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의 역할이 확대돼야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현재 정부 정책이 투자회사 형태의 CVC 육성에 치우쳐 있는 만큼, 일반 기업의 전략적 벤처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18일 한국증권학회 산학협력연구회 세미나에서 ‘벤처투자 현황 및 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며, “기업의 전략적 벤처투자가 확대돼야 스타트업 생태계와 M&A 시장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와 현장 체감경기 괴리 커져”=
강 교수는 최근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공식 통계와 현장 분위기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투자회사와 신기술사업금융회사 등의 투자 실적을 집계해 벤처투자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반면 민간 데이터 플랫폼들은 일반 기업의 직접 투자까지 포함해 시장 규모를 산정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중기부는 벤처투자금액을 2024년 11조9000억원, 2025년 13조6000억원으로 집계했지만, 민간 데이터 기준으로는 2024년 6조9000억원, 2025년 6조6000억원에 그쳤다.
강 교수는 “정부는 최근 벤처투자 시장이 회복세라고 발표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자금 경색이 심각하다는 반응이 많다”며 “이는 투자자금 상당 부분이 해외 AI 기업 투자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에셋 등 국내 투자기관들이 미국 AI 기업인 오픈AI나 엔트로픽 등에 투자한 금액이 정부 통계에는 포함되지만, 실제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 시장에는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CVC 투자 규모 집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민간 데이터 기준으로는 국내 CVC 투자 규모가 2022년 약 4조7000억원, 2023년 약 2조2000억원 수준으로 분석됐다. 반면 중기부 발표치는 각각 2조7000억원, 2조1000억원 수준으로 차이가 컸다.
강 교수는 “가장 큰 차이는 일반 기업의 직접 투자 반영 여부”라며 “기업이 자체 보유 현금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규모가 상당한데 정부 통계에서는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벤처투자 활성화 정책을 제대로 설계하려면 실제 시장에서 어떤 자금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정확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韓 투자회사, 美 기업 직접투자 중심=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CVC 구조 차이도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VC를 법적으로 ‘투자회사’ 중심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 지주회사나 기업이 설립한 벤처투자회사를 CVC로 인정한다. 반면 미국은 별도의 투자회사를 만들기보다 기업 내부에 투자 전담부서나 사업부를 두고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미국 S&P500 기업을 조사한 결과, 약 93%가 사내 투자부서 형태로 벤처투자를 수행하고 있었다”며 “인텔캐피탈도 독립 투자회사가 아니라 인텔 내부 사업부 개념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제도적 구조가 정책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CVC 활성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투자회사 중심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전략적 목적의 벤처투자는 기업 내부 사업부나 보유 현금을 활용한 직접 투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모태펀드를 통한 CVC 전용펀드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스타트업과 자유롭게 협업하고 투자할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국내에서는 전략적 벤처투자를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이 더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정책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협업에 집중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중견기업의 역할이 훨씬 크다”며 “대기업은 자체 기술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협업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중견기업은 신기술 확보와 사업 확장 수요가 크다”고 설명했다.
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18일 한국증권학회 산학협력연구회 세미나에서 ‘벤처투자 현황 및 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며 “기업의 전략적 벤처투자가 확대돼야 스타트업 생태계와 M&A 시장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중기이코노미)
◇“
CVC 투자, 결국 M&A 활성화로 이어져”=
강 교수는 기업의 전략적 벤처투자가 스타트업 M&A 시장 확대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CVC투자는 스타트업 M&A의 직접적 사전투자 경로 뿐 아니라, 인수기업의 시장 탐색과 투자역량 축적을 돕는 간접적 회수시장 촉진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는 “미국은 스타트업 회수시장의 대부분이 M&A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반면 한국은 IPO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M&A 비중은 건수 기준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은 처음부터 대규모 인수에 나서기보다 소규모 지분투자와 협업을 통해 기술과 시장성을 검증한 뒤 본격적인 인수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실제 국내 사례 분석 결과, 스타트업 인수 이전에 투자나 협업 관계를 맺었던 사례가 상당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CVC 투자는 단순 재무투자가 아니라 미래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물옵션 확보 기능을 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고 기술 경쟁력을 점검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삼성이나 네이버 같은 대기업과 협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보증효과(endorsement effect)’로 작용한다”며 “후속 투자 유치나 고객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강 교수는 대기업 중심의 스타트업 인수가 혁신 생태계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경고했다. “일부 기업은 경쟁 기술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킬러 인수(killer acquisition)’ 전략을 활용하기도 한다”며 “M&A 활성화와 함께 공정 경쟁과 혁신 생태계 보호 장치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전략적 벤처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해 스타트업 성장과 회수시장이 함께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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