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원에서 노동소득의 격차를 완화하는 사실상 유일한 제도가 근로장려금이다. 이 제도는 1975년 미국에서 먼저 시행했고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몇 번의 법 개정을 통해서 지급 기준과 지급 대상을 확대해 오고 있다. 지급 대상자의 소득 상한선은 가구당 맞벌이 기준으로 4,400만 원까지 올렸고, 지급액도 최대 3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소득 재분배 효과를 실현하는 제도로 안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근로장려금이 노동소득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지렛대로 믿을 만한가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근로장려금이 매년 얼마나 지급되고 있는지 통계를 보자. 2024년 기준으로 근로장려금을 지급한 가구 수는 약 404만 가구며, 총지급액은 4조 5,472억 원 규모다. 가구당 평균 지급액으로 환산하면 가구당 약 112만 원씩 지급됐다. 2020년과 비교하면 근로장려금을 지급한 가구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가구 수는 총 21만 9,783가구가 줄었으며, 총지급액은 739억 2,200만 원이 증가했다. 총지급액은 증가했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가구당 지원금은 5년 동안 고작 7만 5,364원 늘었고, 비율로 계산하면 7.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근로장려금의 인상 폭은 근로소득의 양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같은 시기를 기준으로 300인 이상 규모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의 근로소득 상승액은 18.6%다(사업체노동력조사). 이러한 결과는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도 저임금 노동자에게 소득 재분배 정책이 실효성 있게 집행됐다고 평가하기 어렵게 한다.
근로장려금이 가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가도 살펴보자. 가구 유형별로 근로장려금이 지급된 금액도 기대 이하의 수준을 보였다. 가족 구성원이 본인 단독으로 구성된 단독가구의 문제점이 크게 보였다. 단독가구는 연 소득이 2,200만 원 미만인 경우 최대 165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단독가구 1가구당 지원받는 금액은 약 95만 원에 불과하다. 단독가구는 근로장려금을 받는 전체 가구 중에서 69.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리고 이들 단독가구는 청년이나 고령의 저임금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고용 형태도 플랫폼노동자나 단기 계약직 등 불안정 노동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정작 지원이 절실한 불안정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사회적 거버넌스 체제로 전환
근로장려금이 소득 양극화 현상을 줄이는 소득 재분배 정책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근로장려금은 법적 근거부터 불안정하다. 근로장려금의 법적 근거는 조세특례제한법이다. 이 법에 규정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세금을 환급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즉 근로소득세나 사업소득세를 내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납부한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환급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장려금은 조세제도로서 세금의 효율적 관리에 정책의 방점이 찍힌다. 재정의 관점에서는 세금으로 지출되는 돈은 예산 범위 내에서 통제 가능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이는 필요한 사람에게 넉넉하게 지원한다는 복지정책의 논리와 대비된다. 저소득 국민에게 정부가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게 된다. 생계비 지급 기준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한다. 여기에는 정부위원, 공익위원,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 등이 폭넓게 참여한다. 이렇게 각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다 보니 실질적인 적정 생계비 수준에서 논의가 진행된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 그리고 공익위원으로 구성돼 매년 최저임금 수준을 심의·의결한다. 노동자의 이해를 직접 대변하는 주체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자리에 앉아 심의하고 표결에 참여한다. 심의 기간을 거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표결을 통해 결정한다. 결정 과정은 공개되고 이견은 기록으로 남는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전문위원회를 둘 수 있으며, 관계 노동자와 사용자 기타 관계인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이나 최저임금은 사회적 거버넌스 체제 안에서 움직인다는 점이 근로장려금과 대비되는 결정적인 차이다. 이제 근로장려금도 재정경제부의 조세정책 틀에서 벗어나 사회적 거버넌스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근로장려금, 양극화 완화의 마중물
근본적인 처방은 새로운 입법을 하는 것이다. 그 방향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근로장려금을 재정경제부 소관 조세특례제한법의 근거에서 분리해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사회보장성 법률 입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생활보장법’을 제정해 기존의 공적부조 제도와 연계시켜서 일용직과 플랫폼노동 등 저임금 노동자를 넉넉하게 지원할 수 있다. 기존 근로장려금은 세금을 내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급 대상이 좁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 방향은 결정 구조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입법 내용에 ‘노동자생활보장위원회’를 법정 기구로 설치하고 최저임금위원회의 3자 구조를 기본 모델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근로장려금까지 거버넌스 체제가 필요하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장기적 과제로 근로장려금과 아동수당, 자녀장려금 등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영국의 유니버셜크레딧 제도는 근로소득 세액공제와 주거급여 등 6개 사회보장제도를 통합한 바 있다. 우리도 향후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되면 최적의 거버넌스 체제를 놓고 숙의가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근로장려금은 노동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중한 자원이다. 몇 줄 안 되는 그 법 조항에 수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스며져 있다. 1차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인공지능과 로봇에 밀려 저임금으로 내몰리는 노동자가 최소한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마중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노동소득의 재분배가 민주적으로 결정되는 사회보장 거버넌스 체제가 튼튼하게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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