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구조 설계로 효율 극대화
재검증 절차 없이 즉시 공급 가능
AI 슈퍼사이클 장기화 적기 대응
파운드리·패키징 등 턴키 시너지
“인텔의 전성기도 넘을 것” 전망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전경. 평택시
삼성전자(005930)
가 평택캠퍼스 4공장(P4)의 ‘임시 사용’과 5공장(P5)의 ‘쌍둥이 팹(Twin Fab)’ 전략을 가동하며 전례 없는 생산 속도전에 나섰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단발성 호황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하면서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무기로 AI 반도체 밸류체인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삼성의 승부수로 해석된다.
생산능력을 우선 늘리는 곳은 P4다. 삼성전자가 P4 라인에 적용하기로 한 ‘임시 사용’은 건물 전체가 완공되기 전이라도 특정 구역의 사용 승인을 먼저 받아 클린룸 조성을 시작하고 핵심 반도체 장비를 선제적으로 반입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장비 셋업과 시운전에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을 대폭 줄여 최소 6개월 이상 가동 시기를 앞당기며 칩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차기 핵심 기지인 P5 역시 속도와 효율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은 P5 이후 지어질 신규 공장을 새로운 설계의 P6가 아닌 P5와 구조가 100% 동일한 ‘P5 2’로 건설할 계획이다. 반도체 라인 설계가 변경되면 글로벌 대형 고객사들은 수개월에 걸쳐 제품의 수율과 품질을 다시 검증하게 된다. 하지만 구조가 동일한 쌍둥이 팹에서 칩을 생산할 경우 복잡하고 소모적인 검증 절차를 생략할 수 있어 즉각적인 대량 공급이 가능해진다.
삼성전자가 이토록 빠른 생산능력 확충에 사활을 거는 것은 극심한 메모리 공급난이 갈수록 심화하기 때문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내년까지 팹 증설과 생산라인 전환에 총력을 기울인다 해도 급증하는 메모리 수요의 60% 수준밖에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의 AI발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과거 PC와 스마트폰 등 전방 정보기술(IT) 기기 교체 수요가 주도하던 널뛰기 장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구매를 총괄하는 C레벨 임원들은 잇따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 등 메모리 제조사를 직접 찾아와 3~5년 단위의 장기공급계약(LTA)을 맺어달라고 요청하는 등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확실하게 보장되고 오히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먼저 물량을 생산해 적기에 공급하는 기업이 절대적인 우위에 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도 압도적이던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충함으로써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판도를 단숨에 뒤집을 골든타임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범용 D램 시장에서 1위를 탈환했다.
남은 과제는 경쟁사에 선두를 내준 HBM 시장의 제패다. 올 하반기 본격 양산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출시에 발맞춰 삼성전자가 조기 가동되는 P4에서 HBM4를 대량생산하며 단숨에 점유율을 역전시킬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속도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 또한 압도적이다. 단일 팹인 P5 건설에만 약 80조 원이 드는 점을 감안하면 쌍둥이 팹(P5, P5 2) 구축에는 총 160조 원 이상의 자금이 투하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P5 팹 건축 등에 2조 8932억 원, 삼성E&A는 골조 공사 등에 1조 8790억 원의 대규모 계약 소식을 잇따라 공시했다.
천문학적인 투자가 흔들림 없이 집행될 수 있는 배경에는 사상 최대의 실적이 뿜어내는 든든한 현금 창출 능력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만 57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한국 기업사에 남을 최대 기록을 썼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AI 메모리 수요 폭발에 힘입어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약 31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메모리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설계와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삼성전자의 턴키(일괄 공급) 경쟁력이 이 같은 생산능력 확충과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원 석좌교수는 “첨단 메모리와 파운드리 역량을 모두 내재화한 삼성이 과거 PC 시대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했던 인텔의 전성기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며 “‘종합 AI 반도체 기업’으로 새롭게 발돋움할 완벽한 기회를 잡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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