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금호 작가·언론인
추호(秋胡)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희롱했다는 말인데, 기회만 있으면 꽃을 꺾으려 드는 사내들의 여성편력을 꼬집는 의미로 쓰인다.
권력과 부, 명예를 가진 유명인들이 미성년자 성 착취를 했다는 엡스타인 사건을 비롯해 아직도 욕망의 그물에 갖혀 갖가지 성추문을 일으키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경종을 주는 고사성어다.
중국 한나라 때의 학자 유흠(劉歆)이 짓고 진(晉)나라 때 갈홍(葛洪)이 모은 것으로 전하는 <서경잡기(西京雜記)>에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사람인 추호(秋胡)는 결혼한 지 석 달도 안돼 먼 지방으로 발령받았다. 신혼의 달콤한조차 아스라해진 삼 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고향 마을의 교외에서 뽕잎을 따는 아리따운 여인을 보고는 한 눈에 반했다. 마음이 동한 추호는 그녀를 품고자 황금덩어리를 주며 유혹했는데, 여인은 삼 년 동안 독수공방하면서 지조를 지켜왔는데 오늘 뜻하지 않게 모욕을 당했다면서 분개했다.
이에 정신을 차린 추호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와 고향집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 여인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아내였다. 추호가 다시 교외 뽕밭으로 달려 나가 용서를 빌고자 그녀를 찾았지만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이미 강물에 몸을 던져버린 뒤였다. 여기서 추호가 파렴치하게 자신의 아내를 희롱한다는 '추호희처(秋胡戱妻)'라는 말이 나왔는데, 함부로 여자를 탐내는 사내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경고하는 말로 쓰여오고 있다.
지금은 좀 잠잠하지만 휴화산의 마그마처럼 많은 유명인의 성추문을 담고 있는 엡스타인 문건은 우리에게 권력과 부(富), 욕망이 얽혀서 어떻게 사회를 흔들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엡스타인 사건 문건은 단순한 성범죄 리스트가 아니다. 미국의 이란 침공 등 세계적 이슈들로 인해 지금은 수면 아래로 잠시 들어가 있지만, 인권의 뿌리를 흔드는 파렴치가 분명하다.
공개된 문건에서 빌 클린턴,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 왕자 등 세계적 유명인들이 반복 언급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엡스타인의 사적 제트기 동승 기록, 이메일 교환 등으로 연결되지만, 대부분 범죄 혐의를 부인 중이다. 문건에 오른 이들은 정치·경제·문화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다. 이스라엘 전총리 에후드 바라크,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의 이름도 거론된다.
한국도 툭하면 터지는 것이 성추문이다. 유명 정치인인부터 연예인 등 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어떤 이는 부끄러움으로 목숨을 버렸다. 세계 도처가 한동안 미투(Me Too) 운동으로 인해 몸살을 앓기도 했다.
누구도 성적인 욕망으로부터 완벽히 자유스럽지는 못하다. 그러나 권력자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누리는 권위와 유명세만큼 욕망은 반비례로 더 절제돼야 한다. 권력과 돈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드는 것은 천박스러운 것이고, 그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성등 약자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성착취의 유혹에 많이 노출돼 있기에 스스로 절제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
추호희처(秋胡戱妻)는 2000여 전의 이야기지만 엡스타인 문건처럼 지금도 여전히 당신을 향해 묻고 있다. “당신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송금호 작가·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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