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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굽이굽이 지리산 따라 생명과 삶 품어온 물길[경상남도환경재단과 함께 하는 생태여행 2]

한 달에 한 번씩 경상남도환경재단(대표이사 정판용)과 생태여행을 떠납니다. 생태여행은 단순한 관광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맺는 일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엇갈리며 만들어낸 풍경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죠.

굽이굽이 지리산 따라 생명과 삶 품어온 물길[경상남도환경재단과 함께 하는 생태여행 2]

(3)함양 엄천강과 그 주변

마천·휴천·유림면 지나는 강물

멸종위기 종 등 생태 자원 풍성

용유담 절경 보며 편안한 휴식

둘레길 따라 산촌생태마을 구경

산비탈 개간한 다랑이논 소중

고찰 한지 등 문화 자산도 가득

한 달에 한 번씩 경상남도환경재단(대표이사 정판용)과 생태여행을 떠납니다. 생태여행은 단순한 관광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맺는 일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엇갈리며 만들어낸 풍경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죠. 올해도 물길이 바뀌며 드러난 작은 습지, 역사와 함께 깊어진 자연 숲과 주민들의 휴식이 되는 도심 숲 등 사람과 자연이 서로 기대어 살아온 자리를 찾아갑니다. 느린 발걸음으로 잔잔하게 길을 더듬으며 오래 머무를 예정입니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에서 본 엄천강 상류 풍경. 왼편으로 다랑이논이 보인다. /이서후 기자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에서 본 엄천강 하류 지역 풍경. /이서후 기자

엄천강은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발원해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유림면을 지나 산청군 생초면에서 남강과 만납니다. 행정상 이름은 임천이지만, 이 강을 따라 살아온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엄천강이라 불렀습니다.

이름의 유래에는 오래된 절 하나가 등장합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엄천사입니다. 정확한 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동호마을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전기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엄천사 터는 엄천 북안에 있다’고 기록돼 있고, 전국 읍지를 모아 편찬한 <여지도서>와 전국 사철 기록을 정리한 <범우고>에서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 맑은 물 모이는 하천

지리산 맑은 계곡물이 엄천강으로 흘러들어 용유담을 이룬다. /이서후 기자

지리산 맑은 계곡물이 엄천강으로 흘러들어 용유담을 이룬다. /이서후 기자

엄천강을 제대로 만나려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좋습니다. 마천면 송전리와 휴천면 사이에 자리한 용유담에 이르면 지리산의 여러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한곳으로 모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용유담은 지리산 물길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입니다. 한신계곡과 백무동계곡, 칠선계곡 등 지리산 깊은 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수천·광천·람천 등 여러 지류와 함께 이곳으로 모입니다.

맑은 계곡물은 용유담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릅니다. 넓고 평평한 물웅덩이를 이루기도 하고,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바위 사이를 거칠게 흘러내리기도 합니다. 물이 바위를 돌아 흐르는 모습과 오랜 세월 물살에 깎인 기암괴석은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용유담에는 용과 관련한 전설이 많습니다.

오래전 용유담 맑은 물에서만 볼 수 있다는 ‘가사어’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등에 난 무늬가 스님의 가사와 닮아 그렇게 불렸다는 물고기입니다. 지금은 엄천강을 포함한 지리산 생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물고기는 ‘여울마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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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천강에는 전 세계적으로 엄천강과 남강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어류 여울마자를 비롯해 여러 멸종위기 어종이 살고 있습니다. 수달도 대표적인 생태 지표종입니다. 강 주변에서 주민들이 수달을 자주 목격할 정도로 엄천강에는 수달도 많이 삽니다.

이런 점에서 엄천강은 단순히 지리산을 흐르는 물길이 아닙니다. 지리산 생태계가 그대로 흐르는 거대한 생태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둘레길 굽이굽이

지리산둘레길함양군안내사무소. /이서후 기자

지리산둘레길함양군안내사무소. /이서후 기자

엄천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리산 둘레길을 만납니다. 지리산을 한 바퀴 크게 돌아가는 둘레길은 산 정상만을 바라보며 걷는 길과는 조금 다릅니다. 산과 마을 사이를 지나고, 밭과 논을 지나고, 오래된 나무 아래를 지나갑니다. 산을 정복하는 길이라기보다 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만나는 길입니다.

함양 구간에서도 그런 풍경이 이어집니다. 마천면 창원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이 지나는 산촌입니다. 2007년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된 뒤 주민들이 직접 휴양시설을 관리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마을의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 왔습니다. 집마다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서 있고, 마을 어귀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참나무가 당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낡은 돌담과 오래된 나무들이 정겨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입구. 경상남도 무형유산 한지장 안내판이 보인다. /이서후 기자

창원마을에서는 전통 한지의 맥도 잇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무형유산 한지장 이상옥 장인이 이곳에서 60년 넘게 전통 한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직접 닥나무를 재배하고, 전통 방식인 흘림뜨기로 종이를 만듭니다.

지리산을 등지고 앞으로 엄천강이 흐르는 송전산촌생태마을은 오랫동안 오지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된 뒤 주민들이 체험과 휴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과 칠선계곡을 품은 추성마을은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산행의 출발점이자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랭이논과 둠벙 등 논습지 생태계

엄천강 주변 지리산 자락에 속한 마을을 걷다 보면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올라간 논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랑이논입니다. 평평한 땅이 부족한 산촌에서 사람들이 산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고, 돌을 쌓아 논둑을 만들었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생활의 흔적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도마마을입니다. 논두렁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 산의 모양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층과 층 사이에는 오래 쌓아 올린 돌담이 낮게 이어집니다. 그 위로 논이 한 단씩 포개지면서 마치 거대한 계단을 보는 듯합니다. 뒤로는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섰지요. 실제로 도마마을 다랑이논은 이런 풍경 때문에 사진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 다랑이논. 산비탈을 깎아 나온 돌로 논두렁을 만들었다. /이서후 기자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 다랑이논. /경남영상자료관 로케이션DB

함양군 마천면 엄천강변에서 본 도마마을 다랑이논. 산비탈을 깎아 나온 돌로 논두렁을 만들었다. /이서후 기자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둠벙. 농사용으로 만든 물웅덩이로 지금은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 함양 생태관광지 추진협의체

창원마을에는 다랑이논 사이에 둠벙도 있습니다. 농사용 물을 저장하는 작은 연못이죠. 고성 지역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둠벙은 논과 논, 물과 숲을 이어주는 작은 생태계이기도 합니다.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일부 다랑이논이 밭이나 휴경지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함양군과 주민들이 다시 복원을 시작해 지금은 그 풍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다랑이논은 풍경이면서 농업유산이기도 하고, 생태 자산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사라져가는 지역민의 삶 기억이기도 하죠. 다랑논이 사라진다는 것은 논두렁을 쌓고 물을 대고 모를 심고 벼를 거두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 하나가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 따라 삶의 이야기도 흐르고

이렇게 엄천강을 따라가다 오래된 계곡 마다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칠선계곡 고찰 벽송사와 서암정사입니다. 특히 서암정사 사경전시관에서는 화엄경을 금빛으로 쓰거나 나무에 새기는 등 전통 사경의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엄천강 주변에는 사찰과 함께 정자와 계곡에 얽힌 이야기도 많습니다. 용유담의 구룡정과 화환정, 함허정 등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옛사람들의 흔적입니다.

엄천강과 나란히 달리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마천면 소재지 지나 곧 마천골물레방아가 나옵니다. 함양은 예부터 물레방아와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던 1792년, 중국에서 본 물레방아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실제 농업에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함양군 마천면 마천골물레방아.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 조선 최초로 물레방아를 지은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이서후 기자

엄천강 가까이 ‘지리산 가는 길’ 이라 불리는 1023번 지방도가 지납니다. 도로의 핵심이 오도재라는 고개입니다. 오도(悟道)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입니다. 오도재는 오도치, 오도령이라고도 하는데,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를 잇는 773m 높이에 있는 고개입니다.

조선시대 함양 장사치들이 이곳을 거쳐 지리산 장터목까지 가서 하동, 전남 구례·광양 사람과 교역을 했고요. 북쪽 한양 방향에서 온 이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선비들, 김종직, 정여창, 점필재, 김일손, 유호인, 조식 같은 분들, 유명한 승려들 서산대사, 인오대사 같은 수행자들 이곳을 지났다고 합니다.

2006년 11월 오도재 고개 정상에 지리산제일문이 만들어집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란 거죠. 원래 오도재에는 방장제일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방장산이죠. 돌로 된 것 하나, 나무로 된 것 하나 이렇게 문이 두 개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나무로 된 문이 불타 사라집니다. 이후 방장 제1문 자리에 지리산제일문이 만들어진 거죠.

오도재 쉼터에 함양 방향으로 바라보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함양 읍내가 아득하게 보이고, 그 주변으로 첩첩 쌓인 산세가 동양화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오도재 쉼터에서 보면 가까이는 눈 아래로 오도재까지 오는 동안 달렸던 구불구불한 도로가 보입니다. 함양읍 조동마을에서부터 시작해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지며 산을 오르는 도로입니다. 이 도로 초입에 지안재가 있습니다.

각도가 거의 180도로 꺾이면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합니다. 지안재에서 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풍경이어서, 도로공사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들었죠.

/이서후 기자

경상남도환경재단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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