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가 ‘부채의 덫’에 갇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사상 처음 40조 달러를 넘어섰고 3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5.3%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미 재무부는 결국 장기국채 바이백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긴급 처방 카드를 꺼냈다.
더 무서운 것은 이자다. 2025년 미국의 국채 이자비용은 1조 2000억 달러(약 1700조 원)를 훌쩍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방비 예산을 웃도는 규모다. 순이자비용이 정부 세입의 18.5%로 1991년 기록한 과거 최고치(18.4%)를 경신했다는 통계도 있다.
부채는 이자를 낳고, 부채를 다시 키우는 악순환이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국채 발행이 늘어나 금리를 밀어 올린다. 높아진 금리는 다시 이자 부담을 키우고 재정적자를 확대한다. ‘재정적자→국채 증가→금리 상승→이자 부담 증가→재정적자 확대’라는 부채의 덫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투자 붐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겹쳤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전력망 등에 천문학적인 민간자금이 필요해지면서 미국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막대한 국채 발행과 민간자금 수요가 맞물리며 금리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다급해진 미 재무부가 꺼낸 카드가 바로 바이백이다. 유동성이 떨어진 장기국채를 재매입해 장기채 시장의 수급과 유동성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재무부 발표 직후 30년물 금리는 5.3%대에서 5.2%대로 내려왔다. 10년물 국채금리도 6bp(bp=0.01%포인트) 떨어져 가파르던 금리 상승세에 일시적으로 제동이 걸렸다.
순간적으로 불길은 잡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바이백은 국채 시장의 유동성과 만기 구조를 관리하는 수단이지 재정적자의 구조적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 지출을 줄여 장기채를 갚는 것이 아니라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재무부 일반계정(TGA)을 활용하거나 단기국채(T-bills) 발행을 늘려 장기채를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부채 총량과는 상관이 없다.
단기국채 비중이 높아지면 또 다른 위험이 따른다. 미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TBAC)가 권고하는 단기국채의 적정 상한선은 20%인데 현재 22%까지 치솟았다. 장기 부채를 탕감하는 대신 금리 변동성에 취약한 단기 부채로 옮겨 탔을 뿐이다.
장기채를 고금리 단기채로 반복적으로 차환하는 ‘돌려막기(rollover)’ 행태다. 이는 단기자금 시장의 발작 위험과 국가 재정의 신인도 하락을 부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 국채금리 역시 과거의 저금리 수준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 국면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미국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면 우리 국채와 회사채 금리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진다.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도 높아진다. 특히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처럼 금리에 민감한 부문이 많은 우리 경제에는 더 큰 부담이다.
우리 정부와 금융 당국의 대응이 보다 정교해져야 하는 이유다. 미국 국채 금리와 발행 구조, 글로벌 자금 흐름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과 대외 채무 만기 구조를 관리하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등 취약 부문 위험은 선제적으로 줄여 거시건전성 안전판을 더욱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미국의 40조 달러 국가부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매년 반복된 재정적자가 수십 년간 누적된 결과다. 대한민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미국보다 더 엄격하게 재정의 신뢰를 관리해야 한다.
쓸 곳에는 과감하게 쓰되 불필요한 지출은 줄여야 한다. 미래 성장 능력을 높이는 투자는 확대하되 경상적·소비적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호황기에 재정 여력을 축적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잘 쓰고, 잘 관리하고, 위기에 대비해 여력을 남겨두는 재정. 성장으로 내일의 빚을 감당하는 재정 정책이 미국 국채 시장이 보내는 경고음에 대한민국이 새겨야 할 재정 운용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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