 전국 모든 주차장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를 부과하면 감당하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주가 생긴다. 현실적 검토 없이 만들어지는 규제가 너무 많다.”

Q4. 해외 규제 혁신 모델 중 한국이 당장 도입할 수 있는 모델이 있나.

“뭔가를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게 먼저다. 한국은 OECD 규제정책평가(iREG)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할 만큼 규제 관리 시스템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가성비가 낮다. 매 정부가 규제영향분석 같은 절차적 개선에만 집중하고 로톡·타다 같은 진입 규제 갈등 분야에서는 기회를 열어주는 개혁을 거의 못 했다. 규제신문고(박근혜 정부)와 규제샌드박스(문재인 정부)는 의미 있는 도구지만, 인력과 예산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새 모델을 도입하기 전에 이미 있는 시스템에 행정·재정 자원을 보강하고 전문 인력을 파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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