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T마이크로
유럽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중국 파운드리 화홍(Hua Hong)과 협력해 중국에서 생산한 STM32 마이크로컨트롤러(MCU) 공급을 시작했다.
첫 물량은 중국 내에서 전량 생산됐고 ST는 연내 추가 STM32 제품군의 현지 양산도 추진할 계획으로 단순한 생산 거점 확대를 넘어 중국 고객용 반도체를 중국 내 공급망으로 조달하는 이른바 '차이나 포 차이나(China-for-China)' 전략이 실제 출하 단계로 넘어갔다는 의미로 읽힌다.
ST는 23일 발표에서 중국산 STM32 MCU의 첫 출하가 진행 중이며 현지 생산은 고성능 STM32H7 시리즈를 시작으로 STM32H5, STM32C5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이번 현지화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복원력 있는" 중국 내 MCU 공급망 구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지난 2024년 화홍에 40나노 임베디드 비휘발성메모리(eNVM) 공정을 이전하겠다고 밝혔던 계획이 이번 출하를 통해 실제 상업 생산으로 처음 이어지면서 생산 구조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순한 협력 발표를 넘어 현지 제조 체계를 현실화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화홍의 우시 300mm 공장에서 40나노 STM32를 생산하고 패키징과 테스트도 선전 공장 및 중국 현지 OSAT 파트너를 통해 현지에서 마무리하게 되며 프랑스 크롤 공장과 동일한 마스크 세트와 품질 기준을 적용한다고 설명하더라도 산업적으로는 글로벌 표준 제품 생산 체계를 중국 안으로 옮겨와 공급망을 현지화함으로써 지정학적 변수와 통상 리스크를 줄이려는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는 중국 반도체 시장이 과거의 해외 설계·해외 생산 중심 구조에서 중국 내 생산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과 맞물려 있는데 트렌드포스는 2025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화홍 점유율을 2.6%, SMIC를 5.32%로 집계해 중국 현지 생산 기반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중국의 성숙 공정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일부 업체는 가격 인상까지 검토하고 있어 28나노 이상 중심의 범용·산업용 칩에서는 현지 생산-현지 소비 흐름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움직임이 글로벌 산업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은 이유는 MCU가 자동차와 산업기기, 가전, 사물인터넷(IoT), 통신장비 등 거의 모든 전자 시스템에서 작동을 제어하는 핵심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ST 역시 자동차와 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주력 시장으로 보고 있어 이번 현지 생산 확대는 특정 제품 공급을 넘어 전방 산업 전반의 공급망과 경쟁 구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현지화는 첨단 AI 가속기처럼 최선단 공정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산업·전력 관리·엣지기기 등 실물 제조업 전반에서 중국 공급망의 자립도를 높이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중국 내 세트업체 입장에서는 조달 안정성과 납기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해외 업체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현지 생산 압박이 더 커질 수 있다.
여기서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위지만 2025년 점유율은 7.2%로 전년보다 하락했고 TSMC와의 격차도 커진 상황에서 중국이 28~40나노급 MCU·전력·산업용 칩의 현지 생산을 더 빠르게 늘리면 삼성 파운드리가 상대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해 온 범용·성숙 공정 수요 일부에서 가격 경쟁과 고객 이탈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삼성의 주력 투자 방향은 AI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당장 실적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엄밀히 말해 직접 타격보다는 중국 시장 내 입지 경쟁이 더 까다로워진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에 대한 영향은 더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MCU 현지화가 자동차·산업기기·엣지 AI 기기에서 중국산 제어칩 조달이 쉬워질수록 향후 해당 기기군에 탑재되는 D램·낸드·저전력 메모리 수요 역시 중국 중심 생태계 안에서 묶일 가능성은 있다.
즉 SK하이닉스에는 단기 악재라기보다 중장기적으로 중국 세트업체들이 부품 조달 전체를 현지화하려 할 때 메모리를 제외한 주변 칩부터 먼저 자립하는 흐름으로 해석하는 편이 맞다.
따라서 이번 ST-화홍 협력의 핵심은 자동차·산업·전력·IoT 등 성숙 공정 중심 반도체에서 해외 선두 업체마저 중국 안에서 생산해 중국에 공급하는 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향후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첨단 AI칩은 미국·대만·한국, 범용·산업용 칩은 중국 현지화 심화라는 이중 구조로 갈라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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