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사진=로이터·연합
글로벌 금융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미국 국채 10년 금리가 24년래 가장 최고치를 찍은 것이다. 국가별 통화 정책이나 채권 수급 여건과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국가들마저 미국 금리 동향에 휩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각국의 서로 다른 기준금리 기조와 개별 수급 악재 등 다양했던 재료들은 일제히 무색해졌다. ‘미국 금리 상승은 곧 글로벌 금리 상승’이라는 공식이 시장을 지배하는 모습이다. 시장이 기대하던 금리 정점 또는 고점 확인은 점차 멀어지고 있으며, 설령 향후 금리가 하락하더라도 그 폭은 매우 미미할 것이라는 경계감이 짙게 깔렸다.
이처럼 금리가 좀처럼 하락으로 돌아서지 못하는 가장 깊은 뿌리에는 단순한 통화 정책을 넘어선 ‘미국 국채 수급 불안과 부채의 질적 악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상존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모든 문제를 돈을 풀어 해결하려 했던 각국 정부의 재정 대응은 위기가 일단락된 이후에도 국채 발행을 줄이지 못하는 비가역적 구조를 만들었다.
팬데믹 이전보다 한두 단계 높아진 수준에서 국채 발행이 꾸준히 누적된 가운데, 공격적인 금리 인상 국면과 맞물리며 극심한 ‘이자 비용 폭탄’이라는 유탄을 맞았다. 높은 금리로 국채 발행을 계속 늘린 탓에 증가한 이자 부담이 그 자체로 부채 레벨을 다시 끌어올리는 치명적인 악순환에 진입했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재정 지출 가운데 순이자비용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3.2% 수준에 달한다. 이미 국가 안보의 핵심인 국방비 지출마저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채무 부담에 고금리로 늘어난 이자 부담까지 불거지면서 미국 국채 시장의 수급 균형은 급격하게 와해됐다.
일례로 미국 국채에 대한 해외 부문의 보유 잔액은 팬데믹 당시 6조 달러(약 8016조원)에서 현재 9조 달러(약 1경 2024조원)를 웃돌 정도로 꾸준히 늘었지만, 발행 물량이 워낙 압도적으로 폭증한 탓에 해외 부문 보유 비중은 팬데믹 이전 40%대에서 현재 30%대 초반까지 떨어지는 착시와 수급 착란이 발생했다.
미국 정부 역시 장기채 발행 충격을 막기 위해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TABC)의 건전성 권고안인 약 15~20%를 3년째 초과하면서까지 단기 국채 위주의 ‘돌려막기식’ 발행으로 우회로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빠르게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고금리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차환 발행해야 하는 가중된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이자 비용은 미국 국채의 양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질적인 위험까지 극대화시켰고, 금리 하락을 가로막는 단단한 걸림돌이 됐다.
이 같은 재정과 수급 악화 위에 고착화된 인플레이션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실책이 더해지며 금리 상방 압력을 더 가중시켰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이후 시작된 고유가발 인플레이션 우려는 단기 쇼크를 넘어 장기간 낮아지기 어려운 구조적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잔뜩 높아졌다.
반면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초기 행보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 키웠다. 취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 등으로 인해 인하를 이어갈 인물로 비춰졌고, 지난 7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조차 금융 여건의 긴축을 운운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시장은 그를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무늬만 매파’로 규정했다. 시장은 연준의 미온적 물가 대응에 반발해 가파른 금리 상승이란 무력 시위로 답했다.
뒤늦게 연준은 행동을 동반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고 추가 인상 사이클의 여지까지 남겼다. 당국이 물가 잡기 의지를 피력하면서 무질서한 금리 폭등 가능성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금리 인상이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사이클로 전개될 것이라는 사실과 꺾이지 않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결합하면서 시장금리는 하락 전환이나 안정세를 찾기조차 어려운 국면에 갇히게 됐다.
금리 상승 재료가 산적하고 수급 악화가 구조화되자, 채권 시장 참가자들은 기계적인 매수를 중단하고 ‘채권 자경단’으로 변모했다. 과거 같으면 만기 도래시 수행하던 매수 대응을 뒤로 기약 없이 미루거나 가격 변동성 부담이 적은 단기 국채로 이동하는 전략적 선회를 택한 것이다. 장기 채권을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됨에 따라 금리가 하락하더라도 폭이 미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미국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주요 임계 영역을 상향 돌파함에 따라 국내 금리에도 영향이나 파급 효과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국채 시장의 내부 수급·재정 여건은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별성과 안정적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근본적으로 미국 국채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대규모 국채 발행이나 이자 비용의 폭증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차별점은 한국 정부의 재정 여력과 수급 미세 조정 능력이다. 한국은 반도체 등 핵심 수출 산업의 실적 개선과 세수 여건 호조에 힘입어 확보한 초과세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우회로를 확보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급등할 때 초과세수 재원을 신속히 투입해 월별 국고채 발행 계획 물량을 즉각 수조 원 단위로 축소·조절할 수 있고, 필요시 유통 시장에서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여 소각하는 긴급 바이백(조기상환) 카드를 동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수급 제어 장치 덕분에 미국처럼 높은 금리로 국채 발행을 계속 늘려 이자가 부채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훨씬 약하고, 극단적으로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채권 자경단으로 과격하게 변모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초과세수를 활용한 국채 발행 조절 능력과 튼튼한 재정 완충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타국 대비 금리가 훨씬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든든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내부적 방어 기제에도 국내 금리가 미국 금리의 대세 상승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인 하락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국채 금리는 단순한 일국의 금리가 아니라 전 세계 유동성 흐름과 위험 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는 글로벌 금융의 절대적 벤치마크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구조화된 고(高)인플레이션, 미국 재정적자발 국채 발행 폭증, 그리고 글로벌 채권 자경단이 강요하는 높아진 기간 프리미엄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 전 세계 금리 하한선 자체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한국 정부가 초과세수로 국채 수급을 아무리 조정하더라도 이는 국내 금리의 급등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에 그칠 뿐, 미국이 견인하는 글로벌 금리 상승세 자체를 아래로 꺾을 수는 없다.
결국 한국 채권 시장은 정부의 재정 대응력 덕분에 무질서한 금리 폭등을 겪지 않고 상대적 안정세를 과시하겠지만, 글로벌 유동성의 거대한 고금리 물결에 가로막혀 우리가 기대하던 금리의 정점은 계속해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금리가 상대적 안정세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글로벌 금리의 하강 동력이 제한된 이상 향후 금리가 하락하더라도 그 폭은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 lee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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