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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고파]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 이종훈(김해본부장)

AI에게 물으면 3초 만에 답이 나오고, 숏폼 영상은 15초 안에 핵심을 전달한다. 다음 날 배송은 이미 느린 축에 든다. 정책도 ‘신속 추진’이 미덕이 됐고, 성과는 임기 안에 눈에 보여야 한다. 속도가 곧 능력이 된 세상에서...

[가고파]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 이종훈(김해본부장)

4월이면 경남 곳곳의 마당과 텃밭에 고추 모종이 심긴다. 물을 주고 나면 남는 건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 AI에게 물으면 3초 만에 답이 나오고, 숏폼 영상은 15초 안에 핵심을 전달한다. 다음 날 배송은 이미 느린 축에 든다. 정책도 ‘신속 추진’이 미덕이 됐고, 성과는 임기 안에 눈에 보여야 한다. 속도가 곧 능력이 된 세상에서 ‘기다린다’는 말은 어딘가 한가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빠르게 얻을 수 없다. 사람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고, 조직의 합의는 회의 한 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민의 공감은 설명회 한 차례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논어에 욕속부달(欲速不達)이란 말이 있다. 빨리 하려고만 하면 오히려 이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자가 거보(거父)의 읍재(邑宰)가 된 제자 자하에게 한 이 말은 성과를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에 눈멀지 말라는 경계였다. 250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날카롭게 와닿는다.

선거철이면 더 그렇다. 공약은 쏟아지고, 숫자는 커지고, 일정은 빨라진다. 하루에도 몇 건씩 올라오는 공약 발표를 보면서 묻게 된다. 저 약속은 얼마나 검증된 것일까. 재원은 확인했을까, 주민 의견은 들었을까.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속도가 정책의 완성도를 앞서는 순간, 당선 이후의 혼란은 이미 예고된 셈이다. 느리더라도 현장을 밟고 반대 의견까지 들은 공약이 결국 임기를 버티는 힘이 된다.

봄은 원래 느리다. 모종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그 과정을 재촉할 수 없다는 걸 농부는 안다. 빠름을 경쟁하는 세상에서 제대로 느린 것의 가치를 생각한다. 텃밭의 고추가 빨갛게 익을 즈음이면 가을이다. 그때쯤 우리도 서둘러 지나친 것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서둘러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되새기면서.

이종훈(김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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