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 조짐에 산업계 난리…석화·정유·항공·여행 등 직격탄
나프타 부족에 식품·조선·포장재 업계도 비상…중소기업은 더 큰일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산업계가 아우성이다. 사진은 LG화학 대산공장
# “과장봉지용 접착제가 없어요.” 이는 지난 주말에 만난 국내 대기업 식품업계 임원의 말이다. 과자를 생산해 포장을 해야하는 데 과자봉지용 접착제를 구하기가 힘들어 생산에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이는 이란전쟁으로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어려워 생긴 일이다. 과자봉지용 접착제는 친환경 접착필름이 사용되는 데 이는 나프타를 이용해 생산한다.
# “포장재를 구할 수가 없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지경입니다.” 이는 국내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다. 포장재 역시 나프타로 생산하는 데 석유화학 기업들이 원재료가 없어 포장재 생산을 줄이면서 발생한 일이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산업계가 아우성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되지 않을 경우 이란의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 시한이 22일(현지시간) 하루를 남기면서 중동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이란은 “이란 발전소를 겨냥한 미국의 위협이 실행되면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폐쇄되고 발전소가 재건될 때까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고 전쟁이 장기화되면 국내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국내 조선업계는 선박용 강재 절단에 쓰이는 특수 가스 '에틸렌'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에틸렌은 나프타를 분해해 생산되는데 최근 나프타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수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정유·석화업계와 항공·해운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를 넘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커지자 대체 수입선 확보에 나서는 한편 설비 가동률 하향도 검토 중이다.
유류비 비중이 영업비용의 최대 35%를 차지하는 항공업계의 수익성 악화도 가시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3050만배럴로, 유가 1달러 상승하면 수치상 3050만달러(457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유가가 현재와 같이 이전 대비 50달러 오르면 연간 2조2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 부과를 통해 손실을 만회하고 있지만, 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실제 여행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실적 하락을 막기는 어렵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정유사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 정부 비축유의 적기 방출, 항공사 초과 유류비 부담에 대한 정부 지원(관세 면제, 세액 공제 등)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상태다.
해운업계는 운임 상승으로 수혜를 보고 있지만 선박 연료인 초저유황유(VLSFO) 가격 급등으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항 기준 VLSFO 가격은 지난달 27일 톤당 522달러에서 최근 1005달러로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중동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던 국내 전자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중동으로 향하는 수출 선박들에는 컨테이너당 평균 수백만원 수준의 전쟁 할증료가 부과되고 있다. 2만개 규모 대형 컨테이너선을 기준으로 하면 컨테이너선 1척에 전쟁 할증료만 200억원 넘게 추가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없어서 못 판다”는 반도체의 경우도 최근 원재료 가격이 급등해 생산비가 껑충 뛰어올랐다. 반도체 필수 소재인 텅스텐옥사이드는 최근 중국산이 ㎏당 227.47달러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말(183.06달러)과 비교하면 한 달여 만에 24% 이상 급등한 수치다. 텅스텐은 미사일, 총알 탄두, 장갑차용 관통탄의 핵심 소재로, 이란 전쟁에 따른 수요가 급등하면서 가격이 올랐다.
국내 건설·건자재 업계도 비용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유가·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철강, 시멘트 등 건설 자재 생산비와 장비 운용비, 운송비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원자재 수급, 생산, 판매 등 모든 공급망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중동에 생산기지를 둔 전자업체들은 경영 불확실성에 공장 가동률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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