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개혁의 성패는 발표가 아니라 교실에서 갈린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배우고 교사가 수업과 평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고교학점제로 학교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서·논술형 평가 확대까지 서두르면 혼란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육당국은 새로운 제도를 앞세우기 전에 지금의 학교부터 살펴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사노동조합연맹,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 단체는 고교학점제에 따른 교육격차와 교원 부족, 입시를 의식한 과목 선택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서로 다른 교원단체가 같은 목소리를 낸 만큼 교육당국은 현장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핵심은 교육과정과 입시의 충돌이다. 고교학점제는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다. 그러나 등급 경쟁이 선택을 좌우하면 학생은 배우고 싶은 과목보다 성적에 유리한 과목을 찾게 된다. 교원이 부족한 작은 학교에서는 선택권 자체가 좁아진다. 학교에 따라 배울 기회가 달라지는 문제를 학생의 선택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고교학점제 첫 적용 학생들은 2027년에 2028학년도 대입을 치른다. 교육당국은 이들이 겪는 교육과정과 입시의 엇박자를 먼저 줄여야 한다. 선택과목 평가방식과 대학의 평가 기준이 제도의 취지에 맞는지 점검하고, 학교 규모와 지역에 따른 과목 개설 격차를 줄일 대책을 내놔야 한다.
서·논술형 평가도 취지와 실행 조건을 구분해야 한다. 학생이 생각을 글로 표현하도록 돕는 학교 평가와 전국 단위 선발시험인 수능은 목적과 책임이 다르다. 전교조 조사에서 사교육 확대를 우려한 응답은 94.3%였다.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 논란, 교육격차 확대를 우려한 응답도 각각 93.0%였다. 이는 교원들의 인식이지 실제 발생한 피해를 측정한 결과는 아니지만, 교육당국이 무엇을 검증하고 설명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경고다.
평가를 바꾸려면 수업 여건부터 바꿔야 한다. 학생에게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쓸 시간을 주고, 교사에게 출제와 채점, 피드백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원이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를 마련하고 개선 일정과 검증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평가 개편 논의를 따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학생의 고등학교 3년은 되돌릴 수 없다. 개혁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배움과 제도의 신뢰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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