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폐교에 벼 심고 사람 키웠다…20년 생태·문화 실험
‘농부 과학자’ 이동현 농업회사 법인 ‘미실란’ 대표
유기농 쌀 연구·생산 넘어
음악회·책방·영화제로 확장
곡성 살리는 ‘지역 플랫폼’
규슈대 생물자원관리학 박사
유엔 모범농민상·일가상 수상
김탁환 소설가와 책 출간도
2026년 07월 21일(화) 18:10
‘미실란’ 이동현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태교육이다. 미실란을 찾은 유치원생들이 자신들이 심은 모가 자라고 있는 논을 찾았다.
“와, 정말 많이 자랐어.”
논에 도착한 유치원 아이들은 자신들이 심은 모가 훌쩍 자란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신발을 벗고 논에 들어간 아이들은 물방개 등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란 하늘 아래 쏟아지는 웃음 소리, 초록빛 논, 황토 논두렁과 허수아비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이들 곁에는 ‘농부 과학자’ 이동현 농업회사 법인 ‘미실란’ 대표가 있었다.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겠다는 말에 그는 “너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이 대표와 논을 바라보고 들어 선 미실란 카페 ‘씨앗의 마음’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자꾸만 논으로 향했다. 이 대표는 황금들녘도 좋지만 막 벼가 익어가는 때가 가장 예쁘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려면 모내기도 해보고 논에 들어가 다른 생물도 관찰하고 그래야죠. 가을엔 추수체험을 할거에요. 모가 쌀이 되고, 밥이 돼 우리 건강을 지켜준다는 것을 알게되겠죠. 논에서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인식시켜주면 나중에 어른이 돼 생명을 파괴하는 일을 앞서서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곡성 아이들이 대도시 아이들과는 다른 지문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아이들이 나중에 생태학자나 과학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난 2019년 유엔 식량농업기구 선정 모범 농민상을 수상한 이동현(왼쪽 두번째) 대표..
◇곡성 폐교에 심은 ‘농부 과학자’의 꿈
미실란은 언젠가 한번은 취재해 보고 싶은 곳이었다. 시작은 밥집이었다. 오래 전, 직접 재배한 쌀로 지은 오색현미밥으로 만든 ‘건강 밥상’으로 소문이 난 곡성 폐교의 식당 ‘밥카페 반(飯)하다’를 찾았고, ‘논 뷰’가 인상적인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시간이 흘러 김탁환 소설가가 이 곳에 둥지를 틀었고, 책방 오픈 소식이 들렸다. 작은들판음악제를 열고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나를 돌보고, 들녘을 돌보고, 마을을 돌보고, 지구를 돌보는’ 미실란은 어떤 곳일까 갈수록 궁금해졌다.
마침 이동현 대표가 ‘모든 생명은 지키는 것이다-농부와 소설가가 심은 한 알의 진심’(해냄)을 펴냈다. 지난 2020년 이 대표와 미실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펴낸 김탁환 소설가와 함께 썼다. 기후위기 시대 자연과 공존하는 농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기록한 농사일기이자 미실란 20년을 돌아본 책이다.
2005년 폐교 곡성동초등학교에 문을 연 미실란은 수십종의 벼를 재배하며 20여년 동안 유기농 발아현미와 친환경 곡물 가공식품을 연구·생산하는 농업회사 법인이다. ‘먹는 음식과 약은 근본 뿌리가 같다는 뜻의 ‘식약동원’(食藥同源)의 정신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희망의 열매를 꽃 피우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미실란(美實蘭)’은 ‘문화를 꽃피우는 기업’이기도 하다. 김탁환 작가는 책에서 미실란을 “지금까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협업과 연대의 꿈을 현실로 바꾸는 회사”라고 적었다.
고흥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국립순천대 농생물학과와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규슈대학 대학원에서 생물자원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 대신, 현장을 택한 이 대표는 대산농촌문화상(2015), 유엔 식량농업기구 모범농민상(2019), 일가상 농업부문(2024)을 수상하며 인정받았다.
미실란 복도에는 첫 해 이 대표가 심은 278개 품종의 벼 낱알이 담긴 유리병이 전시돼 있다. 오랜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제는 보통 30여종 정도를 키우고 올해는 24종을 심었다. 초창기 2만1000평까지 짓기도 했던 논농사는 현재 5000여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는 미실란이 20주년을 맞는 해여서 의미가 컸다.
“생각보다 인지도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처음 꿈꿨던 대부분은 이뤄가고 있는 듯합니다. 친환경 생태농업을 하겠다는 약속, 농민들과 더불어 가겠다는 약속을 지켜왔어요. 또 이 작은 농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젊은 청년들과 함께하는 걸 꿈꿨는데 청년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지켜주는 게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나름 인정도 받고요. 생태와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교육과 판매 등을 통해 미실란이 작지만 지역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김탁환 소설가와 함께 운영하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논이 바라다 보이는 카페 ‘씨앗의 마음’.
◇책방, 음악회, 생태교육, 영화제
‘건강한 농업을 기반으로 농촌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 세상’을 꿈꾸는 이 대표는 기업가이자 마을활동가다. 그는 일반 기업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역에 문화를 접목시키는 일이다. 풍년 기원과 추수감사의 마음을 담은 작은 들판음악회는 30회 넘게 열렸다. 곡성교육연대와 함께 준비하는 섬진강마을영화제는 올해 5회째를 맞는다. 매년 9월 들녘을 함께 걸으며 시작하는 영화제는 2년 전부터는 곡성 아이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메이드인 섬진강’ 섹션을 운영중이다.
2021년에는 ‘생태책방-들녘의 마음’을 열었다. 생태를 중심으로 문학, 인문학 등 900여종을 갖췄다. 북토크는 작가들에게 인기가 많아 5명의 선정위원이 만장일치로 정한다. 오는 25일에는 정용실 작가의 ‘내면의 작은 방’ 북토크가 열린다. 제철에 맞는 책을 보내주는 정기 구독 서비스 ‘들마다 꽃 달마다 책’도 운영중이다.
“유학 당시 문부성에서 정기적으로 농어촌 현장 투어 비용을 줘 여러 곳을 다녔어요. 마을마다 개성 있는 작은 축제를 여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도 언젠가 작은 단위의 문화 행사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저부터도 초창기 농촌에 살 때 답답한 부분이 많았어요. 이럴 때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아내가 대학 때 통기타 서클에서 활동해서 우선 음악회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계속 확장됐고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마다 ‘사람’이 있었다. ‘인생스승’으로 삼는 이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수차례 미실란을 방문한 그와 함께 ‘마을이 학교다, 지역이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6년 동안 전국투어를 함께하며 지역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보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가진 후에 나누는 것이 아니고 없든 있든 간에 습관처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된다”는 박 시장의 말도 늘 마음에 품고 산다. 김탁환 작가는 아무 조건 없이 서로를 지지해주는 ‘우정의 동반자’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스승은 일본 지도교수다. 그는 과학자로서 언제나 세 가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구를 게을리하지 마라, 가르치는 걸 멈추지 마라, 많이 배울수록 봉사하라, 세 가지를 말씀하셨어요. 지금도 장내 미생물과 쌀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고, 전남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후 여전히 생태교육을 하고 있고, 18년 동안 담양 예수 마음의 집에 온 가족이 함께 가 기부하고 봉사하고 있으니 교수님 말씀을 얼추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유학 때 행복했던 건 교수님이 연구결과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봐줬다는 거에요. 아이들에게 ‘너희 아빠는 세계 최고 과학자”라고 말해주셨고, 학위받을 때 “당신 같은 과학자를 만나 영광이라고, 어딜 가서든 최고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곡성 폐교에 문을 연 미실란.
◇‘사람’에 대한 진심을 이어가다
그가 받은 ‘사람’에 대한 진심은 또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직원들에게 미실란을 찾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환대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들이 미실란을 지지하고 인정해줘 21년을 이어오고, 다음 세대에게 넘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실란 식구는 모두 11명. 이 대표는 직원들을 위해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밥카페 반하다’를 과감하게 접었다.
“밥 카페덕에 사람들이 우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주셨고 미실란 팬층이 많아졌어요. 힘들다 살아났던 것도 밥 카페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장사가 잘 되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사업하시는 분들은 저한테 합리적이지 않는 길만 간다고 말해요. 잘 될 때 확장하는 게 아니라 접어 버렸으니요. 전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렵게 곡성에 자리잡은 저 귀한 보물 같은 친구들이 떠나버리는 것은 실패라고 생각하거든요. 돈보다도, 기업의 미래는 다음 세대가 농촌에 머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남게 된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기다리시는 밥카페는 저희와 철학이 맞는 분들이 합류하면 다시 문을 열 계획입니다.”
가족은 그에게 언제나 힘이 됐다. 그가 ‘동지’라고 부르는 아내 남근숙 이사는 세심하게 미실란을 챙긴다. 전남대 농대를 나온 큰 아들 재혁씨는 이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부’가 됐고 둘째 재욱씨는 아버지의 꿈을 이어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큰 아들은 올해부터 자신의 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아버지 스타일이 아닌, 제 스타일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고군분투중입니다.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표자리에서 물러난 후 아들이 연구 책임자가 될 때 연구원으로 참여해 품고 있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해 같이 논문을 써 보는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한데 지금 공동연구자로 참여하고 있으니 꿈이 빨리 실현된 셈이죠.”
제일 힘든 건 진심으로 애를 쓰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상황이다. 유기농은 최저가나 규모의 경쟁이 아닌, 가치와 철학의 경쟁인데 똑같은 환경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농업에서도 ‘장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대표는 연수 차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 공동묘지에서 발견한 묘비명을 마음에 담았다. ‘나는 씨앗 뿌리는 농부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 자부심과 긍지가 담겨 있어 마음이 찡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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