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해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파괴할수록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가
2026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7일 연속 공습을 이어가며 이란의 군사시설뿐 아니라 군수물류망과 기반시설로 타격 범위를 확대했고, 이란은 걸프지역 미군기지와 동맹국 시설에 대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지속했다. 같은 기간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 통항은 크게 감소하며 국제 해상교통도 심각한 위축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적 압박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안정적인 호르무즈 통항질서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란 역시 통제권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거부능력을 유지하며 미국의 질서 회복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김태준 소장 제공
핵 문제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은 주요 핵시설을 반복적으로 타격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상적인 검증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고, 핵물질과 잔존 핵능력에 대한 불확실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군사적 파괴와 정치적 통제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번 전쟁의 경쟁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경쟁의 중심은 누가 더 많은 목표를 파괴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군사력과 군수지원, 경제력과 동맹, 사회적 복원력과 정치적 의지를 더 오래 유지하면서 이를 협상과 질서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에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현대전의 경쟁이 통제권(Control)을 둘러싼 경쟁에서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Strategic Endurance Competition)’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호르무즈와 핵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파괴된 전력이 다시 작동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Ⅰ. 파괴된 전력은 왜 다시 작동하는가
2026년 7월 중순까지 미국은 이란의 방공망과 지휘통제시설, 미사일·드론 기지와 해상전력을 반복적으로 타격했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이란의 공격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켰지만,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은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다. 파괴된 전력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작동하고, 이미 공격받은 시설이 재차 타격대상이 되는 현상도 반복됐다.
이는 시설의 파괴와 전쟁 수행체계의 영구적 무력화가 서로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레이더와 발사대, 무기고와 지휘시설을 파괴하면 단기적인 공격능력은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동식 발사체계와 지하시설, 분산된 지휘망과 대체 통신체계까지 동시에 제거하기는 어렵다.
현대의 미사일과 드론 전력은 하나의 고정된 기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이동식 발사대는 위치를 바꿀 수 있고, 장비와 탄약은 지하나 민간지역 인근에 분산될 수 있으며, 지휘기능도 여러 조직과 지역으로 이전될 수 있다. 일부 시설이 파괴되더라도 남아 있는 인력과 장비, 기술과 통신망이 결합하면 제한적인 공격능력은 다시 복원될 수 있다.
작전의 중단이나 타격 간격도 복구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란은 이 시간을 이용해 생존 전력을 분산하고, 손상된 장비를 수리하며, 대체 지휘망과 보급로를 구축할 수 있다. 미국이 이미 공격했던 시설을 다시 타격해야 했던 이유도 시설의 물리적 파괴가 기능의 완전한 제거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략적 복구순환(SRC·Strategic Regeneration Cycl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략적 복구순환’이란 타격을 받은 전력이 분산과 수리, 재배치, 대체체계의 구축을 통해 일정 수준의 공격능력을 회복하고 다시 군사행동에 투입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전략적 복구순환’은 단순한 시설 복구와는 다르다. 파괴된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전력과 다른 지역의 시설을 결합해 기존 기능을 우회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시설이 파괴됐더라도 전쟁 수행능력 자체는 다른 형태로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이란이 반복적인 타격에도 공격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란은 미국과 대칭적인 전쟁을 수행하기보다 생존한 미사일과 드론 전력을 선택적으로 운용하며 제한적인 거부능력을 유지했다. 모든 전력을 복구하지 못하더라도 미국과 동맹국에 지속적인 위협을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격능력만 유지하면 전략적 목적의 일부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이란의 공격능력이 남아 있는 한 감시와 방어, 정밀타격을 계속해야 한다. 공습은 이란 전력을 약화시키지만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다시 복구된 전력을 추적하고 공격해야 한다. 이처럼 파괴와 복구, 재공격이 반복되는 장기적인 소모구조가 형성된다.
따라서 많은 시설을 파괴했다는 사실만으로 전쟁 수행능력이 영구적으로 제거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표적을 파괴했는가가 아니라, 상대가 전력을 복구하고 재배치하며 다시 공격할 수 있는 순환구조까지 차단했는가에 있다.
미국은 이러한 한계에 직면했다. 반복적인 군사시설 타격만으로는 전략적 복구순환을 차단하기 어려웠고, 전쟁은 개별 전력을 파괴하는 단계에서 상대의 전쟁 지속기반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단계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전쟁 지속능력을 공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Ⅱ. 왜 상대의 전쟁 지속능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는가
2026년 7월 중순 이후 미국과 이란의 군사행동은 개별 무기와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단계를 넘어, 상대의 전쟁 지속기반 자체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양측이 겨냥한 지속능력과 공격방식은 동일하지 않았다.
미국은 초기 공습에서 이란의 방공망과 지휘통제시설, 미사일·드론 기지와 해상전력을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그러나 파괴된 전력이 분산과 수리, 재배치와 대체체계의 구축을 통해 다시 작동하자, 공격의 범위를 전력 복구와 군수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반다르아바스와 이란 내륙을 연결하는 교량과 도로, 철도와 항만시설은 병력과 장비, 연료와 탄약을 해안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적 통로이다. 미국이 이러한 연결망과 군수지원시설을 공격한 것은 개별 무기를 파괴하는 데서 나아가 이란의 ‘전략적 복구순환(SRC·Strategic Regeneration Cycle)’을 지연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차바하르항의 감시시설을 둘러싼 논쟁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란은 해당 시설이 민간 항행을 지원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혁명수비대가 상선을 추적하고 표적을 식별하는 데 활용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주장은 엇갈리지만, 항만과 감시망이 민간경제와 군사작전을 동시에 지원하는 이중용도 기반시설이라는 점에서 전쟁의 경계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이란은 미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었다. 이란은 미국 본토의 군수기반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카타르와 쿠웨이트, 바레인, 요르단에 위치한 미군기지와 우방국 시설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특히 전력과 담수화시설이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는 이란의 공격이 군사시설을 넘어 걸프지역 동맹국의 사회적·경제적 부담까지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이란의 물리적 전력복구 능력을 약화시키려 했다면, 이란은 미국의 지역주둔 비용과 동맹국의 정치적 인내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미국의 공격은 이란의 병력과 무기, 연료와 탄약의 이동을 지연시키는 데 초점을 뒀고, 이란의 공격은 미국과 동맹국이 전쟁의 비용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처럼 전쟁의 중심은 전투력의 직접적인 충돌에서 국가와 동맹의 지속능력을 둘러싼 경쟁으로 이동했다. 교량과 철도, 항만과 전력망, 담수화시설은 평시에는 경제와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지만, 전시에는 군사작전과 국가의 저항능력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자산이 된다.
그러나 이중용도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반시설이 정당한 공격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격대상의 군사적 기여도와 예상되는 민간 피해, 군사적 필요성과 비례성은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 기반시설 공격이 확대될수록 단기적인 군사효과보다 민간 피해와 국제적 반발, 동맹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략적 지렛대 소진(SLA·Strategic Leverage Attrition)’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략적 지렛대 소진’이란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한 군사적 수단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정당성과 동맹의 결속, 협상의 공간까지 함께 소모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의 기반시설 공격은 이란의 전력복구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민간 피해가 확대되면 국제적 정당성과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란의 동맹국 시설 공격 역시 미국의 부담을 높일 수 있지만, 걸프국가의 반발과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키면서 자신의 전략적 지렛대를 소진할 수 있다.
결국 양측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대의 전쟁 지속능력을 공격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물리적 복구능력을, 이란은 미국과 동맹국의 정치적·사회적 인내력을 겨냥한다. 전쟁은 더 많은 무기를 파괴하는 경쟁을 넘어 누가 상대의 지속능력을 먼저 약화시키고 자신의 지속능력은 더 오래 유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상대의 지속기반을 더 많이 파괴한다고 전쟁이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속능력을 약화시키려는 공격이 보복과 민간 피해, 국제적 부담을 확대하면 양측 모두의 정치적 종료능력이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압박수단이 전쟁을 더 오래 지속시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호르무즈가 열려 있지만 자유통행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Ⅲ. 호르무즈는 열려 있으면서도 왜 자유롭게 항행할 수 없나
2026년 7월 16일부터 18일까지의 호르무즈해협은 현대 해양전략의 새로운 역설을 보여줬다. 해협은 국제법적으로 폐쇄되지 않았고 미국도 항행의 자유를 계속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실제 해상교통은 급격히 위축됐고, 다수의 선박이 운항을 연기하거나 우회하면서 정상적인 국제해상교통은 크게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선박추적 자료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전체 상선은 약 8척에 불과했으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운반선도 3척 수준으로 감소했다. 해협은 법적으로 열려 있었지만 위험과 비용의 급증으로 기능적으로는 크게 위축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리적 봉쇄 때문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 기뢰 위험, 군사충돌 가능성으로 국제선사와 보험회사들이 운항을 제한하거나 출항을 연기하면서 실제 항행이 감소했다.
여기서 다시 확인되는 것은 봉쇄(Blockade)와 통제(Control)의 차이이다. 봉쇄는 상대의 이동을 방해하는 행위이고, 통제는 예측 가능한 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집행하는 능력이다. 항행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통제권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항모와 구축함, 잠수함, 정보·감시·정찰(ISR) 자산을 바탕으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며 이란의 레이더와 대함미사일, 드론 시설을 반복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국제 상선이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는 질서를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이란 역시 호르무즈를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반복적인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국제해운에 불확실성을 조성할 수는 있지만, 안정적인 항행질서를 유지하고 집행할 능력은 없다. 이란이 유지하는 것은 통제권이 아니라 거부능력(Denial)이다.
결국 현재의 호르무즈는 미국도 통제를 완성하지 못했고, 이란도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한 공간이다. 미국은 통제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란은 통제의 완성을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 해협은 법적으로는 열려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닫혀 있는 역설적 공간이 됐다.
이는 필자가 제시해 온 거부능력과 통제권의 차이를 다시 입증한다. 거부능력은 상대가 원하는 질서를 완성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능력이고, 통제권은 국제사회가 신뢰하는 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집행하는 능력이다.
이 과정에서 ‘CAFIB(지속적 현장 집행전략)’의 의미도 더욱 분명해진다. CAFIB는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개념이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 국제규범과 경제적 신뢰를 결합해 질서를 계속 집행하는 전략이다. 호르무즈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군사행동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신뢰하는 항행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호르무즈의 경쟁은 해협을 누가 점령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국제사회가 신뢰하는 항행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집행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다. 군사적 우위와 국제적 정당성, 경제적 신뢰가 함께 결합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통제권이 완성된다. 결국 오늘날 호르무즈의 경쟁은 해협을 둘러싼 통제권 경쟁을 넘어, 그러한 질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를 겨루는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핵시설을 파괴해도 핵통제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Ⅳ. 핵시설을 파괴하고도 왜 핵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이번 전쟁은 현대 군사전략의 가장 중요한 역설 가운데 하나를 다시 보여줬다. 미국은 이란의 핵 관련 시설과 군사시설을 지속적으로 정밀타격하며 핵 프로그램의 물리적 기반을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 그러나 핵 문제 자체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시설은 파괴되었지만 핵은 아직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것이다.
2026년 6월 미국의 대규모 공습 이후 나탄즈와 포르도, 이스파한 등 주요 핵시설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우라늄 농축시설과 전력공급체계, 지원시설도 큰 손상을 입었으며, 미국은 이후에도 관련 군사시설과 방공망을 반복적으로 타격하며 복구능력을 계속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성공이 곧 핵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전쟁 이후 정상적인 사찰과 검증이 중단되면서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의 연속성(Continuity of Knowledge)’이 크게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일부 시설의 기능은 정지됐지만, 농축우라늄의 정확한 위치와 잔존 규모, 일부 장비의 이동 여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현대 핵 문제의 핵심이다. 핵시설은 군사력으로 파괴할 수 있지만 핵 프로그램은 국제적 검증체계가 회복돼야 비로소 통제할 수 있다. 핵시설의 물리적 제거와 핵능력의 국제적 통제는 서로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란 역시 이러한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다. 일부 시설이 파괴되더라도 핵기술 인력과 축적된 연구성과, 생산 경험까지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군사적 피해 속에서도 협상을 통해 제재를 완화하고 핵 개발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도 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공습이 확대될수록 시설은 더 많이 파괴할 수 있지만, 국제사찰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핵 프로그램의 실제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군사적 압박이 강화될수록 정보의 불확실성도 함께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핵 검증 전이(Nuclear Verification Displacement)’로 설명할 수 있다. ‘핵 검증 전이’란 군사적 타격이 확대될수록 핵시설의 물리적 능력은 감소하지만, 국제사회의 검증능력도 동시에 약화돼 핵 문제의 불확실성이 다른 형태로 이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시설은 파괴됐지만 검증은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핵 문제의 본질은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검증의 신뢰성에 있다. 국제사회는 핵시설이 얼마나 파괴됐는가보다 남아 있는 핵물질과 농축능력을 얼마나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검증이 불가능하면 군사적 성공도 정치적 성과로 전환되기 어렵다.
이는 호르무즈에서 나타난 통제권의 문제와도 같은 구조이다. 미국은 호르무즈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도 안정적인 항행질서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핵 문제에서도 시설을 파괴하고도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검증체계를 아직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례 모두 군사적 우위만으로는 최종적인 통제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미국과 이란이 경쟁하는 대상은 더 이상 핵시설 자체가 아니다.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 통제를 확보하려 하고, 이란은 검증 이전에 협상력을 유지하려 한다. 경쟁의 중심은 군사적 파괴보다 협상과 검증의 조건을 누가 더 유리하게 설계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군사력은 협상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지만, 검증 가능한 핵 합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현대전에서 진정한 통제는 상대의 시설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는가가 아니라, 그 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국제적 검증과 정치적 합의로 연결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군사적 승리가 자동으로 전략적 승리가 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제권 경쟁이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으로 변화된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Ⅴ. 통제권 경쟁은 왜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으로 바뀌었는가
2026년 7월 중동전쟁은 현대전의 경쟁방식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쟁 초기 미국은 이란의 핵시설과 방공망, 지휘통제체계를 집중적으로 타격했고,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호르무즈해협의 거부능력을 이용해 이에 대응했다. 당시 경쟁의 중심은 누가 더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략적 주도권과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그러나 7월 중순 이후 전쟁의 양상은 분명하게 달라졌다. 미국은 군사시설을 넘어 교량과 도로, 항만과 군수물류망까지 공격범위를 확대하며 이란의 전쟁 지속기반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란 역시 걸프지역 미군기지와 동맹국의 기반시설을 겨냥하여 미국과 동맹의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높이는 전략을 강화했다. 이제 양측이 경쟁하는 대상은 개별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국가의 전쟁 지속능력이 됐다.
이러한 변화는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SEC·Strategic Endurance Competition)’의 시작을 의미한다.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이란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군사력뿐 아니라 군수지원, 산업기반, 경제력, 동맹체계, 사회적 복원력과 정치적 의지를 종합적으로 유지하며 상대보다 먼저 한계에 도달하지 않는 경쟁을 의미한다.
미국은 ‘CAFIB(지속적 현장 집행전략)’를 기반으로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며 이란의 전력 재생산과 군수보급 능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TIB(위협 유지전략)’를 유지하면서 반복적인 미사일과 드론 공격, 해상위협과 대리세력을 활용해 미국과 동맹국의 방어비용과 정치적 부담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양측은 서로의 지속능력을 먼저 소진시키기 위한 장기 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CAFIB와 TIB는 반복적인 공격과 방어, 복구와 보복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필자가 제시한 ‘전략적 상호작용 순환(SIL)’을 형성한다. 미국은 압박을 지속해야 하고, 이란은 버티는 데 성공해야 한다. 전쟁은 단기 결전보다 장기적인 지속능력 경쟁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됐다.
그러나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군사행동이 길어질수록 양측 모두 전략적 지렛대를 소모하게 된다. 미국은 군사비용과 동맹 관리, 국제적 지지를 계속 유지해야 하고, 이란은 경제제재와 기반시설 파괴, 국내 경제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어느 한쪽만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의 핵심은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지속능력을 정치적 성과로 전환하는 데 있다. 군사적 우위와 지속적인 압박이 협상과 국제질서, 검증 가능한 합의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지속능력 역시 결국 소모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군사적 우위를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핵 검증체계와 안정적인 호르무즈 항행질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란 역시 제한적인 거부능력을 협상력으로 전환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고립을 피해야 한다. 양측 모두 군사력만으로는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전쟁은 현대 국제정치의 새로운 경쟁방식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영토를 점령하거나 적의 군대를 격파하는 것이 승리의 기준이었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군사력과 경제력, 동맹과 사회적 복원력을 유지하면서 이를 정치적 종료와 국제질서의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가 전략적 우위를 결정한다.
2026년 7월 호르무즈와 이란에서 전개되고 있는 경쟁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현대전의 승자는 더 많은 목표를 파괴한 국가가 아니라, 더 강한 지속능력을 검증 가능한 핵 합의와 안정적인 해상질서, 그리고 정치적 종료로 연결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승자는 버티기가 아니라 누가 먼저 끝낼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오래 버티기가 아니라 누가 먼저 끝낼 수 있는가
2026년 7월 호르무즈와 이란에서 전개된 군사적 충돌은 현대전의 승패 기준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쟁은 더 많은 표적을 파괴하거나 더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가 자동으로 승리하는 경쟁이 아니다. 오늘날 경쟁의 중심은 국가가 군사력과 경제력, 군수지원과 동맹, 사회적 복원력과 정치적 의지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이를 정치적 성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나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Strategic Endurance Competition)’은 전쟁을 오래 끌기 위한 전략이 아니다. 지속능력의 목적은 상대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우위를 검증 가능한 핵 합의와 안정적인 호르무즈 항행질서,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종료로 연결하는 데 있다. 오래 버티는 능력은 목적이 아니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최종적인 정치적 종료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란 역시 제한적인 거부능력을 협상력으로 전환하려 하지만,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부담이라는 한계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 결국 양측 모두 군사력만으로는 원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호르무즈가 국제사회에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도 여기에 있다. 현대전의 본질은 상대를 끝없이 소모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 검증과 협상, 질서와 집행을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통합해 전쟁을 가장 안정적으로 종결시키는 데 있다.
결국 미래 국제정치의 경쟁은 단순한 통제권 경쟁을 넘어 전략적 지속능력 경쟁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의 진정한 승자는 끝까지 버틴 국가가 아니라, 군사적 성과를 국제질서의 회복과 검증 가능한 평화로 연결해 전쟁을 가장 안정적으로 종결시킬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정충신 선임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